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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17. 2023

읽는 재미

요즘 읽는 재미에 푹 빠졌다. 그래봤자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은 것 뿐이라 표현이 부끄럽지만.

책이 이렇게 재밌는 거였나 한껏 즐기고있는 스스로에 놀라며 활자를 훑어내려간다.

다음 줄이 궁금해서 어느 순간 시선이 건너뛰기를 할 정도로 속도를 낸다.

닥치는대로 읽던 시절도 있었다. 기억도 희미한 수십년 전이지만 어릴 땐 매일이 심심해서 견딜 수 없는 날들이었다. 제대로 된 장난감이나 어린이용 책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이라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을 기웃거리며 건들여보곤 했다. 지금 떠올려보면 어린이가 읽기에 전혀 적당하지 않은 장르의 책들도 책꽂이에 꽂혀있었는데 제지하는 어른이 없으니 그저 꺼내서 펼쳐보면 그만이었다.

어린 나이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치정과 살인, 스릴러와 추리까지 그저 읽어나갔다. 이해는 하지 못해도 재미는 느꼈던 거 같다. 그 중 충격적인 묘사나 내용들은 지금까지도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겨져있는데 읽음과 이해가 꼭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아도 독서가 가능했던 모양이다. 물론 온전한 독서로 보기에는 어렵겠지만 말이다.

그저 심심해서 읽어대던 버릇은 청소년기까지 이어졌는데 어디든 읽을거리가 있으면 별생각없이 읽고봤다. 사용설명서나 빈 병에 쓰여진 재료와 유통기한까지 재밌게 읽었더랬다.

그러나 병이 생기고는 읽는게 고역이됐다. 두부 자르듯 경계를 나누는 분명한 시점이 있는건 아니었겠지만 언젠가부터 한 문장을 채 읽기도 전에 집중력이 고갈되어 제대로 책을 읽어나기가 벅차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힘든 시기를 겪어나가는 중에는 책을 집어들 여유가 없어서 긴가민가했지만 그 시기를 지나고 나서는 어느정도 확신하게됐다.

친구들에게 어려움을 토로해보면 그들도 전만큼 글이 잘 안 읽힌다며 그저 나이듦의 문제 아니겠냐고 대수롭지않은 답변만 돌아왔다. 하나같이 비슷한 결의 답을 주는거보니 그런가보다 했지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그리 많은 나이가 아닌데도 한문장을 채 읽어나가는게 힘겹다면 다들 어떻게 독서를 즐길 수 있는걸까. 의문스러웠다. 더이상 어리다고 부를 수 없는 나이가 되면 그저 본인의 교양을 위해 읽히지않는 활자를 꾸역꾸역 먹어치우는 것일까. 마치 다이어트 중에 영 내키지않는 야채 따위를 먹어야만 하는것처럼 읽어나가는걸까.

반발심이 일어 읽어보고싶었던 책들을 골라 읽어봤다. 역시나 여간 어려운게 아니었다. 담백하게 적힌 문장조차도 몇 번이나 앞으로 되돌아가며 간신히 읽어냈다. 재미가 있을리 없었다. 이렇다보니 최근 몇 년 동안 읽은 책 중에 끝까지 완독한 책은 거의 없었다. 간혹 있는 것도 꼭 필요한 실용서나 워크북 정도일게다. 책의 종류를 바꿔도 보고 어느정도 시간 간격을 두고 시도해봐도 별 다를게 없었다. 뇌의 노화 때문이거나 그게 아니라면 망가져서겠거니 받아들이게 되고 어느정도 포기하게됐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잖은가.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후에 나를 감싼 공기가 달라졌음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설명하기 어려운 미신같은 개념인데 누구나 동물적으로 느낄 때가 있는 ‘터닝포인트’ 같은 이야기다. 내 생활을 재정비하도록 독려하는 메시지인지 에너지인지 따위의 느낌이 외면할 수 없이 비대해지는 것이다. 뭔가를 시작해야만 했다.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이 거기에 있는 에너지가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생활 패턴에 변화를 주고 계획을 하고 행동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포기한 사실을 새카맣게 잊고있던 독서였다. 첫 책이니까 읽기 수월한 에세이를 골랐다. 예전에 읽다가 절반쯤에서 포기한 책이었다. 애초에 일주일에 한 권을 목표로 했는데 삼 일만에 다 읽어버렸다. 좋은 내용이었지만 무언가 아쉬웠다. 식간에 한입거리 간식을 먹어치우고 비어버린 입을 쩝쩝대듯 부족한 느낌이었다.

다음 책으로는 고전이지만 문장이 길고 난해해 쉬이 읽히지 않기로 알려진 걸 선택했다. 스스로를 칭찬해주고싶은 결정이었고 문장 맛집의 발견이었다. 한 권의 책 안에는 한 줄 버릴 것 없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가득했고 묘사는 생동감으로 넘쳤다. 글자들이 제멋대로 내 눈속으로 빨려들어왔고 주변 소음도 상관없어졌다.

고작 몇 개월 사이에 이토록 간극이 느껴지는 차이는 무엇일까. 이유는 차차 고민해보련다. 지금은 재밌으니까 그저 읽어나가고싶다.

읽는 것과 쓰는   차이 없이보였는데 역시나 아니었나보다.  하나를 써내려가기엔 호흡이 부족하니 이정도에서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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