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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대

by 김룰루

현대시 수업이 거의 끝나갈 때쯤, 시를 직접 써보는 실습을 한다. 교과서 속 작품 읽기와 직접 작품을 만드는 건 난이도의 차이가 크다.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학생들에게 창작이 얼마나 부담스러운지 짐작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대부분 문학작품을 하나 지어보라고 하면 덜컥 가슴이 답답해지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군소리 없이 '선생님이 하라고 하면 하는 거지'라고 감사히 생각해 주는 학생들도 있지만, 더러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학생들도 작지 않다. '내 나이에 시를 쓰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냐'부터 '나는 공부를 배우러 온 거지, 시나 쓰려고 온 게 아니다'까지. 가장 무서운 학생은 조용히 더 이상 학교를 안 나오는 거지만.


그래서 시 쓰기는 완성 자체에 목표를 두고 있었다. 학생들에게도 '잘 쓰지 않아도 된다. 작품을 완성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라고 그간 강조해 왔다. 뭐든 처음부터 잘하려고 하면 독이 된다.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어야지, 시작조차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올해는 생각이 좀 바뀌었다. 검정고시에 도움이 되는 실습을 하면 어떨까. 요즘 학생들이 시의 표현방법 시험 문제를 어려워하는 걸 발견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직접 어머님들이 현대시에서 꼭 알아야 하는 표현방법을 활용해서 시를 써보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않은가. 교과서에서 남이 쓴 표현방법을 분석만 하는 것보단, 직접 한 줄이라도 만들어 보는 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올해는 시를 쓰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 시를 쓰기 전에 주제부터 정할 것

- 비유적 표현을 반드시 1번 이상 사용할 것(직유법, 은유법, 의인법)

- 운율적 요소를 반드시 1가지 이상 넣을 것

- 가능하다면 상징, 음성상징어, 역설법, 심상을 사용해 볼 것


시험에 자주 출제되는 시의 표현방식, 즉 그리고 학생들이 기억해야 하는 지식들을 가이드라인으로 구성했다. 이렇게 나만의 기준을 만드니, 학생들의 시를 평가할 때도 수월했다. 가이드라인을 얼마나 잘 준수해서 시를 썼는지를 보면 되니깐. 문학은 수학처럼 점수를 매기기가 힘들다 보니 학생들의 시에 대해 내가 피드백을 하는 게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특히 나처럼 아마추어 선생님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기준에 의거해서 나의 평을 하면 되니깐 수업이 수월해졌다.


덕분에 학생들이 작년보다 공을 들여서 시를 쓴 티가 났다. 작년에 썼던 시와 비교해 보면 '똑같은 사람이 쓴 시가 맞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완성만을 위해 심상을 쓴 것과,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는 작품의 차이가 아닐까.



내가 채택한 올해의 장원이다. 보통 일상적인 것에서 영감을 얻기 마련인데, 형용하기 어려운 '소망'을 소재로 잡은 것이 특이했다. 게다가 소망을 '머리 위에서 흩날린다', '수줍어하는 소망'처럼 의인법을 충분히 사용하는 등 비유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한 것도 맘에 들었다. 물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도 좋다.



가장 시 쓰기를 어려워하시던 분은 시를 제출하면서 '나는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막 썼어요. 표현방법, 메시지 그런 거는 생각 안 했어.'라고 하셨다. 그래도 시에 대한 장점과 보완점을 피드백드려야 하니, 평가기준을 가지고 시를 들여다봤다. 민요처럼 3 음보를 정확하게 맞춘 것을 보고 '어머님이 쓴 시는 고전시가처럼 음보가 정확하네요. 생각나는 대로 쓴 건데 우연히 이렇게 박자가 맞춰진 걸까요?'라고 여쭤보니 '아니 그건 내가 의도한 거지.'라고 그제야 본인이 신경 썼던 부분을 말씀하신다. 다들 대강 숙제에 무심한 척 하지만 실은 본인의 부족한 실력이 들통날까 봐 자기 방어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네 분이나 '엄마'를 주제로 시를 쓰셨다. 다들 누군가의 엄마이고, 손자까지 있으신 분들인데도 엄마가 그립다고 하신다. 엄마가 주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 고된 삶을 사셨던 모친에 대한 애잔함. 각자가 써온 시를 낭독하는 시간에는 어떤 학생분이 본인의 어머니가 생각난다며 목소리가 떨리셨다. 조금만 시가 더 길었으면 아마 눈물을 흘리셨을 것이다. 엄마는 평생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다음에 엄마에 대해 학생들과 얘기하는 기회를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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