연출가 일기 37
버려야 할 것과 그러지 말아야 할 것
아침에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식전이었다. 우리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간에 전화란 보통 사람들의 새벽 한 두시의 전화와 같다. 위급한 전화이거나 아무 생각없는 예의 없는 전화, 또는 함께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보통 좋지 않은 소식을 담을 때가 많다. 발신자 표시를 보았더니 의상 디자이너 선생이었다. 그녀와는 재작년부터 약 세편의 작품을 함께했었고, 이번 겨울에도 세 편의 작품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일은 이미 시작됐다. 불안이 스쳤다.
이번 겨울 동안 나는 신작으로는 3편, 만들어 놓았던 공연의 지방 투어는 1편, 총 4편의 작품을 12월 한달 동안 연출해야 한다. 그 중 한 편의 공연은 배우들과 함께 각각 오십만원을 서로 내어 만든 연극 <노라's choice>고, 다른 두 편은 서울과 인천의 시립 합창단과 만드는 크리스마스 음악극이다. 의상 선생과는 이 세편의 공연을 지금 함께하고 있었다. 세 작품 다 공통점이 있다면 제작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뮤지컬이 대중화되면서 각 시도의 시·도립 합창단들도 그들의 정기 연주 중 연말 공연을 작곡가에게 위촉하여 크리스마스를 위한 뮤지컬을 시도하는데, 올해는 왠일인지 인천 시립 합창단과 서울 시립 소년·소녀 합창단의 눈에 띄었다. 두 작품이 이틀을 사이에 두고 같은 주간에 올려져야 하기에 인천 공연은 사양하려 했으나, 그곳의 여러 단원들의 배려와 강권으로 몸과 시간을 쪼개어 이 겨울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두 단체가 합창단이고, 시의 예산으로 원래 합창 정기연주 할 것을 뮤지컬 공연으로 만들다 보니, 예산의 규모와 용처가 다른 프로덕션과는 비교도 안되게 적고 또 다르다. 단체 내 예술가들의 뮤지컬에 대한 의지는 높지만 예산을 집행하는 시청 공무원들은 뮤지컬도 오직, 그들의 시립 합창단의 연주일 뿐이다. 그런 예산으로 뮤지컬을 만들려다 보니 만드는 나와 함께하는 창작 스태프들의 고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제 인천과 스태프 회의를 나누고 우리 각 파트별 스태프들에게 주어진 예산을 확인했다.아니나 다를까 각 파트 스태프들의 얼굴은 죽음의 기운이라도 스친듯 어둡고, 두려움이 가득했다. 나와의 관계, 공연에 대한 책임감 등으로 일을 거부할 수는 없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긴 해야 하는데, 각자에게 주어진 예산으로는 스스로의 예술적 완성도에 근접하기도 힘들기 때문임을 나는 직감하고 또 체험으로도 알 수 있었다. 뮤지컬과 연주회의 가장 큰 예산 범위의 차이는 장비와 의상이다. 단원들이야 월급이 책정되어 있기에 출연료 인건비는 고정되어 있어 문제가 없지만, 조명, 음향, 무대 장치, 의상, 분장, 헤어, 소품등의 미술적 준비는 연주회의 예산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백번 이해해서 단체가 속한 극장인 세종문화회관과 인천 문화예술회관의 장비들을 쓴다고 치자. 의상은? 합창 연주회는 모두가 같은 연주복을 입지만 뮤지컬은 모두가 다른 옷을 입어야 한다. 책정된 예산으로 의상을 제작하기는 애저녁에 글렀고, 극장 창고에 보관된 기존 의상을 재활용하려 했는데, 그마저 보유 의상이 여의치 않았다. 사입(의상을 구입하여 반입하는 것)을 하자니 그것마저 시방서(국공립 단체에 제출하는 서류로서 소재 및 단가, 디자인까지 구체적으로 기입해야하는 자료)를 요구하기 때문에 의상팀으로서는 부담이 적지 않았다. 우리는 그렇게 회의를 마치고 극장을 떠났고, 스태프들의 무거운 얼굴들이 마음에 남았다. 두 단체의 행정팀에서는 그저 웃으며, “잘 부탁드립니다. 저희가 극장 감독들과 얘기 잘 해 놓을께요.”가 다였다.
그렇게 밤이 됐고, 집으로 돌아왔다. 늦은 밤 전화가 한통 오고 문자가 왔으나 확인하지 않았다. 아침에 확인하니 의상팀이었고, 곧이어 걸려 온 아침 전화에는 디자이너의 미안함이 가득한 목소리에 실려 내가 예상했던, 통화의 이유, 부정적인 무언가가 전화기 너머로 내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듣기 싫었다. 쌓아온 모든 우정이 사라지는 소리였다. 그녀는 우리 관계가 더 악화되기 전에 그만 두는 것이 옳다 생각하여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이미 틀렸다. 왜냐면, 그녀가 힘든 만큼 다른 모두가 이미 힘들어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릴 떠난 다는 것은, 우리 모두를 포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와 비슷한 경우를 몇 번 겪었다. 이상하게도 그럴 때 내 반응은 화가 난다거나, 큰일이다 이거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당황함이나 두려움이 깃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냉정히 생각이 돌아가고 아무런 염려가 없다. 예상했던 어떤 지점에서 발생한 문제이기 때문에 다음 프로세스로 머리의 생각이 옮겨가기만 한다. 참 이상하다, 이런 나의 태도가. 오늘 아침도 그랬다. 화가 나지 않았다. 다만 그전과는 다르게 아주, 대단히 사무적인 말투로, “그래요, 알겠어요.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사무적으로 말한 이유는 일부러 관계를 끊기 위함이 아니라 다음 프로세스를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침을 열고 서울시립 소년·소녀 합창단의 크리스마스 재공연을 위해 북서울 꿈의 숲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아침부터 스태프 회의가 있었다. 조연출 순열에게 이 문제를 얘기했더니 깜짝 놀라며 오후 3시에 세종문화회관측 의상팀과 우리 의상팀이 회의를 하기로 예정되 있다고 말했다. 이런 낭패가 있나… 나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 스태프와 창작팀이 극장측과의 관계에서 어떤 힘의 균형을 잃어버리는 것을 항상 싫어했다. 극장측 뿐만아니라 제작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어떤 작업을 맡던, 하기로 했으면, 극장측 또는 제작사측이 우리의 작업 방식에 어떤 흠을 잡을 수 없도록 철저히 준비했다. 또 모든 회의는 가능하면 꼼꼼히 기록하고, 이메일과 문자 메세지로 정보를 공유하며 연습과 공연을 통해 증명해 왔다. 그런데 오늘, 힘의 균형이 깨지는 바로 그 일이 내 목전에서 벌어지게 된 것이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이제야 화가 나기 시작했다. ‘끝이다. 이제, 너희와는…’ 이렇게 책임감이 없이 일 할 줄 몰랐다. 적어도 그런 회의가 있었다면 다른 방안을 찾아 주어야 하는 것이 나와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의상팀 혹은 어시스턴트를 섭외해 연결해 놓거나 아니면 적어도 오늘 회의까지는 진행하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북서울 회의를 마치고 그곳에 있는 고급 중식당에서 합창단 예술감독, 합창단 총무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 식사를 하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여기 앉아 이 햇살을 받으며 이 음식을 씹는들, 다 무슨 소용인가. 이게 정말 내 것인가. 정말 내 것은 무엇인가. 우리 스태프들 일하나 편히 못하게 하면서 비싼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앉아 먹고 있는 것, 이게 뭔가, 난. 니들 잘 못 아니야. 오죽하면 그랬겠니. 화는 나지만, 미안해.’ 그러면서도 머릿속 프로세스는 다음 단계로 나갔다. 세종 의상을 대신할 사람을 세종측과 협의해 극장측 스태프의 지원을 받기로 했고, 인천은 학교 후배이자 나의 데뷔를 함께한 미쓰오(이름은 미정. 의상 디자인 전공, 지금은 한복 전문가다. 대학 3년 후배. 학교 다닐 때 미정이는 어떤 조건에서도 작품에 맞는 의상을 만들어 냈다. 본가가 강화도인데 미정이가 학교에 입학하던 해 연극원은 신입생 OT를 강화도로 갔다. 초지대교를 건너 강화도에 버스가 들어서자 길가에 플랙카드가 걸려 있었다. ‘강화도의 딸 오미정,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무대미술과 합격!’ 미정이는 졸업 후에도 본인이 참여한 공연에 본인 이름으로 본인이 화환을 보냈다. 독특하고 그 생각들이 작품에 묻어난다.) 에게 연락하여 시간과 상황을 논의했다. 미정이는 내 얘기를 충분히 듣고는, 그간 연락하지 않았던 내게 서운한 감정을 웃음에 실어 보냈다. 학교 때 그랬듯이, 미정이는, 내가 아무 염려하지 않게 내 손을 잡아 줬다.
얘기가 빗나가지만, 미쓰오가 왜 서운했는가를 잠깐 말한다면, 데뷔 이 후 내 작업에서 내 마음껏 스태를 구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거의 모든 제작사들이 그들과 관계가 짙고 그들이 검증한 스태프들을 미리 정해두고 있었다. 이제 갓 데뷔한 아직 미약한 내가, 내가 좋아하고 내가 검증한 스태프들을 적소에 배치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계속 짬에 밀렸다. 미쓰오는 늘 내가 하는 작업에서 헌신적으로 일을 했는데, 정작 온전한 제작비가 투여되는 작품들에서는 나는 그녀를 헌신짝처럼 여겨야 했다. 그런 상황속에서 아직도 그녀는 나를 아꼈고, 이런 급한 상황에서 내 손을 잡았다. 창작팀에게 있어서 핵심 스태프 구성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물론 세상이 검증한 각 파트의 뛰어난 사람들이 작품에 배치되고 한 작품에서 처음 만나 서로 작업하는 것도 참 중요한 일이지만, 서로의 생각과 스타일, 이상과 꿈 등을 충분히 나누지 못한 사람들이 짧은 시간 동안 모여, 각자가 동시에 여러 작품을 하는 가운데 그 중 하나의 작품을 함께 만드는 것은 각 파트 자체의 결과물은 좋을 수 있어도 통일성과 전체의 완성도가 높아지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가급적이면 함께 작업해오던 안무가, 음악감독, 조연출, 음향, 조명, 의상 디자이너들을 우선으로 한다. 이 팀들과 온전히 만나 작업할 때, 서로의 생각과 방향성을 여러 경험을 통해 알기에 일이 빠르고 막힘이 적다. 배우도 몇몇 그런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 것이 오히려 폐해가 될 수도 있지만, 서로의 예술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작업한다는 것은 작품의 세계관과 통일성, 그리고 완성도를 높이는데 대단히 중요한 요소다.
다시 원래의 얘기로 돌아와서, 그렇게 하루종일 연습을 마치고,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 산 자동차가 이전 차보다 기름을 많이 먹어 게이지가 자꾸만 내려갔다. 그 것 마저도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고, 이래저래 편치 않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의상팀의 불안함과 잠 못이뤘던 고민들을 이해하고, 가슴으로 웃으며 안아줘야 옳은 걸까. 아니면 서릿발 같은 차가움으로 호통치고 내 치는 것이 좋을까. 사람을 잃지 말까, 잃을까. 결론 내릴 수 없었다. 왜 이런 문제에 늘 맞닿아야 할까. 이 작은 시장 속에서 얼마 안되는 돈이 도는 복판에서, 한 시즌 살겠다고, 한 달 생활비를 벌겠다고 하고 싶은 말 참고, 속상한 일들도 그저 버티며 돈 없다는 제작사도 안아주고, 그 돈 받아 어렵게 일하는 스태프도 안아주고, 먹고 싶은 것 못 먹어 상처받는 내 마음도 안아주고, 기름도 마음껏 가득 채우지 못하는 내 차도 안아주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계속 살아가는 것, 나 언제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나의 삼십대가 흐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오십만원 백만원에 웃음을 팔고, 자존심을 팔고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것일까…떠나고 싶다. 더 큰 시장으로, 더 큰 돈이 도는 곳으로. 그래서 마음껏 상상하고, 마음껏 만들고, 함께하는 스태들에게 적어도 예산 때문에 미안해 하지 않고, 그들과 내 삶의 월말 잔고를 저당잡히지 않고 정말 그렇게 살고싶다. 하고 있는 모든 작업과 모든 생각들이 그 자체로 온전히 평가받고 그 자체를 마음껏 만들어 갈 수 있는 그런 곳, 떠나고 싶다. 그런곳에서 이 일을 계속 하던지, 아니면 때려치고 그냥 돈이나 벌던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뭘하든 자유롭고 싶다.
오늘 난, 사람을 잃었다. 다른 무엇보다 나와 우리를 버리고 떠난 그들을 잃었다. 잃어야 할 것은 그들이 아니라 그들이 떠날 수 밖에 없는 이 나라 환경인데, 인천이고 세종인데, 버릴 것은 버리지 못하고 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우선 버리다니, 내가 미쳤나. 내 떠남의 준비가 그렇게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