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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미디어 PCARMEDIA Jan 11. 2022

자동차 회사, 이름을 알면 역사가 보인다?

카 히스토리

이름에는 항상 의미가 담기기 마련입니다. 갓난아기의 이름을 지어줄 때는 아이가 살아갈 삶의 방향을 정해주고, 아끼는 반려동물에게도 특별한 추억이나 성격, 외모 등에서 딴 이름을 지어주기 마련이죠.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본다면 회사의 사명이나 브랜드명, 제품명에는 비전이나 추구하는 방향성, 제품의 특장점을 함축적으로 담기 위해 고민합니다.


자동차 회사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별 모델의 차명에 제품 콘셉트를 담거나, 직관적으로 차급과 성격을 설명할 수 있는 알파뉴메릭(alphanumeric) 방식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명은 회사의 역사나 방향성이 담겨 있습니다. 결국 이름의 기원을 알면 자동차 회사의 역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셈이죠.


여러 회사들, 특히 서구권 회사들은 창업자의 이름에서 따온 사명을 사용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외로 약자로 이뤄진 사명이나 특정 모델명이 사명으로 승격된 경우, 혹은 회사의 이념을 담아 지어진 이름도 많죠. 오늘은 자동차 회사들의 사명에 담긴 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사람 이름에서 따 온 많은 사명들
포드를 비롯한 많은 회사들이 창업주의 이름을 브랜드명으로 사용 중입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많은 자동차 회사들이 창업자의 이름을 그대로 사명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실 자동차 뿐 아니라 유서 깊은 기업들은 이런 작명 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죠. 사람 이름을 사명으로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입니다.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회사로는 포드(헨리 포드), 쉐보레(루이 쉐보레), 뷰익(데이빗 뷰익), 크라이슬러(월터 크라이슬러), 닷지(닷지 형제) 푸조(아르망 푸조), 시트로엥(앙드레 시트로엥), 르노(루이 르노), 페라리(엔초 페라리), 마세라티(알피에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페루치오 람보르기니), 맥라렌(브루스 맥라렌), 포르쉐(페르디난트 포르쉐), 롤스로이스(찰스 롤스와 헨리 로이스), 벤틀리(월터 오웬 벤틀리) 등이 있습니다.

토요타 역시 창업주 토요다 사키치의 이름을 썼지만, 영어 발음의 편의를 고려해 '다'를 '타'로 바꿨습니다.

일본 자동차 회사 중에서도 이런 경우가 적지 않은데요. 토요타(토요다 사키치), 혼다(혼다 소이치로), 마쓰다(마쓰다 주지로), 스즈키(스즈키 미치오), 야마하(야마하 토라쿠스) 등이 창업주의 이름을 따 왔습니다. 이 중에서도 몇몇은 여전히 창업주의 후손이 직접 경영에 참여하고 있기도 합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메르세데스'는 고객이자 딜러였던 에밀 옐리네크의 딸 이름입니다.

창업주의 이름을 따 오긴 했지만, 다른 단어와 합성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메르세데스-벤츠인데요. 창업자 이름인 칼 벤츠(또 다른 창업자 고틀립 다임러는 다임러 그룹에 차용됩니다)의 이름과 과거의 모델명인 메르세데스를 합친 이름입니다. 원래 메르세데스는 다임러의 고객이자 딜러였던 에밀 옐리네크의 딸 이름이었는데요. 딸에 대한 헌정의 의미로 붙여진 이 이름이 다임러와 벤츠의 합병 이후 사명이 된 것입니다.


영국의 애스턴마틴도 비슷한데요. 창업자는 라이오넬 마틴과 로버트 뱀포드지만, 이들의 차가 활약했던 애스턴 힐 클라임 레이스에서 따와 애스턴마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 이름은 라이오넬 마틴의 아내가 "기업 명단에서 맨 위에 올라오도록 'A'로 시작하는 이름을 짓자"고 제안해 붙여졌다고 전해지는데요. 어쩌면 훗날 공동 창업자였던 로버트 뱀포드가 회사를 떠난 것도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전기차 테슬라와 니콜라 테슬라는 별 관계가 없지만, 남의 이름을 빌린 경우입니다.

이름은 이름인데, 남의 이름을 빌린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전기차 회사인 테슬라죠. 테슬라는 천재 전기공학자 니콜라 테슬라의 이름을 딴 회사입니다. 테슬라의 성공은 비슷한 이름의 전기차 회사를 여럿 탄생시키기도 했는데, 전기 상용차 스타트업 니콜라가 그러했고, 한국의 전기 버스 회사인 에디슨 모터스도 '테슬라를 뛰어넘겠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양대 프리미엄 브랜드인 캐딜락과 링컨 모두 타인의 이름을 사용하는데요. 캐딜락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를 개척한 프랑스인 탐험가 앙투안 카디약의 이름을 따 왔고, 링컨은 창업자가 자신이 투표했던 위대한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이름을 따 왔습니다. 재미있는 건, 정작 이 두 회사를 세운 사람이 동일 인물이라는 사실인데요. 헨리 릴랜드가 캐딜락을 GM에 판 뒤 차린 회사가 바로 링컨입니다. 라이벌이 된 두 회사를 한 사람이 설립했다는 건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이 이름이 이니셜이었다고? 의외의 유래를 지닌 이름
흔히 '만트럭'으로 알려진 MAN은 원래 이니셜로, 서구권에서는 '엠에이엔'으로 읽습니다.

이처럼 '사람 이름'이 대세인 자동차 업계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서양에서는 사명의 이니셜을 따 약자로 지은 사명도 사람 이름 못지않게 많은데요. 대표적인 게 '바이에른 원동기 공업사(Bayerische Motoren Werke)의 약자인 BMW죠. 같은 독일의 만(MAN) 역시 아우크스부르크-뉘른베르크 기계 공장(Maschinenfabrik Augsburg-Nürnberg)의 줄임말로, 서구권에서는 '엠에이엔(독일어로는 엠아엔)'이라고 읽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오랫동안 굳어진 명칭인 '만'으로 읽습니다.


약자라는 사실이 잘 안 알려진 회사도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피아트는 '토리노의 이탈리아 자동차 공장(Fabbrica Italiana Automobili di Torino)'의 약자이고, 알파로메오는 '롬바르다 자동차 공장 주식회사(Anonima Lombarda Fabbrica Automobili)'의 약자인 ALFA와 후일 회사를 키운 사업가 니콜라 로메오의 이름을 합친 케이스입니다.

아우디의 사명은 그 역사가 제법 복잡한데, 창업주의 이름에서 유래한 표현이자 동시에 약자입니다.

약자에 이중적 의미를 담기도 합니다. 아우디는 원래 창업자 아우구스트 호르히가 자신의 성(Horch)이 '듣다'라는 의미인 데에서 착안, 같은 의미의 라틴어 'audi'로 지은 이름입니다. 그는 원래 자신의 이름 그대로인 '호르히'라는 자동차 회사를 차렸다가 쫓겨난 이력이 있는데, 상표권 문제로 '호르히'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게 되자 대신 지은 것이죠. 공교롭게도 훗날 아우디와 호르히, DKW, 반더러 등 네 개의 회사가 합병돼 '아우토우니온'이라는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는데, 그 중 현재까지 대표 브랜드로 남아 있는 아우디에 '아우토우니온 독일 잉골슈타트(Auto Union Deutschland Ingolstadt)'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합니다.


영국의 재규어는 도중에 사명이 바뀐 경험을 지닌 회사인데요. 원래는 오토바이용 사이드카 제조사로 시작해 스왈로우 사이드카의 약자인 S.S.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사명이 악명높은 나치의 S.S. 근위대와 혼동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로, 앞서 출시된 차명을 따 와 '재규어'라는 이름을 쓰기로 합니다.

프랑스의 DS는 차명이 프리미엄 브랜드명으로 독립한 경우입니다.

재규어 외에도 특정 차명이 회사 이름으로 승격된 경우는 또 있습니다. 프랑스의 프리미엄 브랜드 DS는 과거 시트로엥의 고급 승용차 DS의 이름을 브랜드로 격상시킨 대표적 사례입니다. DS라는 이름 자체는 이니셜이 아닌, 프랑스어로 '여신'을 의미하는 '데에쎄'와 발음이 같아 쓰인 케이스입니다.


그 밖에도 은어에서 윌리스/AMC의 모델 명으로 발전한 지프, 영국 로버의 오프로드용 차명이었던 랜드로버, 오스틴/모리스/브리티쉬레일랜드 등 여러 회사를 거친 차명 미니 등이 현재는 모두 독립 브랜드의 이름이 됐습니다. 이런 브랜드의 경우 해당 모델의 강력한 아이덴티티가 하나의 브랜드를 이룰 만큼 성장한 케이스이기 때문에, 고유의 색채가 매우 강한 브랜드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볼보는 원래 SKF의 볼 베어링 상표였습니다. 자동차 회사명으로 쓰인 건 한참 뒤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다른 산업을 모태로 탄생한 회사의 경우, 그 기원이 사명에 담겨있기도 합니다. 스웨덴의 볼보는 원래 철강회사 SKF의 자회사로 탄생했는데요. 이 회사의 제품 중 하나인 볼 베어링의 상표명으로 고안된 이름입니다. '볼보'는 라틴어로 '구르다'라는 의미의 'volvere'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자동차 역시 잘 굴러가야 하니... 어떤 의미로는 자동차에도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제는 없어진 또 다른 스웨덴 회사, 사브는 '스웨덴 항공기 유한회사(Svenska Aeroplan AB)'의 약자입니다. 원래 항공기 회사로 시작된 회사의 역사가 이름에도 그대로 담겨 있는 셈입니다. 여담으로 사브 자동차는 2012년 파산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같은 사명과 로고를 공유하는 항공기 사업 부문은 여전히 사업을 영위 중입니다.

콜린 채프먼이 설립한 로터스는 왜 '로터스'인지, 아직까지도 정확한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한편, 사명의 유래를 정확히 알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의 로터스는 1952년 창업주 콜린 채프먼이 차린 '로터스 엔지니어링'으로부터 사용된 유서 깊은 이름인데요. 문제는 아무도 왜 '로터스(연꽃)'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영적 의미를 지닌 연꽃에서 따 왔다는 설, 호머의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전설의 과일 이름이라는 설, 콜린 채프먼의 말버릇이었던 'us lot'의 애너그램이라는 설 등이 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하네요.


한국 자동차 회사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을까?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이자 재계 서열 2위인 현대차그룹의 '현대'는 정주영 회장이 차린 정비소에서 유래합니다.

자, 지금까지 많은 자동차 회사의 이름을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궁금한 건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한국 자동차 회사의 이름이겠죠? 창업주 이름을 그대로 사명으로 쓰는 일이 적은 우리나라의 특성 상, 한국 자동차 회사의 사명은 일종의 목표 내지는 비전을 담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인 현대자동차만 해도 그렇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현대자동차, 더 크게 보자면 현대그룹의 창업주는 정주영 회장인데요. 수많은 회사에 붙여진 '현대'라는 이름은 공교롭게도 현재 그룹의 대표 사업인 자동차에서 유래했습니다. 바로 1946년 정주영 회장이 설립한 정비소, '현대자동차공업사'에서 최초로 쓰인 것인데요. 정 회장은 훗날 "현대 문명의 이기(利器)인 자동차를 수리하는 곳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회술한 바 있습니다.


현대차그룹의 일원인 기아는 1952년 세워진 기아산업이 그 모태입니다. 기아는 '아시아에서 일어서다(起亞)'라는 의미와, 정밀공업 제조품인 톱니바퀴(기어)의 중의적 의미로 지어진 이름인데요. 초기에는 국내 최초의 자전거 '3000리호'(오늘날 삼천리 자전거의 기원)를 비롯해 오토바이 등 정밀 기계 제조에 몰두했고, 1962년 삼륜차를 시작으로 자동차 산업으로 그 영역을 확장했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현대차와 경쟁 관계였지만, 그룹 부도 후 1999년 현대차그룹에 인수됩니다.

제네시스 역시 하나의 모델명이 독자 브랜드로 승격된 케이스입니다.

제네시스는 앞서 살펴본 해외 사례처럼 특정 모델 명이 브랜드 명으로 격상된 경우인데요. 2008년 출시된 1세대 제네시스가 그 시초입니다. 당시 '고급차의 새로운 창세기'를 표방하며 성경 창세기(Genesis)에서 따 온 이름인데, 모델의 인지도가 쌓이면서 2015년 브랜드 론칭과 동시에 그 이름을 그대로 활용한 것이죠.


르노삼성은 잘 알려진 것처럼 르노가 삼성그룹으로부터 자동차 부문을 인수하며 붙여진 이름입니다. '삼성'은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1938년 차린 '삼성상회'에서 처음 쓰였는데요. 완벽을 의미하는 숫자 '3'과 밝고, 높고, 영원히 빛나는 '별'을 합쳐 지어진 이름입니다. 회사가 매각된 뒤에도 르노'삼성'이라는 이름은 20년 넘게 쓰였는데요. 지난해 브랜드 사용권 계약이 종료되면서 내년 8월에는 브랜드명이 전면 교체될 전망입니다.

한때 굴지의 재벌이었던 대우 그룹의 이름은 '대도실업'과 김우중 회장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왔습니다.

이제는 한국GM이 된 옛 대우자동차의 사명은 1967년 김우중 회장이 차린 대우실업에서 유래합니다. 대우는 공동 창업자였던 도재환 사장의 회사 '대도실업'의 '대(大)'와 김우중 회장 본인의 이름에서 딴 '우(宇)'를 합친 건데요. 다른 회사들과 달리 창업주의 이름이 한 글자나마 들어간 것이 특징입니다. 대우자동차는 2002년 GM에 인수된 뒤에도 'GM대우'라는 이름을 유지하다가, 2011년 쉐보레 브랜드가 도입되면서 그 이름이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쌍용자동차의 이름은 모기업이었던 쌍용그룹이 처음 시멘트 공장을 세운 지명에서 유래합니다.

마지막은 쌍용자동차입니다. 쌍용자동차의 시작은 드럼통으로 버스를 만들어 판 '하동환 자동차 제작소'인데요. 우리나라 자동차 역사를 통틀어서도 거의 유일하게 창업주의 이름이 사명으로 쓰인 사례입니다. 하동환 자동차는 신진자동차, 동아자동차를 거쳐 쌍용그룹에 인수돼 오늘날의 사명이 정착됩니다. 쌍용그룹은 김성곤 회장이 시멘트 회사인 쌍용양회공업이 모태였는데요. '쌍용'은 시멘트 공장이 위치한 영월군 쌍용리에서 따 왔다고 합니다. 이 또한 국내 지명에서 유래한 희귀 케이스라 할 수 있겠네요.


21세기 들어 전기차, 자율주행 등 신기술을 앞세운 신생 자동차 회사들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습니다. 개중에는 창업자의 이름을 딴 경우도, 회사의 비전을 품거나 전혀 다른 의미를 담은 경우도 있습니다. 서비스로서의 모빌리티(MaaS)가 대두되면서 이름의 역할이 점점 줄어든다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 회사의 이름에는 새로운 꿈과 야망이 담겨 있습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이름의 자동차 회사가 등장하게 될까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몰 매거진>

www.pcarmal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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