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다 어려워
나에게도 2년 차라는 타이틀이 달린 지도 보름이 지났다.
같은 연령, 같은 반을 연임해서 맡게 되면서 환경적으로 커다란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업무에서 모든 게 달라지면서 지금은 1년 차 때 3월과는 다른 최악에서 생활하고 있다.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에는 유아를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을 운영한다가 합해진 용어이기에 유치원 내에서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가 참 다양하다. 이전에는 유치원의 부속적인 업무(교사 장학, 방역물품 정리, 유치원 원복 관리, 유치원 행사 사진 정리, 교사회의 회의록 작성, 유치원 자료실 물품관리 등)를 도맡아 그날그날에 처리하는 일을 했다면 이번에는 기획, 계획, 처리라는 아주 공적인 업무(특수유아 관리, 정보공시, 공문처리)를 혼자서 도맡아 해내야 하기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하필 나는 찬찬히 인수인계를 받아야 할 시기에 오미크론도 걸려 버렸고 이전 업무를 하시던 선생님은 금년에 그만두시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개학 직전 하루 특강을 와다다다 머릿속으로 욱여넣어야만 했다. 단기 합격 보장이라는 광고에 귀가 솔깃하듯이 어려울 게 하나도 없다며 하루 특강으로 인수인계를 해주시는 선생님의 말을 너무 쉽게 믿어버려 무슨 흐름으로 업무를 처리해야 되는지도 머리에 잡히지 않은 체 시험대 위에 올라앉았다.
매일 2시, 교사실에 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교사 다이어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일 하나를 순서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닌 여러 일이 동시에 다발적으로 처리해야 하며, 뭐 하나 차근차근 끝내고 다른 것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라 시작하다 멈추고, 다른 거 하다가 또 돌아와서 마무리하는 등 질질 끌고 가야 되는 서류들이 아코디언 화이철에 차곡차곡 쌓여만 가고 있다. 물론 집에 가는 것도 당연히 늦어졌다.
그렇게 늦은 퇴근길, 유튜브에 떠도는 '퇴근길에 들으면 정신 아늑해지는 노래' 몇 곡을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전 선생님들이 왜 귀가 시간에 유아 귀가 방송을 안 해주고 자기 일만 한다며 이기적이라고 생각 들었던 점을 반성하게 되었다. 업무라는 게 얄밉게 꼭 바쁠 때 쏟아진다. 다음 주 나가야 되는 계획안 작성과 놀이 관찰지를 작성하려는 데 그날 꼭 새로 구입한 도서가 도착해 정리하고, 문구점에서 구입한 물품들이 들어오고, 꼭 그날 며칠 안 남은 공문 처리가 있음을 알게 되고. 그런데 옆에서 동료 선생님은 작은 서류철 부탁을 해오고, 방과 후 선생님이 누구 물통 안 챙기고 갔다고 말해주신다. 일을 하고 보니 교사 일이라는 것이 포괄성을 가지고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나게 가진 자라면 행운아인 것 같다. 그러나 아쉽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기에 일을 두 번 해야만 했다. 영리하게 일 처리를 못하기에 주변의 일을 자꾸 놓치게 되는 것도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자리에 안 계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받은 전화 메모를 알려주는 일도, 열정을 가지고 준비하던 수업계획도, 하루하루 밀리지 않았던 사진 정리와 부모와의 상담 전화도, 당장 떨어진 행정 업무 파악과 처리해야 하기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내가 유치원 교사인지 행정실 직원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업무에 치여 살고 있지만 그래도 신기하게도 작년과는 다른 느낌이다. 내가 맡은 일 처리가 늦어져 늦게 퇴근해도 유치원에 묶여 있는 느낌이 아니었다. 또 이런 시간 또한 금방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인지, 마음만은 편안하다. 그렇게 정리된 책상에 앉아 내일 해야 할 특수 유아 개별화교육 회의록 작성, 특수유아 치료지원신청서, 특수 자원봉사자분의 관련 제출 서류 7개씩 여섯 분만 준비하면 퇴근할 수 있구나 하며 오늘의 다이어리를 덮는다. 그냥 얼른 바쁜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힘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