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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보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by 진동글

누군가에게 기대가 크면,
실망도 그만큼 크게 다가온다.
인류애가 줄어드는 기분이랄까.

그래도 늘 하던 대로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지.
사람이 다 같을 순 없고,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고.
이해하려는 쪽에 나를 두면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기도 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잘 안 됐다.
머리로는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데,
몸은 자꾸 딴 반응을 한다.
표정이 굳거나, 말수가 줄거나,

어색하게 웃거나, 그 사람과 조용히

거리를 두게 되는 식으로.







나는 원래 어지간한 일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로 넘겨 왔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만큼 다양한 기준과 선택이 있으니까.
그렇게 이해하려고 애쓰다 보면

어느 순간 마음이 누그러들기도 하고,
상대를 보는 시야도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았다.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이

나를 더 지치게 했던 걸까.

머리로는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정은 전혀 따라오지 않는 요즘.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표정이 굳고,

눈을 피하고, 마음이 뚝 떨어져 있다.

그럴 땐 내가 나를 오히려 더 불편하게 느낀다.






"그럴 수 있지"라는 말은 결국 생각이다.
'그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를

함축한 "그럴 수 있지"에는 설명이 있고,

논리가 있고, 설득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설득이 실패했을 경우

인지부조화가 온다.

우습게도 이런 인지부조화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적으로 여겼던 나의 논리가 깨지자

너무 당혹스러웠다.

생각보다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고,

예민해졌다.



그래서 조금 다르게 말해보기로 했다.
"그런가 보다."
그 말은 상대를 이해해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냥 넘어가기로 한 마음이다.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박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런가 보다.
이 말에는 설명도 없고, 판단도 없다.
감정이 따라가지 않아도 괜찮고,
내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오래 붙잡고 생각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런 나이기 때문에

가끔은 그냥 넘길 수 있는 마음도

배워야 하는 것 같다.

모든 걸 내 마음 안에서

다 해석하고 정리하려 하지 않아도 된다.

모르는 건 모르는 대로, 이해되지 않는 건

이해되지 않는 채로.


그냥,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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