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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글쓰기

속삭임

by 수련

속삭임


진갈색 마른나무 등줄기에

봄비 살며시 입 맞춘다.

갈라진 땅, 목마른 숨결 위로

핏줄 같은 물줄기 길을 놓는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생명

너의 가녀린 손끝을 펼쳐라.

촉촉한 입맞춤을 받은 가지마다

파릇한 눈망울이 떠오른다.


봄 햇살 현기증 일으키고

컴컴한 밤 노란 등불이

봄날의 밤을 지핀다.


흙이 숨 쉬고, 바람이 노래하면

생명수 듬뿍 머금은

봄비는 대지에 속삭인다.





겨울이 남긴 흔적 위로 봄이 내려앉았다. 어둡고 메마른 가지 사이로 노란 개나리가 등불을 밝히듯 피어나고, 산수유 꽃잎이 별빛처럼 반짝인다. 봄비 한 번 지나가자, 나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기지개를 켜며 따스한 바람에 몸을 맡긴다.


사회문제와 정치적으로 각박해도 계절은 어김없이 돌고 돌아 우리 곁에 온다. 삶이 불안하고 숨이 가쁜 날들이지만 봄은 이처럼 말없이 찾아와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노란 개나리는 “힘을 내요”라고 말하고, 다섯 잎을 펼친 매화는 그윽한 향기로 지친 마음을 어루만진다. 꽃잎이 보내는 위로는 말이 없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우리는 더 깊은 위로와 위안을 얻는다.


원치 않은 이별로 마음이 아픈 그대, 꽃이 피는 계절이 오히려 서러운 친구, 불길이 삼켜버려 일상을 도둑맞은 분. 어려운 삶을 다시 일으켜야 하는 모든 이에게 봄은 외면하지 않는다. 비록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가지 끝마다 맺힌 새순처럼 희망은 자라고 있다. 바람이 불어 흔들리고, 비가 내려 넘어져도, 그 안에서 꽃은 피어나듯, 우리 삶 또한 그럴 것이다.


봄날 노란 꽃을 바라보자. 그 작은 빛이 어둠을 몰아내듯, 우리 마음속에도 새로 시작하는 용기가 스며들기를. 봄은 우리에게 희망을 남기며 지친 길목에서 조용히 속삭인다.

“견디고, 힘내봐요. 꽃을 피울 날이 꼭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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