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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Feb 13. 2024

당신의 비밀번호는 무엇인가요

비밀번호에 관한 짧은 생각

B의 집에 들렀다 우리 집에 갈 때, B는 늘 살짝 긴장한 모습이었다. 네 번째 맞이하는 설날은 어느새 조금 편해졌는지 본가 출입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나를 쳐다보곤 씩 웃으며 말한다.



"집 비밀번호가 A 생일이었네?"



"어? 응 맞아. 하도 눌러서 내 생일이라는 자각도 없었네."



"왜 하필 A야? 동생들도 있는데."



"글쎄. 아마 엄마가 나를 제일 사랑하나 봐."






엄마아빠가 정해주는 것이 아닌, 내가 정한 첫 비밀번호는 동생들과의 비밀 일기장이었다. 그때 우린 셋이 매일매일 비밀 일기를 썼었다. 하나의 한글 파일에 비밀번호를 걸어두고 돌아가면서 일기를 쓰는 방식이었는데, 언제 게임을 해달라거나, 학교에서 누가 짜증 난다거나, 누굴 좋아한다거나, 혹은 싸우고 머쓱하게 서로에게 사과의 글을 쓰기도 했다.


그 파일의 비밀번호는 우리 셋의 이니셜과 집전화번호 끝자리를 조합한 것이었다. 저 때 정한 비밀번호는 한동안 너무 자연스럽게 내 비밀번호가 되었다. 이메일, 휴대폰 등등.

지금은 저정도는 아니지만 어렸을 때의 동생들은 나를 엄~~~~~청 따랐다.



다음 비밀번호는 첫 번째 남자친구와 관련된 것이었다. 사랑에 미쳐 있던(?) 어린 나는 비밀번호를 바꾸어야 할 때마다 그와 관련된 것들로 바꾸기 시작했다. 그의 생일 조합이라던가, 우리의 기념일과 관련된 것이라던가.


7년이라는 긴 연애였기에 그 비밀번호도  오랫동안 나에게 머물렀다.


그와 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멘트들이 뜰 때면 늘 "다음에 변경하기"를 눌렀다. 그를 기억하고 싶어서가 아니고, 단순히 익숙해서였다.


더 이상 바꿀 조합이 없을 무렵, 돌아가신 아빠에 관한 것들로 비밀번호 바뀌었다. 여러 과정을 거쳐 이제는 B와 나에 대한 것들로 내 비밀번호들이 정착되었다.






무의식이 정한 것들이지만, 돌이켜보면 전부 의미가 있었다. 억지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알고 있는 것.


그때의 나에게 소중한 것, 나에게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것들로 비밀번호가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이 꽤 흥미롭다. 그런 걸 보면 지금의 나는 B와 내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나 보다. 다음 비밀번호는 어떤 걸로 정하려나.



내가 그렇듯, 엄마에게는 우리 셋이 가장 소중한 존재인 것 같다. 아마도  다음 비밀번호는 둘째 동생과 관련된 것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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