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독서가 필요한 이유
우리는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글을 읽지만, 이 행위가 인간의 뇌에 선천적으로 탑재된 기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사물을 보고 소리를 내는 신경 회로는 타고나지만, ‘독서 회로’는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독서는 진화의 시간 척도에서 볼 때 비교적 최근의 활동이기에, 뇌에 전용 영역이 발달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즉, 독서는 타고나는 능력이 아니라, 인류가 수천 년에 걸쳐 개발한 가장 정교한 ‘기술(Technology)’입니다. 우리는 기존 뇌의 시각, 청각, 언어 영역을 해킹하듯 ‘공동 이용(co-opt)’하여, 완전히 새로운 신경망을 구축해냈습니다. 기원전 3300년경 수메르인의 쐐기문자에서 시작된 이 기술은 인류 지성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독서는 단순히 눈으로 글자를 훑는 행위가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독서가 대뇌 피질의 4개 엽(four lobes of the cortex)을 모두 활성화시키는, 그야말로 뇌 전체를 사용하는 ‘전뇌적(whole brain)’ 활동임을 밝혀냈습니다. 글자가 눈을 통해 들어오면, 뇌는 이 시각적 기호를 소리 및 의미 정보와 순식간에 연결하며 복잡한 처리 과정을 거칩니다.
이 과정은 최신 ‘멀티모달 AI(Multimodal AI)’의 작동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있습니다. 멀티모달 AI가 텍스트, 이미지, 소리 등 여러 형태의 데이터를 통합하여 상황을 이해하고 학습하듯, 인간의 뇌는 독서를 통해 시각 정보(글자)를 소리와 의미로 변환하고 통합하는 고도로 정교한 시스템으로 작동합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뇌라는 ‘신경 하드웨어’가 어떤 언어(데이터 유형)를 입력받느냐에 따라 스스로를 물리적으로 재구성하고 최적화한다는 사실입니다. 연구는 표의문자인 한자와 표음문자인 영어가 뇌를 어떻게 다르게 조각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한자처럼 하나의 글자가 고유한 뜻을 가지는 언어를 읽을 때는 시각적 기억 및 연상과 관련된 뇌 영역이 훨씬 더 많은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뇌의 최적화는 비극적이지만 결정적인 한 환자의 사례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중국어와 영어를 모두 구사하던 바이링구얼 환자는 뇌졸중을 겪은 후, 놀랍게도 중국어를 읽는 능력만 상실했습니다. 그의 영어 읽기 능력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뇌가 표의문자라는 특정 ‘데이터 유형’을 처리하기 위해 특화된 회로를 구축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마치 그래픽 작업에 GPU가, 연산 작업에 CPU가 최적화되듯, 우리의 뇌는 사용하는 언어에 맞춰 스스로를 전문화하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인 셈입니다.
독서는 단순한 정보 처리를 넘어, 우리의 몸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관여시키는 활동입니다. 소설 속 인물이 겪는 고통에 깊이 몰입할 때, 우리는 실제로 불쾌감이나 메스꺼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는 뇌의 ‘전방 섬엽(anterior insula)’이라는 영역 때문입니다. 이 영역은 메스꺼움, 통증 등 실제 신체 감각을 처리하는 동시에, 타인에 대한 공감 과정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합니다.
이 현상을 볼 때, 독서하는 인간은 감각 정보까지 동원해 세상을 이해하는 ‘유사 피지컬 AI(Quasi-physical AI)’와 같습니다. 거대 언어 모델(LLM)의 공감이 방대한 데이터에 기반한 통계적 패턴 매칭의 결과물이라면, 인간이 독서를 통해 느끼는 공감은 실제 물리적 감각에 사용되는 신경 하드웨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생물학적 시뮬레이션’입니다. AI는 감정을 흉내 낼 뿐이지만, 인간은 독서를 통해 물리적 수준의 공감 능력을 직접 훈련하고 강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AI와 인간을 구분 짓는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종이책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더 많은 글을 읽습니다. 하지만 스크린을 통한 독서는 종종 ‘훑어보기(skimming)’로 이어져 비판적 사고를 방해하고, 우리를 잘못된 정보에 더 취약하게 만듭니다. 이는 개인의 판단력을 넘어 사회 전체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시민들이 정보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사유하는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독서 방식은 AI의 작동 방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훑어보기 (Skimming): 이는 문맥을 얕게 파악하여 확률적으로 다음 단어를 예측하는 AI의 단순 토큰 예측과 유사합니다. 빠르지만 깊이가 부족합니다.
깊이 읽기 (Deep Reading): 이는 복잡한 논리를 단계별로 분석하고 숨겨진 의미를 추론하는 독서입니다. AI가 복잡한 문제를 풀기 위해 마치 ‘풀이 과정’을 보여주듯 논리적 단계를 순서대로 밟아 나가는 심층 추론(Chain of Thought) 방식과 같습니다.
미래 세대에 대한 경고는 더욱 심각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8세 아동의 디지털 기기 노출 시간은 훗날의 주의력 및 실행 기능 저하와 학업 성취도 하락과 뚜렷한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물론 모든 스크린 타임이 해로운 것은 아닙니다. 일부 연구는 교육적 목적으로 잘 관리된 스크린 타임이 아이들에게 유익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깊이 있는 독서가 제공하는 고유한 인지적 혜택은 단순한 스크롤링이 결코 대체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과자극 시대에, 깊이 있는 독서는 인간 고유의 지능을 지키는 필수적인 ‘방화벽’ 역할을 합니다.
인공지능이 많은 지적 활동을 대체할 미래, 우리는 무엇으로 인간의 고유성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독서는 뇌라는 하드웨어를 최적화하는 최고의 훈련이자, AI가 흉내 낼 수 없는 물리적 공감력을 강화하는 활동이며, 단순 연산을 뛰어넘는 고차원적 사고 능력을 보존하는 길입니다. 만약 독서가 인류 최초의 AI 소프트웨어라면, 깊이 읽기는 우리의 신경 하드웨어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고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하는 필수적인 시스템 업데이트와 같습니다.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수단을 넘어, AI 시대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생존 전략’입니다. 깊이 읽을 때 우리는 뇌를 바꾸고, 우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개인의 생각과 마음을 바꾸는 과정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며, 더 위대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본 포스트는 BBC의 How reading changes the way your brain works를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