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많게는 다섯편, 적게는 세편을 만들어야 일반 직장인 수준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삶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작품을 동시에 하다보면, 삶의 집중력이 강도 높은 긴장과 예민함으로 한 해동안의 삶 전체를 지배하기 때문에 마음이 편할 날은 극히 적고, 예민한 기운이 가족에게 흘러가 편치 않은 가정 생활을 부른다. 연출가라는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많은 작품을 하지 않으면 도태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삶을 압도하고, 그 불안함을 이기려 빼곡히 일을 채우면, 그 채움이 가족과 내 삶 전체를 혹사 시킨다. 마음의 여유가 있고, 경제적 여유가 있다면 창작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을 구분하여 한해 딱 두 작품 정도만 집중하면 좋을텐데, 욕심과 조바심은 늘 그러한 분리된 시간을 허락하지 않고, 어느 곳으론가 나를 내 몰아간다.
이러한 삶의 흐름과 문제는 나만이 아니라 직업으로서 예술활동을 하는 동료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여서 서로의 작품들이 가지는 특별함과 톡특함을 만나기가 어렵다. 나부터 문제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를 위해 동료들과 함께 고민하려 해도, 서로에게 주어진 시간들과 전체에게 주어진 시간들이 짧아 생각이 농익기 전에 연습실과 제작소에서 무언가가 그려지고 만들어진다. 일단 그려진 것들은 공연 일정에 맞춰 단단히 다지기 바빠서, 나도 동료 예술가들도 애초에 서로가 가졌던 특별한 기운과 아이디어들을 한 작품에 온전히 담지 못 할 때가 많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는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국가와 대중으로부터 보장 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무엇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예술 자체보다는 직업으로서의 예술, 경제적 활동으로서의 예술에 더 집중하고 집착할 때가 많음을 고백한다. 나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최소한의 지위가 보장되어 하나의 작품 안에 오롯히 예술가들의 농익은 생각들을 담아내 발효시키고, 또 그것을 충분히 실험하고 창조해 지금까지의 예술 시장 안에서 만날 수 없었던 새로운 충격들이 늘어나야 할 텐데, 그럴 수 없음에 한탄스럽다.
동인제 극단 시스템이 붕괴되고 상업 프로듀서 시스템이 발달하면서 예술가들은 늘, 피고용인의 신분으로서 가능하면 고용주들과 마찰을 줄여가며 작품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창작 초기부터 각 파트 예술가들의 작품에 대한 개념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고, 프로덕션은 그러한 문제를 알면서도 예술적 완성도 보다 분명한 상업적 묙표와 효율을 위해 프로덕션을 운영 한다. 예술가와 프로듀서가 진정한 동료, 멘토의 관계로 변화하고, 함께 작업할 예술가 그룹들이 참여하는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때, 작품의 상업적 완성도 역시 높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다, 먹고살 수 있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