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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이 Jun 18. 2023

공황우울치료기_ 꿈을 꾼다

꿈을 꾼다

원하는 이상향을 그려보는 꿈 꾸다가 아니라 말 그대로 머리를 누이면 꿈을 꾼다. 그것도 쉬지않고 끝이 없는 시간 속에 빠져든다. 상황과 배경은 바뀌지만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인물은 그대로다.

꿈을 꾸다 새벽녘에 깨어나 화장실을 다녀온다. 쉬이 잠이 들지 않아 핸드폰을 뒤적이다가 다시 눈을 감으면 다시 꿈을 꾼다. 침대와 베개의 촉감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정신은 꿈 속을 헤맨다. 이건 가위눌림도 숙면도 뭣도 아닌데 꿈을 꾸기 위해 뇌를 전부 사용하는 기분이 든다.

병원에 다니는 초반의 경험을 다시하는 거 같다. 꿈 꾸기 위해 사는 사람처럼-이렇게  쓰고보니 꽤 낭만적인 표현이지만-하루의 대부분을 꿈 속에서 보낸다. 꿈에서의 시간은 현실보다 느리다. 하룻밤에도 몇 개 혹은 몇 십 개의 꿈을 연달아 꾸다보니 한 잠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자기 전의 나와 깨어난 후의 내가 마치 다른 사람 처럼 느껴질 정도다.

선생님은 내가 유난히 꿈으로 감정표출이 잘 되는 편이라고 하셨다. 신체증상보다는 편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거 같다. 잠 속에 갇힌 사람처럼 계속해서 잠을 자고 꿈 속에서의 경험과 감정 변화 따위의 여러가지가 현실의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주변에 걱정을 끼친다. 나 역시 현실과의 유리감을 느낀다. 아침에 눈 뜬 방의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꿈 속에서 겪는 일들에 격정적으로 반응하고 감정소모를 하니 깨고나면 피로하기 짝이 없다.

병원을 다니는 초반에는 하루에 18시간 혹은 그 이상을 잠만 잤다. 약에 적응하는 중이라 굳게 믿고있었는데 선생님은 그건 아닐거라고 하셨다. 잠이 드는데 도움은 될 수 있지만 그 정도로 재우는 성분의 약이 아니라고 설명해주셨다. 그렇다면 이상할 정도로 자는 이유에 대해 납득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추측하기로 지금까지 오랜시간을 긴장한 상태로 살아오면서 충분한 수면이 필요했던걸 이제야 몰아자는거 같다고 하셨다. 선뜻 동의되지는 않았다. 그저 약 부작용이겠거니 생각했을 뿐이다. 약을 먹으면 말 그대로 필름이 끊기는 것처럼 기절했고 진지하게 기면증에 대해 알아볼 정도로 속수무책으로 잠들었기 때문이다.

일 년 정도가 지나 비슷한 증상이 다시금 생기니 여러가지가 떠오른다. 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잠이 들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새엄마와 사는 집에서 잠에만 들면 악몽을 꾸거나 끔찍한 가위에 눌려서 학교에 가서 쪽잠을 잤다. 그렇게 6개월 넘게 가위에 눌리다보니 꿈과 현실의 구분이 모호해졌고 항상 몽롱한 상태에 발이 현실에서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정말 심각하게 내가 미쳤다는 확신이 들었고 벗어나고 싶었지만 좀 더 참고 버티라는 조언을 들었다. 학생이었기에 따로 집을 구할 형편도 안됐으므로 명분이 필요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숙사도 있었고 공장에 취직하는 방법도 있었는데 그 때는 시야가 좁고 선택지가 없었다. 악몽에 시달리고 그 악몽의 주인공에게 괴롭힘 당하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겠다고 통보했다. 길바닥에서 노숙할 각오였다. 험한 일을 겪겠지만 현실보다 가혹한 곳은 없을 것 같았다. 지금 떠올려보면 순진하고 세상 모르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집은 지옥 그 자체였다. 생각해보니 지옥을 모르는구나. 다시 설명하지면 더 이상은 한 순간도 내가 나인채로 버틸 수 없는 공간이었다. 잠시라도 붙든 정신을 놓으면 칼부림을 할까봐 스스로를 통제하느라 매 순간이 위태로웠다. 내가 죽을까봐 도망치는게 아니라 죽일까봐 두려웠다. 애증 같은게 아니었다. 그저 순수한 증오였다.

십수년이 지나 다시 그 사람 꿈을 꾼다. 안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고 완전히 지우고 살았다. 그런데 치료를 받고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 사람이 다시금 내 인생의 화두에 놓여졌다. 주인공 의자를 꿰차고 앉아있다. 내 꿈과 정신을 마음껏 활보하고 다닌다. 하지만 한 번 겪어봤던 일이라 그렇게 겁이 나진 않는다. 그저 불쾌할 뿐이다. 병원 스케줄을 가능한 타이트하게 잡고있다. 이 주제를 해결 혹은 소화하면 그 때는 내 인생의 키를 되찾게 될거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다.

자유를 꿈꾼다. 더 이상 휘둘리지 않을 자유.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되는 자유. 꿈도 장래희망도 없던 내가 이제야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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