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수진 Dec 21. 2023

이탈리아에 가족이 생겼다

국제결혼 ep. 1

결혼은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그것의 좋은 점 보다 그렇지 않은 점을 주변에서 보고 겪어왔기에 그저 희생만이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어느 유럽보다도 가족중심의 문화가 있는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이 남자를 처음 만난 날, 결혼이라는 선택지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7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2023년 10월 1일, 이탈리아 시청에서 그 남자와 혼인 서약을 맺었다.


어느샌가부터 이탈리아가 내 집으로 느껴질 무렵 외로움도 찾아왔다. 이곳에서의 생활이 더할 것이 없었지만 동시에 나는 내 가족을 보려면 직항으로 13시간 혹은 그 이상의 비행을 해야 하고 이탈리아에서의 스케줄을 모두 멈춘 채 한국을 방문해야 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껴버린 것이다.

이탈리아에 남자친구는 있지만 가족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피를 나누지 않은 사이는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기에.


하루는 억울해 눈물이 났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제일 가까운 사이인 남자친구는 40분만 차를 타고 가면 따듯한 엄마 밥을 먹을 수가 있고 언제든지 원하면 친구들을 만날 수 있기에 부러움과 동시에 내 상황과 비교를 하고 있었다.

비록 내가 택한 해외살이이기에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날따라 이상하리만치 억울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여태까지 몇 년 간 잘 지내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향수병이었나 보다.


"넌 엄마가 가까이 계시지만 여기에 우리 엄마는 없잖아!"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그는 "너한텐 우리 엄마가 있잖아. (한국말로) 이탈리아 엄마."라고 말하며 "가족이 왜 없어. 우리가 가족이잖아."라고 했다.

빈 말이라도 좋았다. 희한하게도 그 말이 정말 위로가 되었고 순간 거짓말처럼 슬픔이 가셨다.

수년동안 크리스마스 점심을 함께하고 서로의 생일 때마다 축하한다 문자를 주고받고 크고 작은 좋은 일이 있을 때 함께 기뻐하며 로렌조가 없을 때는 한국에서 3개의 캐리어를 가지고 돌아온 나를 위해 한 시간 넘게 달려와 자정 넘은 시각 공항으로 픽업을 와 주는 그것이 가족이었다.


그 당시 공식적으로는 가족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나를 이미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내가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일뿐. 이탈리아에 내 가족이 있다는 사실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나니 이 사람과는 정말 결혼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탈리아 집 밖으로도 나가기 힘들었던 기간에 오히려 소소한 행복으로 가득 찬 봄을 맞이했을 때 역시 그와의 결혼을 확신했었지만 저 말은 어느 때보다도 가슴 깊은 위로와 지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이 정도로 도움을 받아도 되는 걸까 싶게 나의 일에 두 손 두 발 다 걷어 붙이고 나서주는 그를 보며 미안한 감정이 앞섰던 순간들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내가 한국에서 살아도 (너도) 똑같이 해줬을 거잖아. 가족이니까." 라며 힘듦과 귀찮음을 감수했다. 심지어 본인의 어머니가 나의 문제에 도움을 주셔야 하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이탈리아 시청에서 서약을 한 뒤 밀라노 영사관에서 한국에 혼인신고를 하였고 이로써 공식적인 서류 절차가 모두 마무리되었다.

로렌조는 나의 남편이 되었고 나는 그의 아내가 되었다. 그 어색한 호칭들이 언제쯤 자연스러워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공적 서류에 서로의 이름이 새겨지고 남들에게 소개되는 호칭도 달라졌지만 그의 가족과 나의 사이엔 달라진 것이 없다. 그저 우리는 예전부터 가족이었고 서류 작업을 조금 늦게 한 것일 뿐 여전히 편안하고 거리낌 없는 관계 그대로이다.


절대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지난 이십여 년간의 내 인생은 어디로 갔는지 이젠 결혼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다. 친한 동생들이나 친구들이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꼭 그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결혼이 가족끼리의 결합이기보다는 두 성인이 서로의 가족이 되어주며 각자의 인생을 지지해 줄 수 있게 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다시 말하지만 결혼은 정말로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이탈리아에서의 일곱 번째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다.

25일엔 어김없이 나의 이탈리아 가족들과 점심 식사를 할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자릿세를 내는 식당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