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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Jun 22. 2022

토요타 프리우스 : 세상을 바꾼 원조 하이브리드

수요 명차 극장

요즘 자동차 시장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키워드가 '전동화'입니다. 자동차 회사들은 신형 전기차를 앞다퉈 출시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전기차 회사가 되겠다고 나서고 있는 데다, 이제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탑재하지 않으면 구시대의 퇴물 취급을 받는 지경입니다. 100년 넘게 도로를 지배해 온 내연기관이 불과 몇 년 사이에 퇴출 위기에 놓인 것이죠.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한 전기차가 일상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지금과 같은 '대 전기차 시대'가 도래할 수 있었던 건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을 합친 하이브리드 자동차(넓은 의미에서 하이브리드 자동차란 2가지 이상의 동력원을 사용하는 모든 차를 의미하지만, 오늘은 하이브리드 전기차로 의미를 한정합니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불가능한 줄만 알았던 하이브리드를 현실로 만든 주인공, 프리우스를 만나봅니다.

기술적 한계로 전기차가 대중화될 수 없었던 시기, 전기 모터와 내연기관을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전기 에너지의 잠재력을 드러내며 자동차 전동화의 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구상됐지만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하이브리드를 현실로 만들고 사상 처음으로 대량생산에 성공한 차가 바로 토요타 프리우스입니다.


올해로 출시 25주년을 맞이한 프리우스는 하이브리드의 대명사이자, 친환경차의 대명사입니다. 대단히 멋지고 빠른 차는 아니지만, 시대를 앞선 발상과 설계를 통해 현대적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개념을 정립하고 모든 경쟁자들의 표준이 된 기념비적인 모델입니다. 그런데 더 좋은 지구를 만든 작은 거인, 프리우스의 시작이 조금 미약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21세기 자동차를 생각하다
내연기관과 모터를 병용하는 자동차의 개념은 19세기부터 있었습니다. 사진은 세계 최초의 하이브리드인 로너-포르쉐 믹스테.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개념 자체는 오래 전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연구는 1970년대에 들어서야 시작됩니다. 오일 쇼크와 더불어 배기가스 규제가 도입되면서 친환경·고효율 자동차를 찾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입니다. 70~80년대 피아트, 알파로메오, 아우디, BMW, 볼보 등 여러 회사가 하이브리드 기술 실증에 나섰지만, 양산은 쉽지 않았습니다.

GM 임팩트 콘셉트카. 양산에 가까운 전기차의 등장은 역설적으로 하이브리드에 관한 관심을 떨어뜨렸습니다.

그런 와중에 1990년 GM이 '임팩트' 콘셉트카(후일 'EV1'이라는 이름으로 양산됩니다)를 선보이면서 전기차가 유력한 미래 친환경차로 급부상했습니다. 전기차는 오히려 엔진과의 연계를 고민할 필요도 없었고, 배터리 성능만 담보된다면 만들기는 훨씬 쉬웠습니다. 자연스럽게 하이브리드에 대한 제조사들의 흥미도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1993년 9월 설립된 토요타의 미래차 프로젝트 팀 'G21'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10명의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로 구성된 G21 팀의 목표는 "다음 세기(21세기)의 지구(Globe)를 위한 차"를 만드는 것이었는데요. 21세기 도심 환경에 맞춰 컴팩트하면서 넓은 공간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도 우수한 연료 효율과 친환경을 갖춰야 했습니다. 그리고 10년도 남지 않은 21세기에 당장 운행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어야 했죠.


당시의 기술로는 순수전기차를 위한 충분한 용량의 배터리를 만들 수 없었고, 설령 만든다 해도 너무 크고 무거워 일반적인 승용차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충전 인프라의 부재는 말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대량생산해 팔 만한 가격도 아니었죠. 토요타의 미래차는 기술력과 비전을 보여줄 수 있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어야 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붙으며 하이브리드 구동계가 유력한 후보로 떠오릅니다.

1세대 프리우스 프로젝트를 주도한 우치야마다 타케시. 현재는 토요타의 회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프로젝트의 윤곽이 잡히면서 G21 팀은 본격적인 신차 개발 TFT로 탈바꿈합니다. 오늘날 토요타 회장직에 오른 우치야마다 타케시(內山田竹志)가 당시 프로젝트 리더를 맡았고, 야에가시 다케히사(八重樫武久)를 비롯한 현업 엔지니어들이 팀에 합류합니다.


1995년에는 외관이 라틴어로 '앞서다'를 의미하는 프리우스(Prius)라는 차명이 정해지고, 프로토타입 콘셉트카도 만들어집니다. 프로토타입은 양산차 수준으로 완성도를 끌어올렸지만, 양산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완성되기까지는 아직 험난한 여정이 남아 있었습니다.


혼종 자동차에 담긴 첨단 기술
1995년 공개된 프리우스 콘셉트카. 실루엣은 비슷하지만 양산차와는 전혀 다른 프로토타입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탑재됐습니다.

사실 하이브리드 콘셉트카가 만들어질 때까지만 해도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에 대해서는 내부적인 회의론이 적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걸 상용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죠. 굳이 하이브리드가 아니더라도 연비 위주의 설계를 적용한다면 동급 모델보다 1.5배 정도 좋은 연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1.5배 정도 좋은 연비로는 임팩트가 부족했습니다. 미래차라면 적어도 2배 이상 좋은 연비를 내야 했고, 해답은 하이브리드 뿐이었습니다.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대한 연구가 본격 궤도에 오른 건 출시를 불과 2년여 앞둔 1995년이었습니다. 참고할 만한 경쟁자라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제대로 정립된 이론도, 상용화 사례도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었죠.

프리우스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2개의 모터와 엔진의 조합으로 완성됐습니다. 1995년에 말이죠!

20세기 기술로 21세기 자동차를 만드는 건 녹록치 않았습니다. 엔진과 모터만 붙여놓는다고 하이브리드 차가 완성되는 게 아니니까요. 몇 달에 걸쳐 수십 가지 시스템 레이아웃을 검토한 결과, 2개의 모터를 탑재해 직·병렬 하이브리드를 오가는 시스템이 가장 효율이 뛰어난 것으로 결론났습니다.


하나의 모터는 드라이브 모터로, 엔진과 힘을 합쳐 구동력을 내거나 회생 제동 시 발전기 역할을 합니다. 또 하나의 모터는 엔진의 힘을 받아 발전기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스타트 모터와 변속기 제어 기능을 겸했죠. 엔진과 2개의 모터는 유성 기어를 통해 연결돼 상황에 따라 모터로만 구동하거나, 엔진과 모터가 함께 구동하거나, 엔진으로 배터리를 충전하거나, 회생 제동을 통해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 모두 가능했습니다. 오늘날 '토요타 하이브리드 시스템(Toyota Hybrid System, THS)'이라 불리는 시스템의 기틀이 잡힌 것이죠.

사실 1세대 프리우스의 기술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토요타 엔지니어는 하이브리드의 가능성에 주목했습니다.

사실 말로는 쉽지만, 90년대 중반 기술력으로 완벽한 제어 시스템을 구축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프로토타입도 아닌 양산차용 시스템으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토요타 엔지니어들은 미래를 봤습니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 전자·전기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진보 중이었고, 비록 지금은 미완일지언정 가까운 미래에는 하이브리드가 가장 이상적인 시스템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죠. 그런 잠재력이 있는 기술을 선점해야 했습니다.


초기 프로토타입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작동할 때 엄청난 이질감이 느껴진 건 물론이고, 고작 500m를 달린 뒤 멈춰설 정도로 불안정했습니다. 심지어 과열로 제어 모듈이 폭발하는 등 시행착오 투성이였습니다. 개발진은 순수전기차 테스트카를 개발했던 엔지니어들까지 동원해 가까스로 시스템을 완성합니다.

THS와 조합된 1.5L 가솔린 엔진은 앳킨슨 사이클을 채택해 효율을 극대화했습니다.

직·병렬 혼합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합을 맞출 전용 엔진도 개발됐습니다. 1NZ-FXE 1.5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은 겉보기에 평범한 준중형차용 4기통 엔진이었지만, 앳킨슨 사이클(Atkinson cycle) 설계가 적용돼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앳킨슨 사이클 엔진이란 팽창비보다 압축비를 낮게 설정해 펌핑 로스를 줄인 엔진입니다. 열효율이 뛰어나 연비가 우수하지만, 저속 토크가 부족하고 최고출력이 낮다는 한계가 있어 자동차용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는 발진 시 최대토크를 발휘하며 엔진을 돕는 전기 모터가 장착돼 앳킨슨 사이클의 단점을 완벽히 상쇄할 수 있었죠. 오늘날 대부분의 하이브리드용 엔진이 앳킨슨 사이클을 채택하는 것도 그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앳킨슨 사이클 엔진은 크랭크 기구가 복잡하지만, 토요타는 흡기 밸브를 가변 밸브 타이밍(Variable Valve Timing, VVT)으로 제어하는 간단한 방법으로 앳킨슨 사이클을 재현해냅니다. 이 엔진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맞물려 98마력의 시스템 출력을 냈습니다.

공상과학인 줄만 알았던 하이브리드 양산차가 1997년, 출격 준비를 마칩니다.

성능과 내구성, 안정성을 고루 갖춘 240셀 니켈 수소 전지가 트렁크 밑에 실렸고, 배터리 수명을 극대화하기 위해 충전량은 40~60% 수준을 유지하도록 설정했습니다. 마침내, 자동차 역사 상 첫 하이브리드 구동계가 출격 준비를 마쳤습니다.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은 창대하리라
코롤라의 플랫폼을 유용했지만, 프리우스에는 전용 디자인이 적용돼 공기저항계수(Cd)가 0.29에 불과했습니다.

전륜구동 플랫폼은 토요타의 준중형차 코롤라의 것을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21세기 자동차'에 맞게 차체 형상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캡포워드 디자인을 적용해 4.3m도 되지 않는 차체에 넓은 실내 공간을 확보했고,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공기저항이 낮은 디자인을 적용했죠. 범퍼에서 시작되는 완만한 곡선은 C-필러까지 이어져 전체적으로는 코롤라보다 '통통한' 실루엣을 지니게 됐습니다.


1997년 12월 10일, 세계 최초의 양산 하이브리드 자동차 프리우스가 출시됩니다. 출시 가격은 215만 엔(2022년 물가로 한화 약 4,000만 원)으로 언론의 예상보다는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첨단 기술을 담았다 해도 준중형차 치고는 매우 비쌌고, 토요타도 시장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해 우선 일본 내수 시장에서만 팔기로 합니다.

전기형 프리우스는 일본 내수에서만 판매됐고, 극소량이 호주에 수출됐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당초 계획은 월 1,000대 정도의 판매였지만, 실제로는 월 1,500대 정도가 팔렸습니다. 비록 초기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다소 이질적이었고 가격도 비쌌지만, 미래적인 디자인과 최첨단 하이브리드 시스템, 그리고 일본 기준 28.0km/L에 달하는 경이로운 연비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기대 이상이라는 걸 확인한 토요타는 발빠르게 프리우스의 개선 작업에 들어갑니다. 유럽과 미국에도 프리우스를 팔기 위해서였죠. 영상 50℃의 미국 데스밸리에서도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테스트하고, 아우토반의 주행 조건에 맞춰 쉬지 않고 최고속도로 달리기도 합니다. 또 전반적인 내구성과 성능 향상에도 신경 씁니다.

디자인과 사양을 개선한 페이스리프트 버전은 하이브리드 시스템 향상에 집중했습니다.

2001년 출시된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보다 세련된 디자인을 적용하는 한편, 엔진의 최고출력을 58마력에서 70마력으로 끌어 올립니다. 모터의 파워와 토크도 10% 가량 개선해 고속 주행의 부담도 덜었습니다. 평균 속도가 높은 해외 시장의 환경을 반영한 것이죠.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완성도 향상에 집중했지만, 에어컨을 기본사양으로 추가하는 등 편의사양도 개선됐습니다.

페이스리프트 버전의 인테리어. 에어컨이 기본 사양으로 탑재됐고, 위성 내비게이션 같은 옵션도 추가됐습니다.

그렇게 세계 시장에 출사표를 낸 프리우스는 대히트를 쳤을까요? 아쉽게도 그러진 못했습니다. 미국에서 초저배출차량(Ultra Low Emission Vehicle, ULEV) 인증을 받는 등 평가는 좋았지만, 낯선 기술이 담긴 뚱뚱한 소형차를 웃돈 주고 살 소비자가 해외에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후일 토요타 경영진이 "프리우스의 실패 탓에 회사가 파산할 지경이었다"고 회고할 정도였죠.

1세대 프리우스는 비록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 유산은 찬란하게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의 씨앗은 이내 아름답게 성장했습니다. 2003년 출시된 2세대 프리우스는 일본 기준 공인 연비 35.5km/L를 달성하고 디자인과 편의성을 일신해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받기 시작했고, 2000년대 가장 성공적인 친환경차로 성장합니다. 이어서 출시된 3·4세대 프리우스 모두 세계적인 히트 모델로 자리 잡으며 1세대의 실패를 만회했죠.


프리우스의 유산은 후속 모델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프리우스를 개발하며 축적한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기술력은 이내 다른 모델에도 확대 적용됐고, 소형차부터 대형차, SUV, MPV는 물론 프리미엄 브랜드인 렉서스에도 확대 적용됐습니다. 오늘날 토요타가 세계 최고의 하이브리드 기술력을 갖추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하이브리드를 판매하는 회사가 된 것도 모두 프리우스 덕입니다.

프리우스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 나중은 장대했습니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먼 미래처럼 느껴졌던 전기 파워트레인 친환경차를 현실로 가져온 주역입니다. 2022년 현재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전동화된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것도 프리우스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21세기 자동차를 꿈꾸며 미약한 발걸음을 내딛은 프리우스는, 21세기를 대표하는 친환경차의 선구자로 기록되며 자동차 역사에 장대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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