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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남 Nov 13. 2023

나는 당신과 동등한 사람입니다.

고희연 때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싶어요.

혜자 어르신이 학수고대하던 고희연이 있는 날입니다. 어르신은 아침부터 잔뜩 기대에 찬 얼굴로 "이따가 머리 하고, 화장도 하고, 드레스도 입을 거야."라고 하시면서 "선생님도 이따가 꼭 와야 돼." 하면서 손을 잡았습니다. “네, 이따 뵐게요. 어르신이 초대해 주셨는데 꼭 가야죠.”라고 말씀드리며 거듭 축하드리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덕담을 해 드렸습니다.


이용인들 전체를 중증 거실로 모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혜자 어르신을 티브이가 있는 정중앙에 앉게 해 드리고 생일 축하 노래를 다 함께 불러 드렸습니다. 어르신은 무척이나 행복하고 좋아 보였습니다. 두 번을 연속해서 부르고 나니 미라 씨를 비롯해 저마다 한 마디씩 축하 인사를 건넸습니다.


저는 차에 상차림 세트와 과일 꾸러미 등을 싣고 정해진 시간에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경험하는 고희연 상차림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리둥절했지만 안내서가 있어서 그대로 상을 꾸며 보았습니다.


드디어 초대한 모든 손님들이 다 모였습니다. 이사장님께서 축복기도를 해 주실 때 어르신은 눈시울이 젖어들었습니다. 혜자 어르신이 어떤 경로로 이 시설에 오게 되었는지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얘기를 듣는데 저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치 내 엄마나 언니가 그런 상황이었던 것 같은 마음으로 감정이입이 되어 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엔 칠순이신 혜자 어르신 당사자의 말씀을 들어 보기로 하였습니다. 혜자 어르신은 “저기 맨 끝에 있는 선상님” 하시면서 저를 지목하였습니다. 저는 당황하여 “저요?” 하면서 일어섰더니 맞는다고 하시며 "선생님, 우리들한테 너무 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건강하고 아프지 마세요. 그리고 오래오래 여기 다니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한 번 눈시울을 적시게 만드는 멘트에 그동안 어르신과 맺어온 관계에서 이런 말씀을 듣게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에 앉았던 어떤 분은 "어떻게 하면 이용인이 저런 말씀을 하는지 궁금하다."라고 하셨습니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혜자 어르신은 사진을 찍으실 때 슬퍼 보이기도 하고 긴장하는 모습이기도 한 표정을 지으셔서 누군가가 "현지를 생각해요, 어르신."이라고 말하자 활짝 웃으셨습니다. 그때를 맞춰 '찰칵' 일생에 다시없을 멋진 하얀 드레스의 독사진을 남겼습니다.


선임 선생님에게 어르신이 고희연을 마치고 나면 상실감이 밀려올지도 모르니 기분전환을 위해 무엇을 해 드려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맞는다고 하시며 드라이브를 지원하거나 혜자 어르신이 애리네 집에 있었을 때의 옛날이야기를 좋아하시니 손을 맞잡고 이야기꽃을 피우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은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말도 있지만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대할 때마다 불쌍하다, 짜증 난다 등의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고희연에 한복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싶은 욕구, 예뻐지고 싶은 욕구, 남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싶은 욕구를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고 같은 생각을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혜자 어르신이 고희연을 맞아 행복하고 또 기뻐하는 모습 그대로 언제나 즐겁고 건강하게 잘 지내셨으면 좋겠습니다. 혜자 어르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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