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와 회피 방어기제에 대하여
도덕이고 신념이고 그런 것들이 싫었다. 정의가 뭔지도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고, 뭔가를 믿고 따른다는 것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냥 평생을 세상을 부유하면서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느꼈다. 애써봤자 안 되는 것을 왜 애를 쓰고 사나, 주어진 대로 정해진 대로 흘러가는 대로 그러다 보면 언젠가 죽어 있겠고. 그게 그냥 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비웃었다. 애쓴다고 뭔가 되는 것도 아닌데, 헛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왜 저렇게 삶을 진심으로 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사실 부끄러운 것은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으나 만족할 만한 결과에 미치지 못하는 나 자신이었다. 그러다 실패하면? 나는 그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 되어 버리는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엄청 컸다. 일부러 일을 망치는 경우도 있었다. 못해도 되는 핑계를 항상 만들고 있는 거지. 그래서 뭐? 난 어차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 걸 하면서 말이다. 완벽한 회피 방어기제의 발현이다. 회피 방어기제는 위험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 상황, 대상으로부터 안전한 거리를 유지하려는 태도를 말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마주할 수 없으니 무의식적으로 핑계를 만들어 나를 그쪽으로 도피시키는 것이다. 과거 입시 실패에 관한 기억들이 큰 상처가 되어 억압된 분노가 되었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되어 나 자신을 마주하지 못하게 했다. 이는 실제 현실에서 일을 하는 태도나 결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 싫으냐고 물었을 때 한참을 머뭇대다가 별생각 없이 내 입에서 흘러나온 단어는 ‘비겁한 사람’이었다. 왜 비겁한 사람이 싫었을까. 내가 비겁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나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항상 핑계를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뭐든 잘 해내고 싶었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하지만 최선을 다할 용기가 없었다. 이러한 나의 억압된 감정들이 애를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투사되어 사람들을 비웃고 비꼬고 했던 것이다. 이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보자면 투사 방어기제의 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투사 방어기제란 스스로 수용할 수 없는 욕망, 생각, 느낌을 다른 주체에게로 옮겨 놓는 것이다. 우리가 타인에게 느끼는 특별한 감정들은 대부분 투사에서 기인한 것인 경우들이 많다. 나는 삶에 관한 깊은 성찰이 없는 사람들을 싫어한다.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짜증이 난다. 최근에 심리학 공부를 하게 되면서 내가 생각하는 일에 대한 부담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현실을 보는 것과 패배주의는 다르다. 물론 환경은 많은 것을 지배한다. 세상은 내 의지대로 되는 것보다 불가능한 것이 훨씬 많다. 괴로움, 행복과 같은 감정도, 나 자신조차도 내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 내가 바꿀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분명히 있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불필요하고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삶을 정체시키고 성장을 방해한다고 한다. 이제 삶의 주변부에서 맴도는 것을 멈추고 나 자신을 마주하는 용기 있는 사람으로 살아봐야겠다.
항상 흔들리지만 나아가는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