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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동글 Apr 01. 2024

파이어족이 될 건가 봐요 - 로드맵 계획 편

p 맞으세요?

우리는 아침 화장실 중복 사용을 피하기 위해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다. 보통은 내가 씻고 나올 때쯤 B가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20분 정도의 차이로 내가 먼저 집 밖을 나선다. 하지만, 우리의 걷는 속도 차이 때문인지 종종 같은 지하철을 탈 때가 있다.


B와 같은 지하철을 타면 B는 반갑다며 볼을 부비고는 이내 가방에서 책을 꺼내 읽는다.

신기해서 남겨놨다.

시간까지 재며 본격적으로 읽는 모습을 보니 뭔가 신기했다. 나도 출퇴근 길에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냥 읽고 싶어서인데 B는 너무 학구적이었다. 그날 저녁,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B에게 물었다.



"근데 왜 그렇게 책을 읽어?"



"파이어족이 될 준비인 것이지!"



"그냥 계속 책 읽는 게 준비야? 뭐 돈을 준비한다거나 그래야 하는 것 아니야?"



"그런 것도 다 책을 읽으면서 배웠지. 스콧 리킨스가 쓴 "파이어족이 온다"라는 책을 보면, 연 생활비 지출의 25배를 저축하면 은퇴 준비가 가능하대."



"그럼 우리는 얼마가 필요해?"



"책에 나온 계산법대로면 7억 5천 정도?"



"43살에 은퇴하고 싶다며~ 그럼 뭐 로또 사는 거야? 월급으로 어떻게 모아."




B는 갑작스러운 나의 질문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고, 이내 시무룩해졌다.



"네 말이 맞아 A야. 나 사실 구체적으로 짜야 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근데 나도 모르게 그걸 피하고 있었나 봐. 또 내 습관이 나오고 있었네."



B는 늘 시작을 어려워했다. 완벽하게 실행하기 위한 완벽한 계획을 갖추고 싶어서인지, 늘 목표를 위한 배경 지식을 쌓는다거나 계획을 세우는 것에 힘을 쏟는 적이 많았다. B의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나를 시무룩한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시무룩해하지 말고 B야. 시작이 어려운 만큼 한 번 시작하면 더 잘하잖아. 그럼 이제 파이어족 자체에 대한 배경 지식을 쌓기보다, 실행에 옮기기 위한 계획을 짜보면 어때?"



"오, 맞아. 그럼 되겠다. 잘 실행할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겠지? 그리고 이제 계획을 조금 구체적으로 잡아봐야겠다."



그리고 나는 이내 이 말을 후회하게 된다.






일주일 뒤인가. 아침부터 갑자기 이상한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부스스 깨어 거실로 나오니 B가 이상한 유튜브를 들으면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유튜브는 목표의 시각화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해라, 생각하는 게 이루어진다고 행동해라와 같은 자기 개발서에서 나올법한 말들이 들려 나왔다.


1월부터 시작한 유튜브 아저씨의 목소리는 정말 매일 아침마다 들려왔다. 이렇게 고통받을 줄 알았으면 말하지 말걸, 저 유튜버 목소리를 이제 길 가다 들어도 알아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역으로 가고 있었다. 아직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을 B에게 카톡이 왔다.



"A야, 그때 너랑 얘기하고 뭔가 생각이 정리가 되었어! 구체적인 장기 목표를 세우니까 중장기, 올해 목표, 달별 목표를 세울 수 있더라. 이거 봐봐."

 

다시 한번 느꼈다. 정말 진심이구나.


B는 노션에 이 계획을 정리하기까지 거의 일주일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계획을 정리하자 계획을 실행할 동력이 생겼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노션을 나에게 공유해 주면서 틈틈이 점검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정말 철저하다.






노션을 보내 준 이후 B의 눈은 아직까지 광기에 휩싸여 있다. 목표의 힘은 정말 대단하다. 목표를 정하자 동기 부여가 되어 잘하고 싶어 진 걸까?


한동안 아침에만 들리던 유튜버 아저씨의 목소리는 이내 B가 샤워하는 화장실에서도 들리기 시작했다. 덕분에 나도 그에 대한 지식이 많이 늘었다. 시각화니, 긍정 확언이니, 마인드 셋이니. 그전의 나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여러 내용을 습득했다. 물론 이런 내용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독서 취향 상 자기 개발서를 읽지 않았을 것이기에 접하지 않았을 내용이라는 의미이다.


아무튼 정말 그 힘인지 모르겠지만, B를 관찰하기 시작한 이래 꽤나 오래 그 모습이 유지되고 있다. 아침엔 책을 읽고, 퇴근하고 운동한 뒤 집에 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9시면 칼같이 책상에 앉는다. 혼자 앉아 있으면 외롭다며 누워있는 나를 끌고 오기에 내 고통은 추가되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나도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고, 미뤄두었던 텝스 준비도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아는 B는 마음먹은 목표는 높은 확률로 이루어내긴 하지만, 유난히 파이어족은 그것을 실행하는 데 슬럼프가 많이 왔던 주제이다. 그치만 뭔가 이번엔 좀 다르긴 하다. 저 광기에 찬 눈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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