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랑 다투고 어찌저찌 화해한 다음날이었다. 밤새 제대로 잠을 못 이루고 새벽부터 깨버렸다. 가만히 있기 불안해서 이러저리 방황했지만 딱히 갈 데는 없었다. 그래서 패스트푸드점에 다녀왔다. 아침메뉴를 판매하는 곳이었는데 욕심을 내서 2인분을 사와 욱여넣듯이 다 먹어치웠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않아 배달 어플을 켜서 3인분 가량을 주문하고 구역질이 날 때까지 먹고 또 먹었다. 숨 쉬기가 힘들정도였고 포만감을 넘어서 불쾌감이 밀려왔다. 감정을 알아채고 나서는 기분이 걷잡을 수 없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침체됐다. 화를 먹을걸로 풀고있던거다. 한껏 짜증을 내며 베어무는 햄버거는 입 주변에 잔뜩 묻거나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는데 그걸 지켜보며 더 화가 났다. 앞뒤 맞지도 않고 뜬금없지만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지나친 생각이었다. 떠올려보니 먹는 사이에 잠시 잠이 들었고 약 먹는 시간을 놓쳐버린거다. 급하게 약을 털어먹고 압박감이 통증으로 느껴질만큼 부른 배를 깔고 누웠다. 토할까. 소화제를 먹어볼까. 그 조차 귀찮다.
이미 화해도 했고 대화를 통해 서로 이해도 했기에 앙금이 남아있는건 아니었다. 못다 한 말이 있기라도 한가. 그것도 아니다. 불안하고 화가나는데 이유가 뭐였을까. 그냥 이렇게 다투다가 헤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이대로 헤어져도 상대방은 잘만 살겠지만 나는? 제대로 한사람 몫도 못하고 여기저기 망가진 채로 어디가서 뭘 하면서 멀쩡하게 살 수 있을까. 갑자기 마음이 변해서 나를 버리면 어쩌지. 상대방 기분이나 결정에 내 인생이 걸려있는게 과연 정상인걸까. 싸우는 동안 스쳐지나갔던 온갖 생각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혼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이었다. 불안이 커지니까 화가 되는구나.
아무리 병이 있다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불안해지는건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이건 병 때문일까 내가 망가져서일까. 이정도는 망상이 아닐까. 내 뇌는 불안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아끼지 않는 듯 이상한데서만 성실했다. 마치 불안에 중독된 것만 같다. 자꾸만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불안감을 더 증폭시킨다. 불안이 불안을 낳아 자가증식한다. 만약 병 때문이 아니라면 나한테 문제가 있는게 아닐까.
나에게 행복이랄건 별 게 없다. 소비는 재밌어하지만 물건에 쉽게 실증을 내서 소유욕은 별로 없다. 돈을 안쓰려면 전혀 쓰지 않고도 꽤 지낼 수 있다. 에너지 넘치는 타입도 아니라 운동이나 여행같은 야외활동에 큰 재미를 느끼지도 않는다. 갖고싶거나 하고싶은게 종종 생기기도 하지만 없어도 상관없는 정도다. 대신 타인을 기쁘게 하고 되돌아오는 애정에서 행복을 느낀다. 결국은 사람이라는거다. 그 중 가까운 사람에게서 안정감을 느끼는데 너무 소수다보니 안전하지가 않다.
이건 행복의 기반을 사람에게 둬서 생기는 부작용이구나. 그 사람과 사이가 좋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듯 마음이 풍족하지만 잠시 틀어졌을 뿐인데 감정이 모두 부정적으로 바뀌어버린다. 사람은 변덕스럽다. 나조차 통제 불가능인데 타인에게는 바랄 수 없다. 이렇듯 사람을 내 행복의 뿌리로 두는건 위험한게 아닐까. 게다가 잔뿌리가 거의 없는 한 줄기짜리 뿌리는 더욱 위태롭다. 이게 잘못된걸까. 건강한 상태는 아니니까 이렇듯 무너지는 거겠지.
지독한 애정결핍을 가진 내가 집착하는건 사람이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고 타인을 통해 의미를 찾는게 잘못된건 아니다. 다만 내 것이어야할 감정의 손잡이를 타인에게 맡기는건 건강하지 못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치명타를 받지 않으려면 내 행복의 뿌리는 내 안에 있어야한다.
왜 내 안에는 없을까. 오랜 시간을 나자신을 미워하느라 보냈는데 자기애나 자존감 같은게 있을리 없다.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말을 본적이 있다. 감정에서 도망가는 한 형태를 설명한 글이었다. 괴로우니까 생각으로 눈을 돌리는거다. 옳고그름까지는 모르겠고 현상을 설명한 부분만 기억에 남아있다. 책을 꺼내들었다. 자존감수업이라는 베스트셀러다. 불안을 잠재워줄 답을 얻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