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를 향해서 (1)

by Bora

시작은 모아둔 마일리지 때문이었다. 코로나로 막혔던 아에로멕시코의 항로가 다시 열렸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작년 이맘때였다. 그 무렵부터 남미 얘기가 여기저기서 눈에 들어왔다. 마약 왕국이었던 콜롬비아가 이제는 괜찮다더라, 물가도 싸고 다니기가 생각보다 좋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 솔솔 들려왔다.


멕시코시티까지 직항으로 갈 수 있다면 남미로의 이동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무엇보다 미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갈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작년 가을, 대한항공 앱을 열어 스카이팀 항공사인 아에로멕시코의 마일리지 좌석을 검색해 보았다. 가는 편 하루, 오는 편 하루만 열려 있었지만 1인당 8만 마일에 유류할증료도 20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출발 3개월 전까지 무료 취소가 가능하니, 일단 예약부터 해두었다.


그 뒤 항공 일정이 한 차례 변경되면서, 처음엔 5주로 생각했던 여행이 어느새 6주를 훌쩍 넘게 되었다. 무료 취소 기한이 지나고 출발 3개월을 남긴 시점에서 나머지 항공권을 다시 살펴봤다. 이번에는 남쪽으로 더 내려가기보다는 중남미 지역만 느긋하게 다니기로 마음을 정했다.


20여 년 전, 멕시코에서 에콰도르와 페루까지 처음 남미를 여행했을 때는 직접 항공권을 예약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여 무조건 여행사를 통해야만 했다. 당시에는 특정 항공사가 남미 지역 전체를 커버하고 있어 여러 나라를 오가도 큰 부담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접한 중남미의 로컬 항공사들은 체감 난이도가 상당했다.

그나마 가장 수월했던 것은 파나마를 기반으로 한 코파항공이었다. 멕시코에서 보고타로 이동하면서 파나마를 사흘까지 무료로 경유할 수 있었고, 조금만 추가하면 최대 6일까지도 가능했다. 일정 변경도 한 차례 무료였고, 전화 연결도 의외로 깔끔했다.

콜롬비아의 아비앙카항공과 윙고에어는 이야기가 좀 달랐다. 아비앙카는 일단 예약만 완료되면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내가 실수로 잘못 잡은 일정을 변경하려 하니 수수료가 항공권 값보다 더 나오는 요금 구조와 거의 연결되지 않는 콜센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내 실수였으니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윙고에어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항공사였다. 가격이 비교적 괜찮아 여러 차례 예약을 시도했지만 결제 단계에서 계속 거절되었다. 검색 끝에 카드 유효기간을 한 달 더 늘려 입력해 보라는 글을 보고 그대로 했더니 승인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항공권이 취소되었다는 이메일이 오면서 카드 결제는 취소되지 않아 마음을 불안하게 하더니, 또 다음 날에는 다른 항공편의 카드 결제가 이유 없이 취소되었다. 결국 세 건의 예약 중 단 하나만 살아남았다.

라탐항공은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 칠레 기반 항공사인데, 남미 지역이 아닌 한국에서는 아예 홈페이지 접속이 되지 않았다. 구글을 통한 우회 접속으로 예약에 성공했다는 사례들도 보였지만, 그조차 선뜻 믿음이 가지 않았다. 혼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중남미 일정을 짜다 보니 진이 빠지고 의욕도 꺾이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여행지는 멕시코, 파나마, 콜롬비아, 에콰도르로 정했다. 새해맞이 축제를 꼭 포함해야 한다는 J의 주장 덕분에 에콰도르가 마지막에 끼어들었다. 결과적으로는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움직이는 계획이 되었다.

갈 곳이 정해진 후 이번에는 치안을 찾아봤다. 처음에는 콜롬비아 바로 옆의 베네수엘라도 함께 다니려 했지만, 전 국토가 여행 금지 지역이라는 적색경보를 보고는 아예 포기했었다. 그런데 살펴볼수록 멕시코도, 파나마도, 심지어 에콰도르도 불안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20여 년 전만 해도 에콰도르는 별다른 걱정 없이 자유롭게 다녔던 나라였는데, 지금은 갈라파고스 제도조차 여행이 불안하다는 말이 들린다. 베네수엘라 상황이 악화되어 인접 국가들로 난민이 유입되면서, 중남미 전체가 더 심각해지는 것 같다.

지구상에서 제일 비싼 북유럽과 아이슬란드에서 하도 고물가에 치어 물가 저렴한 나라에서 편안히 쉬다 오려고 했는데 도둑 걱정 없이 다녔던 그 시절이 그리워질 정도다.


하지만 무사히 다녀온 사람들의 여행기도 제법 눈에 들어오는 걸 보면 결국 다 사람 사는 곳 아니겠는가.

옛날처럼 겁 없이 다니지는 말고, 조심하며 다니기로 했다.

완벽한 계획도, 만반의 준비도 아니지만, 그래도 떠나기로 한 이유는 유럽이나 아시아와는 또 다른 카리브해 유역의 매력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중남미를 향한 여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행운을 빌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