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타임이 내 인생을 킬링한 썰

시간을 죽이려 봤는데, 내 시간이 먼저 당했다

by Mr Pink

시간을 죽이려고 봤는데, 내 시간이 먼저 당했다.
그냥 킬링타임용으로 시작했던 것들이, 어느새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말이 돼버렸다.


요즘 콘텐츠는 경험의 매체라기보다 속도가 중요한 정보의 매체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그 흐름에 편승하기보다는, 내가 흘려보낸 경험들을 붙잡고 싶다. 그래서 아카이빙을 시작한다.


나에게 콘텐츠는 어릴 때를 빼면 언제나 시간을 때우는 도구였다.

외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나는 영화를 틀었다.


처음 본 영화, 극장에서 본 첫 영화는 아직도 또렷하다.
하지만 그 이외의 수많은 영화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어릴 적, 작은 뚱뚱한 TV에 비디오를 넣고 봤던 토이스토리. 그때는 두근거리는 동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E.T를 본 날은 내 인생이 바뀌었다. 장래희망 칸에 꾸준히 영화감독을 적게 만들 정도였다.


시간이 흘렀다. 혼자 보내야 할 시간이 늘어나면서, 콘텐츠는 ‘킬링타임’으로 변했다. IPTV 무료 영화, 아무렇게나 고른 애니, 외국 드라마. 취향은 없었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봤다.


그러다 3년.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방에서 콘텐츠만 본 시절이 있었다.

눈이 감길 때까지 보고, 눈이 떠지면 이어서 봤다.

밥을 먹을 땐 집중도가 떨어져도 괜찮은 드라마나 애니를 틀었고, 그 외 시간에는 영화와 만화를 탐닉했다.


3년의 청춘은 사라지고, 남은 건 콘텐츠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3년이 내 취향을 만들었고, 기호가 되었고, 결국 내 정체성과 철학까지 건드렸다.
내가 모은 건 감상이고, 털린 건 청춘이었다.


지금 와서 아깝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더 아깝게 느껴지는 건, 그때 봤던 것들을 사유했던 기억들이 희미해진다는 사실이다.
작품은 남았지만, 감각은 증발했다.


그래서 기록한다.
전문가도 아니고, 기깔 나는 리뷰어도 아니지만, 내가 흘린 시간만큼은 남겨야겠다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킬링타임에 속아 시간을 내어주지 않길 바라며.
'아니, 뭐… 사실 나만 당한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