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아이의 목소리로 답한다
이혼 후 첫겨울, 비가 내리는 창밖만큼 내 마음도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난방비를 아끼느라 살짝 서늘한 거실에서, 나는 담요를 끌어안고 있었다. 텅 빈 집 안에서, 아이만이 내 유일한 온기였다.
그때, 아직 세 살이었던 아들이 주방 바닥에 우유를 철벅철벅 쏟아붓고, 그 위에 견과류를 뿌리며 손으로 물결을 그리듯 휘저었다. "바다, 바다!"라며 까르르 웃었다. 평소라면 "와, 멋진 바다네!" 하고 맞장구쳤을 터였다. 하지만 그날의 나는 한계에 다다른 참이었다.
내 목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순간, 아기의 작은 눈에 눈물이 고였다. 이혼 후 불안해하던 그 조그만 아이가 숨을 꺽꺽 몰아쉬며 울기 시작했다.
그제야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무릎을 꿇고 아기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내 눈물이 아기의 등 뒤로 떨어져 그의 옷을 적셨다.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이 소중한 아이를 지킬 자격이 있을까? 자꾸만 의문이 들었다.
그날 밤, 아기가 잠든 후 침대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 기도가 하루, 이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신앙이라는 단어는 내게 오래전 지워진 말이었다. 가까운 이들에게 받은 상처가 모든 믿음까지 의심하게 만들었으니까. 따뜻했던 말들이 결국 차가운 비난으로 돌아왔던 이혼의 그 순간부터, 믿음은 내게 아픔이었다.
하지만 싱글맘의 삶에서 기도는
사치가 아닌 생존이었다.
끼니보다 더 자주, 더 간절히 찾아오는 것이 기도였다.
시간이 흘러, 아들은 어느덧 열두 살이 되었다. 어느 날, 텅 빈 냉장고 문에 붙은 카드 명세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결국 바닥에 쪼그리고 앉았다. 창밖엔 비가 내리고, 집 안은 고요해서 내 한숨 소리만 울렸다. 계산기를 두드리며 심장이 구멍 난 듯했다.
그때, 아들이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날따라 아들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마치 내 속을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엄마, 요셉 기억나? 형들한테 팔려서 노예가 됐고, 감옥까지 갔잖아. 근데 기도하고 희망 안 놓아서 결국 이집트에서 엄청 잘됐어. 우리 집은 따뜻하고, 나도 여기 있고… 엄마, 우리도 괜찮을 거야!"
그 순간, 아들은 그냥 아이가 아니었다. 하늘이 내게 보낸 천사였다. 홈스쿨링하며 잠들기 전 조잘조잘 나누던 성경 이야기가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내가 아이에게 심은 씨앗이 어느새 자라 나를 위로하는 나무가 되어 있었다. 와락 아들을 안으며 속삭였다.
"와, 그 말 엄마가 받은 최고의 응원인 거 알아? 고마워. 엄마 힘낼게. 근데 이건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어쩜 이렇게 빛나는 아이가 내게 왔을까?"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의 눈물을 본 아이는 깜짝 놀라 따라서 글썽거렸다. 둘 다 찌그러진 얼굴로 쳐다보니 갑자기 웃음이 났다. 울다 웃다, 아이의 온기가 나를 데웠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기도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가끔은 아들과의 소소한 순간이 기도를 대신했다. 함께 담요를 덮고 영화를 보며 깔깔대던 날, 아들이 "엄마, 우리 집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은 내게 하늘의 응답처럼 들렸다.
싱글맘에게 기도는 때로 절박한 간구이고, 때로 한숨 섞인 중얼거림이다. 오늘은 울며 매달리고, 내일은 감사로 가득한 고백이 된다.
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기도는 아이의 입술을 통해 하늘에서 내게 오는 응답이다. 내 기도의 높이는 언제나 아이의 키만큼, 아이가 자라는 만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