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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Mar 05. 2024

조각레몬과 자몽 텀블러처럼 살고 싶다

게임에서 느낀 감동에 관한 아주아주 짧은 이야기

흔히 취미를 물으면 나는 독서, 게임, 야구 시청, 피아노라고 대답한다. 얼핏 세 개가 꽤 달라 보이지만 모두 내가 현실을 잊고 몰두해 생각을 비운다는 특징이 있다.



그중 게임은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구박을 많이 들었던 취미이다. 주로 fps게임, 그러니까 뭔가를 집중해 조준하는 총게임을 즐겨했던 나는 포트리스부터 서든어택, 오버워치를 좋아했다. 그 뒤로는 게임 자체를 좋아하게 되어서 롤에도 빠졌다가 모바일 게임, 컴퓨터 게임, 콘솔 게임 등 장르를 가리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여자애답지 않다며 내가 게임하고 피씨방 가는 것을 싫어했다. 너 그때 남자친구 없었으면, 너 그때 게임 덜했으면 서울대 갔다는 멘트는 20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남자친구가 없었어도, 게임 덜했어도 과연 서울대에 갔을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얼마 전, 엄마가 결혼식 때문에 서울에 올라와서 잤던 적이 있다. 엄마는 드라마를 보고, 나는 모바일 게임을 하며 엄마와 드라마에 참견도 하고 있었다. 엄마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게임을 하니?"



".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큰일 난대 엄마. 이거나 눌러봐 봐."



나는 요즘 한참 하고 있는 모바일 게임인 쿠키런의 뽑기를 엄마손가락을 빌려 눌렀다. 노가다로 번 크리스탈이 들어가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 쿠키런:  미국의 전래동화인 '진저브레드맨'을 모티브로 한 게임. 쿠키가 달리는 쿠키런과 쿠키들을 모아 싸우고 키우는 쿠키런 킹덤이 있다.



엄마가 뽑은 아이템들은 별로였다. 그런데 그중 평소엔 신경 쓰지도 않았던 쿠키들의 이야기(정확히는 쿠키의 펫이다.)가 너무  확 와닿았다.






젤리를 놓친 자몽맛 쿠키 뒤에서 무심하게 젤리를 주워주고, 땀을 흘릴 때면 시원한 주스를 무심하게 건네고, 가끔은 좀 더 마음을 여는 게 좋지 않겠냐며 무심하게 조언해 주는, 정말 무심한 펫





한 조각을 잃어 슬퍼하고 있었지만, 그랬기 때문에 젤리를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말을 건넬 수 있게 되었고, 상큼한 미소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좋아하는 쿠키에게 뽀뽀까지 날릴 수 있게 되었다! 무언가 잃게 되는 게 언제나 슬픈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라는 걸 조각레몬은 알게 되었다.






제작사에 시인이 있으신가. 단순 게임이라기엔 굉장히 철학적이다. 엄마는 감동받아하는 나를 보고 어이없어했지만 별 수 있나.



엄마가 뭐라 한들 이제부터 조각레몬과 자몽 텀블러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조각레몬이 되어 긍정적으로 뽀뽀를 날리고ㅡ3ㅡ 다른 사람에게는 자몽 텀블러처럼 무심하게 마음을 보듬어줄 수 있는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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