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노릇
"선생님, 죽고 싶어요."
나도, 라고 말할 뻔했다.
대신, 조심스레 말했다.
"오늘 하고 싶은 거, 하나만 해볼까? 쌤도 같이 생각해볼게.“
얘들아 미안해. 진심은 맞아. 다만, 진실은 다 전하지 못했어. 그래도 나는, 너희가 이 말을 듣고도 스스로 다른 길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 나는 어른들의 거짓말을 먹고 자라났거든. 그들도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인 건 알아. 그냥 그게 (지금 앞만 보는 게)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걸 아는 나라는 존재가 뭔가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미안해.
‘버티자. 이기자. 견디자. 해 뜰 날 온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만큼 내 땅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내가 너희에게 절대 하지 않는 말들이지. 그 중에서도 가장 기피하는 말은 이거야. ‘지금 견디면, 나중이 편해져.’ (아닌 경우도 많으니까.)
내가 가본 길만이, 내가 느껴본 감정만이 너희의 미래가 아니길 바라면서. 같은 길에 놓여, 같은 감정을 느끼더라도 너희는 더 잘 버텨내길 희망하면서. 희망이란 게 물을 주면 새싹이 날 거라는 믿음 같은 거였을 때, 새싹이 움트지 못하고 죽어버리더라도 너희는 괜찮기를 바라면서.
A: 새싹이 죽을 걸 알아도, 물 주는 기쁨으로 하루하루 충만하게 지내면 되잖아.
B: 미안, 나는 못 해. 안 하고 싶어.
A: 새싹이 움틀 때까지, 계속 자리를 옮기면서, 계속 비료를 주면서.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이 이어서 할 것이란 희망을 품으면서 도전하면 되잖아. 언젠가는 될 거잖아.
B: 미안, 나는 힘들겠어.
A: 옆에 함께 하는 농부에게 말을 걸어보면 어때? 꼭 새싹만이 전부는 아니잖아.
B: 그럴 수도 있겠지.
창의력이 부족한 어른이라 미안해. 너희에게는 선택지가 무궁무진하게 많았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동행자도 있었으면 좋겠고. 나는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고, 내 경험상 어른은 별 도움이 안 되더라고. 사실 결과보다 과정 하나, 하나가 기적인 건데, 그걸 항상 체감하는 현인이 되긴 쉽지 않잖아. 누가 그러더라고. 태어난 것만으로 우린 할 일을 다 한 거라고. 그러니까 힘내. 모호한 응원이라 미안해. 그래도 진심을 담아 기원할게. 네가 바라는 게 무엇이든 행운이 너에게 깃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