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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17. 2023

되고싶은 나 되기 쉬운 나

원하는 내 모습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존재한다. 되고싶은 내 모습은 스스로 만족스럽겠지만 그에 비해 당장의 내 모습은 초라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되고싶은 나를 서술하려면 꽤나 거창한 마음가짐이 필요할거 같아서 잠시 뒤로 미루고 현재의 나를 먼저 말해본다.

자고싶은만큼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켜고 쇼파에 가서 다시 들어눕는 나. 그러다 다시 잠이 오면 더이상 졸음이 머물지 못할때까지 더 자다가 일어나 눈꼽도 떼지않은 상태로 배달앱을 뒤적인다. 밀가루나 튀김이 대부분인 자극적인 패스트푸드를 주문하고 다시 쇼파에 누워 인스타나 유튜브를 하릴없이 구경한다. 배달음식이 도착하면 맛을 음미할 새도 없이 구겨넣듯 식사를 마치고 플라스틱 용기는 식탁 위에 그대로 방치한 채 다시 쇼파에 들어눕는다. 배부른 고양이 상태로 누워있다보면 다시 잠이 드는데 이런 낮잠에서 깨고나면 속이 더부룩하기 쉽상이다.

지금까지의 행동들도 한심하기 짝이없지만 이 와중에 가장 힘든 부분은 정신속에서 스스로를 한없이 책망하는 점이다.

해야할 일이 쌓였지만 무엇도 시작하지 않고(못하고) 초조함과 조바심을 느끼면서 핸드폰으로는 더 이상 볼 게 없어 지루하다고 느낀다. 글을 쓰면서도 내자신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시간이 없다고 느낌과 동시에 시간을 죽일 일들을 계속해서 찾고있다. 그렇다. 나는 시간에서 도망가고 싶어한다. 발이 달린 괴물이 쫓아오듯 시간에게서 도망가려고 발버둥친다. 시간이 어서 흘렀으면 좋겠으면서도 시간이 아까워서 마냥 초조하고 불안하다. 단순히 시작하면 된다는걸 알지만 누가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분명 알고있지만 불안으로 다리를 떨고 손톱을 물어 뜯으면서도 행동하지 못한다.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관대해 보일 수 있어서 꺼내놓기 부끄러운 사실이 있는데 예전에는 훨씬 더 안 좋은 상태였다는 거다.

혼자 있는게 불안하고 미쳐버릴 거 같은 시기가 있었다. 단어 뜻 그대로 미쳐있었던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집으로 돌아와 줄 때까지 아니면 방문해 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만 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대적으로 꽤나 생산적일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다고해서 비이성적인 두려움을 느끼진 않으니까 호전이라면 호전이겠다.

되고싶은 나는 현재의 내모습을 대폭 수정해야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깨우고 개운하게 씻은 후에 책상에 앉는다. 따듯한 차 한 잔을 곁들이면 좋겠다. 독서를 하거나 짧은 글을 쓰면서 머리를 깨운다. 그리고 해야할 일을 적어본다. 적힌 목록대로 해야할 일들을 하나씩 완수해가며 작은 성취감을 쌓고 바라본다. 몸과 정신과 정서의 건강을 챙기는 하루다. 적고보니 불가능할 정도로 대단해 보이지않는데 이게 참 어렵다.

나는 요새 새로 시작하려는 일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슬럼프에 빠졌다. 내가 가진 큰 단점인데 머릿속으로만 지레 겁먹고 실행조차 해보지 못하는거다.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서성이는 채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 말이 그냥 해야된다는 거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있다.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싶으면 그냥 하면되니까 쓴다.

독서를 취미로 갖고싶으면 지금 당장 책을 펴고 읽으면된다. 아침형 인간이 되고싶으면 알람을 일찍 맞추고 일어나면된다. 너무 당연하지만 실천하기란 꽤 어렵다. 오늘 하루 일찍 일어났다고 내가 아침형인간이라 선언하긴 어렵지만 내일도 글피도 일찍 일어난다면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지향하는 삶이라고 말하면 부담스러우니 그저 내가 되고싶은 모습이 된 척을 해보려한다. 아침형 인간인 척 독서가 취미인 척 글을 쓰는 척 하려고한다. 연기하듯 놀이하듯 흉내내고 그런 순간들이 쌓이면 그게 내 모습이 되지않을까.

되기 쉬운 내 모습은 도저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찌나 불만스러운지 내 자신이 미워질 정도다. 나를 미워하는건 지겹다. 지긋지긋해서 그만하고싶다. 거창한 내가 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내가 되고싶다. 가능하면 내 마음에 드는 내가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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