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트렌드
기록적인 폭우가 소강상태로 접어들면서 전국 각지에서 침수차 피해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업계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침수된 차량은 보험사에 접수된 것만 1만 대에 달하고, 총 피해액은 1,420억 원을 넘어섰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역대급 침수 피해"인 셈입니다.
이처럼 침수 차량이 속출하면서 보험 업계 외에도 비상이 걸린 곳이 있는데요. 바로 중고차 업계입니다. 1만 대 가까운 침수차가 발생하면서 이 중 일부가 침수 중고차로 시장에 유입될까 우려하는 겁니다. 실제로 세간에서는 "앞으로 당분간 중고차는 거들떠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그렇다고 당장 중고차가 필요한데 차를 사지 않고 버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침수 중고차,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이런 침수 중고차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손 처리한 침수차는 중고차로 안 나와
일반적으로 침수차의 경우 자동차 보험을 통해 보상 절차를 밟습니다. 침수된 차량이 자기차량손해담보 특약(통칭 자차 보험)과 단독사고손해보상 특약에 가입돼 있을 경우, 폭우나 태풍 같은 천재지변으로 차량이 침수돼도 별도의 보험료 할증 없이 피해를 보상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차들이 중고차로 시장에 나올 가능성도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재는 가능성이 없습니다. 과거에는 폐차업자가 보험사로부터 인수한 침수차를 폐차하지 않고 매각해 수리 후 되파는 사례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에 정부에서 침수 중고차 및 전손 차량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 2018년 4월부터 폐차이행확인제를 시행 중입니다.
폐차이행확인제란 보험사가 국토교통부에 폐차 대상 차량 목록을 제출하면 국토부가 해당 차량을 인수한 폐차업자가 1개월 내로 폐차 처리를 진행하는지 직접 확인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의 도입 덕분에 보험사에서 침수 등의 사유로 전손 처리한 중고차가 시중에 풀리는 경우는 크게 줄었습니다.
단,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전손 처리된 차량에 한해서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완전히 침수돼 폐차하는 경우가 아닌, 실내에 물이 들어오는 등 부분 침수된 차량을 전손 처리하지 않고 미수선 등으로 수리해 파는 경우 보험 이력 상 침수 이력이 남지 않으며 폐차이행확인제의 대상이 되지도 않습니다. 따라서 보험을 통해 수리한 차량이 반드시 침수차가 아니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침수차, 무사고 중고차로 이렇게 둔갑한다
문제는 자차 특약을 들지 않은 상태로 침수된 차량입니다. 이런 침수차는 보험 처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주가 직접 차를 수리하든, 판매하든, 혹은 폐차하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요. 수리는 큰 비용이 들고 폐차는 말 그대로 "폐차값"밖에 받지 못하는 까닭에 차주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돈을 받고 판매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비양심적인 전문 업자들은 헐값에 사들인 침수차를 최소 비용으로 수리해 "굴러만 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든 뒤 무사고 차량으로 둔갑시켜 판매합니다. 이런 식으로 보험 처리 없이 유통되는 침수 중고차는 이력 상 침수 여부가 기록되지 않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가 서류만 보고 침수차를 구분해내는 건 불가능합니다.
물론 "이론 상으로는" 침수차도 수리가 가능합니다. 침수된 엔진과 내장재, 각종 전자장비, 배선류를 싸그리 새것으로 교체하고 방청 작업을 한다면 문제 없이 탈 수 있겠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차값을 훌쩍 넘는 수리비를 지불하고 그렇게 고치는 경우는 없습니다. 결국 침수 중고차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침수차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는 다양합니다. 엔진을 비롯한 구동계의 고장, 주행 중 시동 꺼짐, 배선의 부식으로 인한 전자·전기 장치의 오작동 및 합선으로 인한 화재, 차체 부식 등 각종 크고 작은 고장이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이렇게 위험한 침수 중고차, 어떻게 가려내야 할까요?
침수 중고차, 어떻게 확인할까?
작정하고 속이려 드는 사람을 가려내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침수 중고차도 마찬가지로, 애초부터 침수 이력을 숨기기로 작정한 만큼 단순한 서류 조회 정도로 침수 여부를 확인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때문에 의심 가는 부분이 있다면 숨기기 어려운 부분들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과거에는 엔진룸 안쪽이나 문짝의 고무 몰딩 안쪽, 카펫 아랫쪽 등에 물자국이나 진흙이 말라붙은 흔적이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많이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정보들이 널리 알려지고, 침수 중고차의 상품화 작업이 고도화되면서 이 부위들까지도 세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상품화 과정에서도 교체하기 어려운 부위들을 중점적으로 살피는 것이 좋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스티어링 칼럼입니다. 운전대와 앞바퀴를 연결해주는 스티어링 칼럼은 금속제인 경우가 많은데, 이 부위에 심한 부식이 있다면 침수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운전석 아랫쪽에서 운전대를 올려다보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 안전벨트의 경우 침수 차량이라면 물에 잠겼다 마르면서 물자국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상품화 과정에서 안전벨트를 교체할 수도 있지만, 안전벨트는 통상 침수나 큰 사고가 아니면 교체할 일이 없는 부품입니다. 따라서 차량의 연식과 안전벨트 라벨에 새겨진 생산일자를 비교하거나, 안전벨트 고정 볼트를 탈착한 흔적이 있는지 확인해보면 좋습니다.
침수차에서 가장 흔히 고장을 일으키는 부품은 각종 배선입니다. 물에 잠기면서 부식되거나 합선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때문에 엔진룸에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ECU나 퓨즈박스 따위에 연결된 배선 상태를 확인하고, 연식이 오래되지 않았음에도 교체 흔적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 밖에도 시트 레일, 트렁크 매트 아래 스페어 타이어 랙 등을 꼼꼼히 살펴야 하며, 매매 계약서를 작성할 때 '침수 사실이 밝혀지면 배상한다'는 내용의 특약을 기재하는 것도 만일의 법적 분쟁 시 중요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중고차 업계에서는 침수차가 여러 정비와 상품화를 거쳐 중고차 시장에 유통되는 데에는 적어도 1~2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8월 초 침수 피해를 겪은 차량이 이르면 올 가을께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인데요. 따라서 추석 이후 중고차를 구매할 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됩니다.
비양심적인 관행을 척결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현재로선 소비자들이 똑똑하게 침수 중고차를 가려내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특히 사고 및 정비 이력이 불투명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판매처의 중고차는 아무리 시세보다 저렴하더라도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신중한 선택을 통해 침수 중고차로 인한 2차 피해를 보지 않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