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톺아보기

효율성의 장밋빛 약속 뒤에 숨겨진 정체성 위기와 침묵하는 70%의 이야기

by Wade Paak

2022년 하반기, ChatGPT와 Midjourney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조용한 충격에 빠졌다. 4차 산업혁명 담론 속에서 창의성은 늘 '자동화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 그러나 생성형 AI는 그 믿음을 정면으로 뒤흔들었다.

텍스트, 이미지, 오디오, 비디오를 아우르는 멀티모달 AI의 등장은 단순한 도구 혁신이 아니다. 창작 노동의 본질과 가치, 그리고 이를 수행하는 전문가들의 정체성에 대한 실존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2023년부터 2025년 사이 발표된 주요 학술 논문과 산업 보고서, 실증 데이터를 종합해 현재 크리에이티브 산업이 직면한 '기대와 공포의 이중주'를 들여다봤다.


에이전시는 달리고, 인하우스는 멈추고, 프리랜서는 쓰러진다

AI의 충격파는 균일하지 않다. 조직 구조와 수익 모델, 리스크 관리 방식에 따라 수용 속도와 양상이 극명하게 갈린다.


효율성의 최전선에 선 에이전시

광고 및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는 AI 도입의 선봉에 서 있다. 구글과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공동 연구에 따르면, 에이전시는 광고주 대비 평균 35% 더 높은 AI 성숙도를 보인다. 성과 측정 분야에서는 57%, 크리에이티브 전략 수립에서는 59% 더 앞서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클라이언트의 비용 절감 압박과 개인화된 대량 콘텐츠 요구가 동시에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성숙도가 높은 에이전시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2.6배 높은 효율성 증대와 1.6배 높은 신규 비즈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효율성은 양날의 검이다. 생성형 AI로 '실행' 비용이 0에 수렴하면서, 전통적인 시간당 청구(Billable Hours) 모델이 붕괴 위기에 처했다. 클라이언트들은 묻는다. "AI가 10분 만에 할 수 있는 일에 왜 수백 시간을 청구하는가?"


전략적 가치를 증명하지 못하는 중하위권 에이전시와 실무자들의 도태가 가속화되고 있다.

— Bain & Company, 2024


브랜드 안전이라는 방벽 뒤의 인하우스

기업 내부 마케팅 조직은 훨씬 보수적이다. 세계광고주연맹(WFA)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인하우스 리더의 93%가 AI 투자를 늘리겠다고 답했지만, 실제 업무에 완전히 통합한 비율은 12%에 불과하다.

이유는 리스크다. 인하우스 리더의 64%는 윤리적 우려를, 57%는 데이터 프라이버시를 주요 장벽으로 꼽았다. AI의 환각(Hallucination), 편향성, 저작권 침해 이슈는 브랜드 가치 수호가 최우선인 기업 입장에서 감당하기 어렵다.


프리랜서 시장: 고숙련 노동의 역설적 위기

가장 파괴적인 변화는 긱 이코노미에서 벌어지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와 워싱턴 대학교 연구진이 업워크(Upwork)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ChatGPT와 Midjourney 출시 직후,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프리랜서들은 월 계약 건수가 2%, 월수입이 5.2% 감소했다. 더 심각한 것은 고숙련 프리랜서가 더 큰 타격을 입는다는 점이다. 과거 높은 평점과 수입을 올리던 이들의 일자리 기회가 더 크게 줄었다.

이는 클라이언트들이 '최상급 인간 결과물'과 '준수한 AI 결과물' 사이의 품질 격차가 가격 차이를 정당화할 만큼 크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숫자 뒤에 숨겨진 감정: 70%가 침묵하는 이유

구조적 변화는 창작자들의 내면에 심대한 파장을 일으킨다. 문헌 연구는 이들이 겪는 심리 상태가 단순한 직업 안정성 공포를 넘어, 자아 정체성과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 회의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창의성 대체 불안(Creative Displacement Anxiety)

연구자들은 최근 크리에이티브 종사자들이 겪는 특유의 스트레스를 '창의성 대체 불안(CDA)'으로 개념화했다. 이는 "내 기술이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기능적 불안을 넘어, "기계가 나보다 더 창의적일 수 있다"는 실존적 공포를 의미한다.

창작자들은 자신의 직무를 '영혼'이나 '인간성'이 투영된 고유한 영역으로 인식해왔다. 그러나 AI가 시, 그림, 음악 등 감성의 영역까지 침범하면서, 자신의 노동이 단순한 데이터 처리 과정으로 환원되는 경험을 하고 있다.


AI 수치심: 이중 구속에 갇힌 창작자들

2024년 앤스로픽(Anthropic)이 실시한 연구 결과는 충격적인 현상을 드러냈다. 크리에이티브 전문가의 70%가 동료나 클라이언트에게 자신의 AI 사용 사실을 숨기고 있다.

AI 사용 은폐율: 70% (사회적 낙인 및 진정성 훼손 두려움)

시간 절약 인식: 97% (기능적 효용성에 대한 압도적 긍정)

창작자들은 모순적 상황에 갇혀 있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AI를 써야 하는 압박을 받으면서, 동시에 AI를 쓰면 '가짜' 혹은 '게으른 창작자'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한다. 이 'AI 수치심'은 조직 내에서 건전한 AI 활용 논의를 차단하고, 음지에서 몰래 AI를 쓰는 '그림자 노동'을 양산한다.


희망과 절망 사이의 양가성

모든 감정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반복적이고 지루한 작업에서 해방되어 고차원적 기획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주니어 시절 단순 작업을 통해 숙련도를 쌓던 도제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미래 세대의 성장 사다리가 걷어차이고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동일한 작품이라도 AI가 만들었다고 인지하는 순간, 사람들은 그 작품의 감정적 깊이와 가치를 낮게 평가한다.

— Frontiers in Psychology, 2024


한국의 풍경: 초경쟁 사회에서의 특수한 불안

한국의 크리에이티브 산업은 글로벌 트렌드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특유의 노동 문화와 산업 구조로 독특한 양상을 보인다.

국내 연구진이 수행한 '생성형 AI 도입에 따른 디자이너 직무 변화 및 직업 인식 재구성' 연구(2024)는 한국 디자이너들의 심리를 실증적으로 분석했다. 구조방정식 모델링(SEM) 분석 결과, 생성형 AI 도입은 디자이너의 직무 불안정성을 유의미하게 증가시키며, 이는 다시 조직적 선제성을 감소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 불안을 느끼는 한국 디자이너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현상 유지에 급급하거나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 기업이 AI를 통해 기대했던 혁신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직업을 통해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는 경향이 강한 한국 사회에서, AI에 의한 대체 가능성은 단순한 소득 감소를 넘어 사회적 존엄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웹툰 분야에서 벌어지고 있는 AI 활용을 둘러싼 갈등은 한국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독자들은 AI가 생성한 작화의 위화감이나 저작권 도용 의혹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별점 테러'나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한다. 이는 작가들에게 AI 활용을 기술적 문제가 아닌 '독자와의 신뢰 문제'로 인식하게 만들며,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킨다.


메이커에서 오케스트레이터로: 역할의 재정의

AI 시대, 크리에이티브 전문가의 역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장인(Maker)'에서 'AI와 협업하여 최선의 결과를 조율하는 지휘자(Orchestrator)'로 이동하고 있다.

툴레인 대학교(Tulane University)의 연구는 AI가 모든 사람의 창의성을 높여주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AI는 오직 높은 메타인지 능력을 가진 직원들에게만 창의성 향상 효과를 보였다.

메타인지가 높은 창작자는 AI 결과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질문을 재설계하며, 자신의 의도에 맞게 결과를 수정한다. 반면 메타인지가 낮은 창작자는 AI가 내놓은 첫 번째 결과물에 만족하며 '디자인 고착(Design Fixation)'에 빠질 위험이 높다.


미래의 크리에이티브 역량은 '그리는 기술'이나 '쓰는 기술'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과 'AI의 결과물을 판별하는 안목'으로 재정의된다.


새로운 역할도 등장하고 있다. AI 모델을 튜닝하고 프롬프트 라이브러리를 관리하며 브랜드 톤앤매너에 맞는 AI 산출물을 관리 감독하는 'AI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특히 인하우스 조직에서 AI 사용의 법적 리스크와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감시하는 'AI 윤리 및 컴플라이언스 매니저'가 그것이다.


결론: 민주화와 상품화 사이에서

AI는 창의성을 민주화(Democratization)하는 동시에 창의성을 상품화(Commodification)하고 있다. 에이전시는 생존을 위해 효율성을 쫓고, 인하우스는 안전을 위해 속도를 늦추며, 프리랜서는 기계와의 직접적인 경쟁으로 내몰린다. 창작자 개인은 이 거대한 흐름 속에서 수치심, 불안,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

이 역설적인 시대에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이 존엄성을 잃지 않고 기술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산업 전체의 숙제다. 그 해답은 아마도 효율성 지표가 아닌, 창작자들이 매일 마주하는 감정의 지형도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될 것이다.




참고 자료

Exploring the Integration of Generative AI in Advertising Agencies: A Co-Creative Process Model for Human–AI Collaboration - ResearchGate,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89760150_Exploring_the_Integration_of_Generative_AI_in_Advertising_Agencies_A_Co-Creative_Process_Model_for_Human-AI_Collaboration

Generative AI and Creative Work: Narratives, Values, and Impacts - arXiv,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arxiv.org/html/2502.03940v1

Generative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Emergence of Creative Displacement Anxiety: Review - ResearchGate,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74770327_Generative_Artificial_Intelligence_and_the_Emergence_of_Creative_Displacement_Anxiety_Review

Is your agency ready for AI in advertising? - Think with Google,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thinkwithgoogle.com/marketing-strategies/automation/advertising-agency-partnership-ai-adoption/

How Ad Agencies Can Use AI to Win Clients and Protect Margins - StackAdapt,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stackadapt.com/resources/blog/ad-agencies-and-ai

Marketers' Agency Partnerships Are Strained. Now Comes AI | Bain & Company,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bain.com/insights/marketers-agency-partnerships-are-strained-now-comes-ai/

How AI is changing in-house agencies - World Federation of ...,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fanet.org/knowledge/item/2025/11/04/how-ai-is-changing-in-house-agencies

세계광고주연맹 “인하우스 에이전시의 AI 도입, 아직 갈 길 멀다” - 매드타임스(MADTimes),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mad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5767

Do in-house teams have the edge over agencies? - Funnel.io,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funnel.io/blog/in-house-teams-vs-agencies

Is generative AI a job killer? Evidence from the freelance market - Brookings Institution,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brookings.edu/articles/is-generative-ai-a-job-killer-evidence-from-the-freelance-market/

Generative AI Is Upending Freelance Work – Even Top Performers Aren't Safe - INFORMS,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informs.org/News-Room/INFORMS-Releases/News-Releases/Generative-AI-Is-Upending-Freelance-Work-Even-Top-Performers-Aren-t-Safe

More complaints, worse performance when AI monitors work | Cornell Chronicle,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news.cornell.edu/stories/2024/07/more-complaints-worse-performance-when-ai-monitors-work

70% of creative professionals fear stigma over AI use, Anthropic study finds - The Decoder,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the-decoder.com/70-of-creative-professionals-hide-ai-use-from-colleagues-due-to-stigma-anthropic-study-finds/

Full article: Ambivalence and emotion in the age of AI: how students navigate ChatGPT in higher education - Taylor & Francis Online,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20004508.2025.2567092

Full article: AI and work in the creative industries: digital continuity or discontinuity?,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17510694.2024.2421135

What Psychological Effects Might AI Art Have on Human Well-Being?,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lifestyle.sustainability-directory.com/question/what-psychological-effects-might-ai-art-have-on-human-well-being/

Human perception of art in the age of artificial intelligence - Frontiers,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frontiersin.org/journals/psychology/articles/10.3389/fpsyg.2024.1497469/full

생성형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디자이너 직무 변화와 직업 인식의 재구성,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www.kjob.org/bbs/download.php?bo_table=sub2_1&wr_id=322&no=0

생성형 인공지능 도입에 따른 디자이너 직무 변화와 직업 인식의 재구성 - 한국취업진로학회,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www.kjob.org/bbs/board.php?bo_table=sub2_1&wr_id=322

콘텐츠산업포럼 장르별 주요 발표 내용과 인사이트 - KOCCA N contents magazine,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kocca.kr/n_content/kocca_vol32/vol32/14.html

'인공지능 일상화, 콘텐츠 창작 현장의 기회와 도전' 콘진원, 2024 콘텐츠산업포럼 개최,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www.kocca.kr/kocca/koccanews/reportview.do?nttNo=700&menuNo=204

보도자료 상세 < 보도자료 < 홍보소통 < 한국콘텐츠진흥원 - SICS,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sics.kw.ac.kr/kaos/kaoslink.n2s?service_no=1&data_no=17697376

New Tulane study finds generative AI can boost employee creativity—but only for strategic thinkers - News,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news.tulane.edu/experts/spotlight/new-tulane-study-finds-generative-ai-can-boost-employee-creativity-only-strategic

New Tulane study finds generative AI can boost employee creativity—but only for strategic thinkers - News,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news.tulane.edu/pr/new-tulane-study-finds-generative-ai-can-boost-employee-creativity-only-strategic-thinkers

The Effects of Generative AI on Design Fixation and Divergent Thinking - arXiv, accessed December 18, 2025, https://arxiv.org/html/2403.11164v1

keyword
작가의 이전글크리에이티브는 이제 성장 스택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