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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수빛날희 Dec 04. 2021

회고 3

일 났다.

" 공부 열심히 하시네요, 핸드폰도 한 번도 보시지 않고, 도서관에 몇 시에 오세요?"


함께 계단을 내려가면서 갑자기 들어온 이 믿을 수 없는 질문이 귀를 통하는 순간, 심장박동 수가 점점 올라갔다. 한껏 들뜬 마음을 들킬 수는 없었기에 담담한 척, "아, 네, 아침 일찍 오는 편이에요." 하면서 머리카락을 한번 넘겨주고는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아직도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심장이 말썽이었다. 입술을 만지작만지작 만지면서 속으로 '무슨 일이야, 이게 무슨 일이야, 어쩌다, 오, 이런, 안돼, 아니 돼, 아니, 아씨 몰라, '하면서 로또에 당첨된 거 마냥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싱글벙글 버스를 내렸다. 차분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가 감도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소리 없이 소리 질렀다. 됐다, 내가 남자를 꼬셨어, 작전이 성공하다니 난 이제 연애천재 다하면서, 하늘의 별자리가 이리  아름답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왜 이리 가벼운지 둥둥 떠내려가며 집에 도착했다. 난 이제 어떡하면 좋을까 내일 그를 보면 인사를 해도 될까, 앞으로 이뤄질 그와의 여정이 머릿속에서 마구 상상되면서 기분 좋은 잠을 잤다.

.

그렇게 다음 날 아침, 도서관 문소리가 날 때마다 귀가 뒤로 저쳐지는 신기함을 느끼며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말은 그가 먼저 건네었으니 인사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며, 보이면 눈인사 정도는 해줘야지 마음을 다잡으며 초초히 기다리는데  드디어 그가 오는 것 같았고, 어떻게 쳐다보는 게 자연스럽지, 어쩌지 하면서 허둥지둥 되면서 결국 쳐다보지도 못한 채 인사도 못하고 애꿎은 책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기회를 떠나보냈다. 인사를 하지 못했다는 후회가 몰려오면서 이러면 안 돼, 기회는 이번뿐 뭐라도 해내야 한다는 미친 생각이 나를 갉아먹자, 그날 저녁, 밖에서 휴식을 취하던 그를 발견하고는 곧장 가서 "저녁 같이 먹을래요?"라고 물어봤다. 무엇을 먹을지는 정하지도 않았는데, 무작정 뱉을 말을 땅 치고 후회하려는 순간 그가 대답했다.


"저 다이어트 중이라서 저녁 안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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