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내가 아픈 곳은 마음이었기에
아이의 여정을 지켜보며, 나는 나의 여정을 다시 살게 되었습니다. 설소대 수술, 조음장애, 아빠의 부재, 느린 발달...그 모든 시간을 지나 우리 아이는 홈스쿨이라는 낯선 길 위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매일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한 엄마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엄마라서'가 아니라, '나도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쓰는 글입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 존경합니다. 함께 힘내요!
오래된 사진첩에서 ‘꼬비’를 만났다. 솜뭉치 같던 흰 털, 까만 콩 세 개가 콕콕 박힌 얼굴. 사진을 뚫고 내 손가락을 핥던 말캉하고 축축한 혀의 감촉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꼬비야…”
외출하고 돌아오면 온몸이 부서져라 꼬리를 흔들던 너. 내 마음이 지옥 같던 날엔 말없이 무릎에 머리를 기대고, 칠흑같이 까맣고 깊은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너. 내 베개 옆에 웅크리고 잠든 너의 온기를 느끼며 함께 낮잠 자던 시간들.
그때의 나는 개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랑을 주는 생명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모든 것은 그날, 그 순간 이후로 변했다. 이혼 후, 겨우 두 돌 넘긴 아들을 아기띠에 안고 동네를 걷던 평범한 오후였다.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었을까.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커다란 들개 다섯 마리가 우리를 에워쌌다. 목줄도 없이, 무리를 지어 사냥에 나선 늑대처럼 차갑게 번득이는 눈빛.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고막 바로 옆에서 울리는 듯했다. 드러난 이빨 사이로 흐르는 침이 번들거렸다. 심장이 뚫고 나올 듯이 방망이질 쳤고, 아기띠 속 아이의 새근거리는 숨소리만이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아이를 받친 내 손은 축축하게 젖어들었다.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아가, 제발 깨면 안 돼…’
아이가 울거나 내가 당황해서 등을 보이는 순간, 저들은 망설임 없이 뛰어오르리라. 그건 이성이나 판단이 아니라, 생존을 향한 동물적인 직감이었다.
다행히 한 주민의 고함에 녀석들은 겨우 흩어졌지만, 지옥 같던 몇 분은 내 기억 세포 하나하나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후 나는 ‘개 공포증’ 환자가 되었다. 길 건너편의 작은 푸들만 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고, 나도 모르게 아이의 손을 틀어쥐고 길을 돌아갔다. 아이는 영문을 모른 채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엄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아이에게 세상의 위험을 필터링해 주기는커녕 공포를 대물림하는 못난 어른이 되어 있었다. 죄책감은 늘 나의 몫이었다.
몇 년이 흘러 상담 공부를 시작하고서야, 나는 내 공포의 진짜 이름과 마주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스승님은 어깨를 토닥이며 말씀하셨다.
“선생님이 무서웠던 건 개가 아니에요.
내 아이 하나 지켜주지 못할지 모른다는,
가장 원초적인 엄마의 공포와
무력감이었던 거죠.”
아.
그랬구나. 내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것은 네 발 달린 개가 아니라, 내 아이를 지켜낼 수 없는 무력한 나 자신이었구나.
내 공포의 진짜 이름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한결 나아졌다. 요즘 나는 길에서 강아지를 마주쳐도 그때처럼 얼어붙지 않는다. 물론, 앙칼지게 짖으며 달려들 땐 심장이 살짝 ‘쿵’ 하긴 하지만.
예전처럼 길가의 모든 강아지에게 하트 눈을 날리지는 못하게 된 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내가 개를 무서워하게 될 줄, 나도 꿈에도 몰랐는데... 꼬비가 정말 보고 싶다. 사랑스러운 꼬비도, 그때의 나도...
그런 내 곁에서 자란 아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어느덧 훌쩍 자라 시니컬한 십 대가 된 아들은 나의 공포 따위는 가볍게 뻥, 차버렸다. 요즘 강아지 훈련 영상이나 개가 주인공인 영화에 푹 빠져 지내더니, 어느 날 배시시 웃으며 내게 말했다.
“엄마, 걱정 마. 내가 엄마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강아지를 찾고 있어. 언젠가 내가 꼭 데려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