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너 누군데요?!

시간을 죽이려 봤는데, 내 시간이 먼저 당했다

by Mr Pink

콘텐츠에 청춘을 이상하게 바친 사람 누군지 궁금하거나 딴지를 걸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 같아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보려 한다.


뭔가 조금 심각하게 얘기한 것 같지만, 간단히 얘기하면 나는 콘텐츠의 환자였다.

나의 모든 삶이 콘텐츠였고 앞으로도 콘텐츠에 몰두할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어렸을 때 봤던 영화 한 편 때문이다.


어렸을 때 극장에서 E.T를 보고 그때부터 장래희망은 계속 영화 감독일 정도로 콘텐츠를 좋아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E.T를 보고 필요 이상의 감동을 느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의 부모는 어릴 때부터 TV 혹은 만화를 강력하게 금지했었다. (영화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래서 남들이 나보다는 짱구 같은 만화도 난 어렸을 때 본 적이 없다.

그나마 가끔 친구네 집에 놀라가서 비디오로 보는 영화를 보고 나는 매료되어 버렸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를 먹고 부모가 나를 억압할 수 없는 나이가 되자 그때부터 미친 듯이 콘텐츠를 소비하기 시작했다.

자는 시간 이외에는 항상 무언가를 봤다.

집에 부모가 오지 않아 거실에서 TV를 보며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을 때는 DVD 혹은 IPTV로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보고 TV를 볼 수 없게 되면 방에 가서 소설과 만화를 읽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화과에 입시하는 걸로 이어지게 되었다.

(결과는 뭐 여기서 이렇게 글 쓰고 있는 걸 보면 말을 안 해도 다들 짐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입시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고 또 겸손해지고 심지어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입시를 하는 동안 나는 창작을 하는 것보다 소비를 하는 거에 특화된 사람이라는 것도 느꼈고, 그리고 그 사실에 굉장한 우울감을 느껴 3년 동안 우울해서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지워버렸다.

사실 그때도 콘텐츠를 보는 것 밖에 할 수가 없었다. 내가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을 때마다 나는 콘텐츠를 보는 것으로 도망쳤다.


말 그대로 눈을 감을 때까지 무언갈 보다가 눈을 뜨자마자 무언가를 보는 그런 시간을 보냈었다.

이전 글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역설적이게도 그 3년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년 동안 나는 청춘을 지우고 감상을 채워 넣었다. (쓸데없이 명대사나 명장면을 외우는 것도...)


그래서 나는 기록을 하기로 결심했다.
대단한 평론가도 아니고, 멋진 문장을 쓰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시간을 너무 많이 잃어버린 사람으로서, 그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을 뿐이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당신은 어떤 콘텐츠가 당신을 만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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