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식문화, 코페르토
처음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계산된 영수증을 보다 황당한 적이 있었다.
내가 시킨 음식과 물 외에 2~3유로가 더 추가로 계산된 것이 아닌가!
이탈리아엔 팁 문화라는 것이 없다 들었는데, 대체 왜 나는 돈을 더 낸 건지 의문이었던 순간. 팁이 아니라면 직원이 계산 실수라도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이탈리아에서의 경험은 식당이란 것은 당연히 세계 어디나 다 똑같을 것이라고 생각던 나에게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탈리아의 식문화에는 코페르토 Coperto라는 개념이 있다.
식탁보, 식기, 접시, 천 냅킨 등 테이블 위에 올라가는 모든 것을 뜻한다. 식사에 사용되는 도구들 외에 식당에서 계산할 수 없는 식당만의 특징적인 서비스나 전문적 스킬 또한 포함되어 있는 값으로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흔히 이것을 '자릿세'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의 식당을 생각한다면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기에 받아들이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코페르토의 시작은 저 멀리 중세시대로 내려간다.
여관에서 손님들이 (특히 추운 계절이나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 음식 주문을 하지 않고 손수 가져온 음식을 먹기 위해 얄궂은 날씨를 피할 수 있는 여관으로 들어가 식기를 사용하고 자리를 차지하자 주인들이 돈을 요구하면서 생겨난 것이 코페르토이고 이것이 현대의 이탈리아 식문화에까지 남게 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주인들이 식기 값을 받기 시작했을까 싶다.
예시로 가져온 계산서 사진을 보면 더 쉽게 이해가 간다.
두 계산서 모두 요금이 청구된 리스트 첫 번째 줄에서 Coperto를 발견할 수 있는데 왼쪽 계산서에서는 인당 코페르토가 3유로, 오른쪽 계산서에서는 1.50유로 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코페르토의 가격은 식당마다 차이가 있는데 적게는 인당 1.50 유로부터 많게는 인당 6유로까지 나오는 경우가 있다. 격식을 많이 차리는 하이엔드 레스토랑이면 음식값뿐만 아니라 코페르토 값도 비싸진다고 생각하면 좋다. 이탈리안 식당이 아닌 한식당이나 중식당을 가도 코페르토는 청구된다.
그렇지만 코페르토에도 예외가 존재한다.
위의 사진과 같이 일회용 접시에 음식이 나오는 곳이나 포장 전문 식당 또는 손님이 직접 음식을 받아 가는 곳, 음식을 트레이에 담아주는 식당들에서는 코페르토를 내지 않는다. 식탁보나 천 냅킨이 없고 일회용 식기를 사용했으며 서빙을 받지 않았으므로 코페르토를 내지 않는다. 내가 먹은 것들의 값만 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업원이 서빙을 하는 식당을 가면 대부분은 코페르토를 내는 거구나라고 미리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 다짜고짜 식당에 들어가 앉았고 메뉴를 받았는데 이때 코페르토가 생각난다면 메뉴판 맨 첫 장이나 끝, 혹은 맨 아래를 보면 코페르토 요금 안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코페르토와 더불어 흥미로운 이탈리아 식당의 다른 점은 바로 식사 끝나기가 무섭게 그릇을 치워가는 종업원들이다.
처음에는 이곳의 식문화를 모르니 인종차별인가 싶기도 했다. 아무도 나가란 말은 안 했지만 다 먹었으면 빨리 나가라는 뜻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한국이었다면 그런 시그널로 받아들여졌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너무나도 한국적인 생각이었다.
이탈리아의 정석적인 식문화는 코스로 되어있는데 맨 처음 입맛을 돋우는 안티파스토로 시작해 첫 메인인 쁘리모 피아또 그리고 두 번째 메인인 세콘도 피아또를 지나 후식을 먹고 커피로 마무리되는 여정이다. 그렇기에 종업원들은 손님들의 식사 속도에 맞추어 서빙을 해야 하기 때문에 빈 접시를 바로 치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서버들의 일이기에 빈 접시를 바로 가져간다 해서 기분 나쁠 것이 없고 오히려 나에게 신경을 써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식사 중간중간에 음식은 괜찮은지,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물어보는 것이 이탈리아의 식당이기 때문이다.
'자릿세' 혹은 '식기 값'이라는 명분으로 몇 유로를 더 내야 하는 식문화는 코페르토 문화가 없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이해가 되지 않는 문화일 것이다. 물이 공짜인 한국의 식당과는 달리 이탈리아 식당에서는 물도 주문해 먹어야 하는데 거기다 자릿세를 받는다니.. 하지만 어느 이탈리아 식당을 가도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기에 미리 숙지해 이곳의 식문화로 받아들이면 더욱 기분 좋은 식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