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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취향익힘 Feb 27. 2024

Ep 3. 미니벌레가 아니라 미니멀리스트요!!

맥시멀리스트의 얼떨결에 미니멀리즘

- 아빠: 딸, 이거 물병이랑 그릇 갖고 가라~ 집에 갈 때.

- : 아빠! 주지 마. 나 이제 미니멀리스트야!!!

- 아빠: 미니벌레?? 미니벌레가 뭐야??

- : 아니~ 미니벌레가 아니라 미니멀리스트!!!


나는 자타공인 맥시멀리스트다.

- 언제 쓸지도 모를 예쁜 쓰레기 잘 모아둠.

- 맘에 드는 물건은 깔별로 종류별로 구입함.

- 있는 줄 모르고 비슷한 물건 여러 개 구입해서 돈 낭비함.

- 아끼다  듦.

- 물건에 치여 사는데 정리는 또 잘 못함.


꽃을 사면 꽃 포장지, 꽃 리본까지 다 모아두고 (대체 언제 쓰려고 모아두는 건지..) 괜히 다이소에 가 기웃기웃하며 예쁜 쓰레기를 수집한다. 폰에는 텐바이텐, 아이디어스, 여러 소품샵 홈페이지가 즐겨찾기 되어 있고 쓰지도 않을 각종 주방소품, 욕실용품, 테마용품 등을 또 한 움큼 집에 사다 놓는다.


주위에 선물하는 걸 좋아해서 예쁜 포장 용기를 보면 못 지나치고, 쇼핑백도 크기별 종류별 색별로 모아둔다. 한동안은 디즈니 티팟에 꽂혀서 미녀와 야수 티팟, 엘리스 티팟부터 관련 용품들을 쓸어 모았고, 테이블 매트에 꽂혔을 때는 집 안에 테이블 매트만 20개가 되어버렸다. 문제는 물건은 사들이면서 정리는 잘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못 쓰는 물건, 못 입는 옷, 못 먹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랬던 초초초 맥시멀리스트였던 나에게...

1. 집을 처분하니 모든 세간살이를 정리하고 필수 짐만 컨테이너에 넣기

2. 28인치 캐리어 두 개3인 가족 세계여행에 필요한 모든 짐 담기(심지어 겨울옷...)

는 정말 가혹한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유럽에 간다면 <밀리 파리에 가다>의 에밀리처럼 하늘하늘한 스커트에 예쁜 가방과 구두를 신고 고데기 잔뜩 넣은 머리를 흩날리며 에펠탑 앞에서 인생샷 하나 건지고 싶었는데...


" 버릴 옷들로만 챙겨서 돌려 입어! 우리 짐 최대한 줄여야 해!"라는 신랑의 말에 "집 내놨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샤 스커트는??? 트위드 자켓은??? 구두는??? 내가 원한 해외여행은 이런 게 전혀 아닌데...


심지어 나는 물건을 소중하게 쓰는 편이라, 물건이 내 손에 들어오면 기본 5~10년은 새것처럼 사용한다.

때문에 나에게 버릴 물건이란? 없다. 있어도 없다!!


"버릴 옷이 없는데 무슨 옷을 챙겨야 하죠?"


어렵다 ㅠㅠ 눈물이 ...


갑작스러운 세계여행으로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 했던 나는 반강제로 미니멀리스트 되기 프로젝트에 돌입해야만 했다. 당근마켓에 가입했고 신발장과 옷장, 팬트리 정리를 시작했으며 처음으로 물건 사는 걸 멈췄다. 내가 하루 중 제일 기다리는 건 택배도착 문자였는데... 이젠 당근마켓 구매자 채팅 알람을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울며 겨자 먹기로 시작한 미니멀리즘으로 인해, 늘 꽉꽉 채워져 물건을 토해내던 서랍장이 처음으로 여유 있게 닫히는 경험을 하고, 옷 무더기로 뒤덮여 있던 드레스룸에 발을 디딜 틈이 생겨났. 무엇보다 모든 생필품을 두세 박스씩 쌓아놓지 않아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내가 가진 많은  물건들이 과욕이었구나 깨달았다,


내가 애지중지 모아둔 예쁜 쓰레기들은 그야말로 예쁜 쓰레기들이라 당근마켓에 내놓을 수도 없었고, 내가 알뜰살뜰 사모은 물건들은 헐값에 올려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집에는 나조차도 있는 줄 몰랐던 물건들이 가득했다.


택도 뜯지 않은 채 옷장 구석에 걸려있던 사틴 원피스와 한동안 꽂혀서 모아둔 채 잊어버려 단 한 잔도 마셔보지 못하고 유통기한이 3년이나 지난 예쁜 틴케이스의 티들...왜 그동안 나는 이 많은 것을 아등바등 붙들고 살았나...

물건들을 정리하며 그동안 내가 쏟아부은 낭비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보니 현타가 제법 크게 왔다.


세계여행을 위한 캐리어 싸기도 처음엔 절대 못할 거라 여겼는데 집 정리를 시작하면서 함께 시작해 보니 나에게 정말 필요한 물건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을 쌓아두지 않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치우고 나니 여유 공간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집이 점점 넓어졌다.


그 덕이었을까.. 처음 집을 보러 온 사람이 바로 계약을 했다.


모든 세간살이를 정리해야 하기에 남은 3개월 동안 쓸 물건, 한국에 돌아와서 사용할 물건들이 아니면 전부 처분하거나 기부했다. 덕분에 연말정산 기부금 내역이 두텁게 쌓였다. 매일 오던 택배가 오지 않는데도 일상이 오히려 더 풍요로워진 느낌이었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리스트 되기 과정"예상보다 많은 깨우침을 주고 내 소비패턴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였다. 앞으로 물건을 사게 될 때는 집을 다 비우기 위해 모든 걸 정리하던 이 순간을!  떠올려볼 것이다.


정리의 과정은 정말 험난하고 고생스러웠기에.. 내가 사려하는 물건이 과연 집을 다시 정리한다면 버리지 않을 만큼 필요한지를 꼭 따져볼 것이다.


이렇듯 얼떨결에 시작한 미니멀리즘이지만 비움이 주는 미학을 알고 나니 앞으로의 생활이 크게 달라질 것 같은 예감이다. 과거의 나는 초맥시멀리스트였지만, 이제부터는 새싹 미니멀리스트로 살아보려 한다.

캐리어 하나로 세계여행도 하는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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