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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Jul 21. 2022

자아탐색일기 6: 나는 가정폭력 생존자입니다.

내가 죄책감 인간이 된 이유

저는 가정폭력 생존자입니다. 


 이번 상담에서는 가정폭력에 관한 이야기들을 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가정폭력 피해자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아닌 가정폭력 생존자라는 표현을 쓴다고 말했다. 이름을 다시 붙여줌으로써 내가 어떤 일을 겪어왔는지 다시금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내가 경험한 가정폭력 사례가 성인기 초기에 아빠가 실직하시고 집에 계시고 내가 입시를 하고 있었을 시절 잠깐의 경험이어서 그렇게 심각한 경험이었는지, 이 경험이 어떤 방식으로 아직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가정폭력은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나는 21살 때 내 방에 있는 상한 과자를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맞았던 경험이 있다. 이전에도 아빠와의 말다툼과 언어폭력은 자주 있어왔기 때문에 나는 아빠의 지적이나 훈계들을 거의 무시하고 지나가는 편이었다. 그날도 상한 과자를 버리지 않았다는 지적에 나는 ‘네’ 같은 성의 없는 답변으로 마음속에 일어나는 반감을 감췄다. 아빠는 나의 답변에 더욱 화가 난 것 같았다. 왜 그랬는지 이유를 물으며 내 앞으로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대답하라고 다그치는 그 위협적인 모습에 나는 몸이 얼어 답변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맞았다. 

 이후의 기억들은 내가 울며 더 때려보라고,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냐고 소리치는 소리, 엄마가 울며 우리를 떼어놓으려 했던 모습들이 남아있다.

  무슨 일인지도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 사소한 일로 사과를 강요했던 적도 있었다. 나는 그때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생각하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내가 잘못한 점들을 구구절절 찾고 나열하여 정말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그래도 진심이 아니라며 진심을 다해 사과하라고 했다. 그런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되고 어느새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치욕스러웠다. 하지만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래서 나는 또 사과했다. 그래도 진심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나는 소리를 지르며 스스로 내 머리를 치고 있었다. 끼고 있던 안경이 저 멀리 날아갔다. 

 내 둘째 남동생은 더 심하게 맞았다. 훈육의 이유로 자신의 손에 멍이 들 정도로 이미 스무 살인 내 동생을 패 놓고, 둘째 동생의 뼈가 딱딱해서 손에 멍이 들었다며 웃으며 불평하던 모습이 기억난다. 둘째 동생은 입안이 다 터지도록 맞은 후 아빠를 죽이겠다며 전동드릴을 손에 들고 아빠에게 덤벼들기도 했었다. 


 이런 가정폭력은 가스라이팅의 가장 심화된 형태로 나타난다. 가정폭력 생존자들은 자신의 결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며 죄책감을 갖기 쉽다. 실제로 나는 눈치를 많이 본다는 말을 듣는 편이고 상대의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이면 내가 잘못한 것이 없나를 생각하곤 한다. 내가 죄책감 인간인 이유를 하나 더 찾은 셈이다. 이런 경험은 몸에 감각으로 남아, 평생 지워지기 어렵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평생을 죄책감 인간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상담 선생님께서는 죄책감이 느껴지더라도 스스로 내 탓이 아니라고 말하며 마음의 힘을 키워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한창 내가 아빠에게 맞는 꿈을 꾸던 시절, 아빠와 성관계를 하는 꿈도 몇 차례 꾸었다. 당시에는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꿈을 꾸는지 수치스럽고 죄책감이 들고 혹시 해소되지 못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아닌지 의심했었다. 그런데 이 꿈은 사실 아빠에 대한 복수라고 한다. 무의식 중에 남성을 성적으로 지배하면서 복수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에게 아직도 아빠에 대한 증오심이 남아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아직 아빠를 용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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