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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즈 Jan 27. 2023

원로배우 윤정희님의 별세와 성년후견 소송을 보고...

feat. 할머니를 하늘로 보내면서 겪은 이야기

원로배우 윤정희님이 2023년 1월 20일 파리에서 별세 했다고 한다. 고인은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배우였다고 한다. 아무래도 내가 태어나기 전이어서 익숙한 배우는 아니고, 내게는 그 남편이신 백건우님이 더 익숙하다. 유명한 피아니스트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튼 이 기사가 눈길을 끈것은 성년후견과 관련하여 직계가족형제자매사이의 소송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성년후견제도는 장애·질병·고령 등으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의 결정 또는 후견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관리와 일상생활에 관한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일종의 치매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윤정희님의 경우는 성년후견인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남편인 백건우씨와 직계인 따님이 있으셔서 성년후견인은 따님이 되신것으로 알고 있고 이와 관련하여 윤정희님의 형제자매들은 불복하여 다툼이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형제자매 입장에서는 윤정희님이 남편과 딸로부터 온당한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주장하면서 성년후견인으로 따님이 선정된것에 반대하였고 배우자인 백건우님과 그 따님은 윤정희님이 온당한 보호아래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옳고 그름 혹은 진실과 관련된 내용은 나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글을 끄적이게 이끈것은 이 상황과 유사한 이슈가슴아팠던 불편한 과거가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성년후견소송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을 보는순간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벌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도 5년여가 흘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덕에 30대에 가장이 되셨고 맨손에서 시작하여 서울에 자리를 잡으셨다. 줄줄이 있는 여동생들을 챙기며 시집보내고 한순간도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돌아가실때까지 함께 하셨다.

 어머니는 어떠신가. 요즘에는 상상도 할수 없겠지만 20대에 결혼하신 이후 맞벌이를 하면서 시어머니를 50여년을 모시고 사셨다.

 세월앞에 헤어짐은 어색하지 않은 과정이듯 할머니께서는 고령에 넘어지면서 받으신 고관절 수술 이후로 거동이 불편해 지셨고 요양병원에서 6개월남짓 계시다 폐렴으로 대학병원에서 돌아가시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고모들아버지 어머니는 완전히 돌아서게 되었다. 아니 일방적으로 고모들에게 부모님은 왕따를 당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할머니 병원 알아보고 요양병원 쫓아다니면서 애를 쓰셨다. 하지만 출가외인이라며 선을 긋던 고모들이 똘똘뭉쳐서 할머니를 모시고 케어하는 부모님을 심하게 비난했고 돌아가시면서 반목을 하게 된것이다.


그럴 수 있다.

 고모들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를 장남이 되가지고 시녀 여럿 두지도 못하고 겨우 일하시는 가사도우미 달랑 한분 한평생 붙여놓은것이 전부이고, 어디 폼나고 좋은데도 많이 다니지 못하는 울 아부지가 못마땅 했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고모들중 누구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람은 없었지만, 묵묵히 50년을 '자기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울 엄니는 당연히 차고 넘치게 감당해야 하는일인데도 제대로 못한다고 못마땅 했을 수 있다.


 그분들을 이렇게 이해해보려고 천번 만번을 노력했다.


 하지만 '나'대신 '우리 사랑하는 엄마'를 모시고 반백년자신들을 대신해준 '오빠'와 '새언니'에게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다못해 병원에 계신 도우미나 간병인에게도 이런 대접을 하지는 않을텐데 말이다.



들여다보면

 한달에 1000만원가까이 하는 요양병원비는 몇십만원도 나눠 댈 형편이 안된다며 투덜대면서 1인실 아니면 그것밖에 안되냐며 빽빽대는 모습

 요양병원 같이 알아보러갈 시간은 없지만 전망과 시설이 최고가 아니라고 투덜대는 모습

 임종하시고 퇴원수속 할때, 2000만원되는 할머니 수술비며 병원비는 한푼도 내지 않고 어디론가 사라저 버리고선 장례식에 온 몇 안되는 본인 손님 부의금은 받아야 겠다는 모습


일부만 말하지만,  정말 주옥같은 일들이 넘치고 흘렀다. 책으로 써도 될만한 분량의 에피소드들이...

과연 어떤 희생을 원한걸까. 부모님도 본인들의 삶이 있을진데... 할머니의 몸종을 원한걸까.


부모님은 집근처에서 개인사업을 하셨고 아버지는 아침은 물론 점심도 집까지 가서 할머니와 함께 드셨다. 70평생을. 지극정성이란 이렇게 세월을 마주하고 한결같이 보내는것이 아닐까. 

 한달에 두번 쉬는 사업자라 대단한 여행은 못가더라도 할머니 생신은 꼭 친지들을 불러서 식사를 하셨다. 

 물질적으로도 우리 부모님이 어디 대단한 귀족이나 준재벌은 아니셨기에 언제까지 계실지 모르는 요양병원에 매달 한달에 1000만원가까운 비용을 부담없이 댈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기약이 없는 비용이다. 누군들 가능할까. 집팔아서 병원비 댈수는 없는것 아닌가.

 이런 가운데에도 자식된 도리, 며느리된 도리를 다하느라 최고와 최선을 함께 하려고 노력하셨다.



이해를 해본다. 

내가 하는건 어려워도 남이 하는건 쉬워보이는 거겠지

설혹 내심 충분치 않더라도 그것 마저도 엄청난 노력과 희생이라는걸 인지하지는 못하는 거겠지

그리고 내가 못하는일을 나대신 해주는 누군가에게 고마움이란 자리잡기 힘든 거겠지



아직도... 이해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잊고 살려고 노력중이다.

살다보니 이런일도 있고 이것도 업보라면 업보겠다.

때론 곁에서 보기에도 화가 나고 때론 어이가 없기도 하다.

부모님은 그럼에도 그냥 묵묵히 할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매년 할머니 기일마다 답장없는 연락을 하신다.


...

...

참 아이러니하게도 생각 해 보니 본인들도 아들 하나씩들은 다 있더라.

부족했던 우리 아버지의 전철을 밟지 않고 잘 해줄 그 아들말이다.


그 아들들과, 있을지 없을지 모를(?) 며느리들의 당연한 희생이

훌륭한 나의 고모들을 앞으로 성대하게 보필해주길 바라면서...


하늘에서 할머니가 보고 계실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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