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pEx·전력·순환 투자·지정학 리스크로 본 시스템 충격 시나리오
2025년 9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이 한국 정부와 손잡고 아시아 AI 인프라 허브 구축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1]. 블랙록은 마이크로소프트, 엔비디아, xAI와 함께 “AI 인프라 파트너십(AIP)”을 출범시키며 전 세계적인 AI 데이터센터 및 재생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2]. 한국을 아태 지역의 AI 중심지로 만들기 위한 이 파트너십의 일환으로, 향후 5년간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 인프라 투자가 예고되었습니다[1][3].
이처럼 정부와 거대 자본까지 가세한 AI 인프라 투자 붐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닙니다. 전 세계 테크 기업들은 생성형 AI와 대규모 언어모델(LLM)의 부상을 계기로, 이를 뒷받침할 데이터센터와 GPU(고성능 그래픽 처리장치) 확보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한 경제 전문가는 2023년에 기업들이 AI 모델 학습·운영 인프라에 약 4,000억 달러를 지출할 것으로 예상하는데, 이는 역사상 어떤 산업에서도 유례없는 규모로 아폴로 달 탐사 프로그램(1960~70년대, 인플레이션 반영 약 3,000억 달러)을 능가하는 수준입니다[4]. 2026~2027년에는 미국에서 AI 관련 설비투자(CapEx) 규모가 연 5,000억 달러를 넘겨 싱가포르의 국내총생산(GDP)에 맞먹을 전망이지만, 정작 미국 소비자들의 연간 AI 서비스 지출은 120억 달러(소말리아의 GDP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5]. 싱가포르와 소말리아의 GDP 차이를 떠올려보면, 현재 AI 인프라 투자 규모와 실제 수요 사이에 얼마나 큰 괴리가 존재하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5].
일부에서는 “이번 AI 붐은 19세기 철도나 1990년대 인터넷 광케이블 구축과 비슷한 생산적 거품”이라고 말합니다. 거품이 붕괴하며 투자자들은 손실을 보겠지만,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가치를 지닌 인프라가 남아 사회에 이익을 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6][7]. 실제로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현재의 AI 붐을 “좋은 거품”으로 칭하며, 닷컴 버블 때 과잉 투자된 광통신망이 훗날 인터넷의 토대가 되었듯 AI 인프라도 장기적으로 사회에 기여할 것이라 낙관했습니다[8][9]. 하지만 동시에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솔로몬 등 금융 전문가들은 “투자 열기가 지나치며 많은 자본이 결국 수익을 못 낼 것”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10]. 실제로 “AI”라는 단어만 앞세우면 사업 모델과 수익 계획이 불투명해도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한 스타트업은 구체적 제품도 없이 시드 단계에서 20억 달러 투자금을 유치하며 기업가치 100억 달러를 인정받았는데, 투자 미팅에서조차 “뭘 하는 회사인지 말해줄 수 없다”는 황당한 설명만 내놓았다고 합니다[11]. 모멘텀 투자에 편승한 군중 심리가 지배하면서, 전통적인 가치 평가 규칙이 통하지 않는 버블 조짐이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12].
문제는 이러한 AI 인프라 투자 광풍의 이면에 잠재된 구조적 리스크들입니다. 겉보기에는 미래를 대비한 기술 혁신 투자 같지만, 그 내면에는 향후 버블 붕괴와 시스템 위기로 비화할 수 있는 네 가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제 전 세계 AI 인프라 붐에 내재된 ① 과잉 설비투자, ② 전력·자원 제약, ③ 금융 순환 구조의 취약성, ④ 지정학·정책 리스크라는 네 가지 구조적 리스크를 짚어보고, 왜 이러한 위험이 자칫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사한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AI 열풍에 편승한 기업들은 앞다투어 데이터센터 증설과 GPU 구매 등 설비투자(CapEx)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투자 속도가 실제 활용 수요나 상업적 성과를 한참 앞질러 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미국에선 연간 수천억 달러 규모로 AI 인프라에 돈을 쏟아붓고 있지만, 정작 AI 서비스에 대한 소비 지출은 그 1/40 수준에 불과합니다[5].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도 확실치 않습니다. 예를 들어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은 AI 모델 개발을 위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고 있지만, 고객사들이 아직 뚜렷한 수익 창출 사례를 만들어내지 못해 유휴 GPU가 늘고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13]. 즉, 미래의 잠재적 이익을 믿고 설비를 과잉 확충하고 있는 셈입니다.
투자의 비용 대비 편익을 따져보면 이 격차는 더욱 두드러집니다. 현재 AI 모델들은 막대한 연산 자원과 전력을 소모하지만, 이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나 비용 절감 효과는 초기 단계에 불과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번 AI 붐이 1990년대 말 닷컴 버블과 유사하게, “혁신 기술의 약속이 당장의 시장 기대에 못 미쳐 거품이 꺼질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14][15]. 다만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피에르-올리비에 구린샤스는 “이번 투자는 부채가 아닌 현금으로 이뤄져 2000년대 초 닷컴 붕괴나 2008년 서브프라임 때처럼 금융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죠[16]. 하지만 과연 레버리지(leverage)가 없다고 안심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기업들이 자기 자본을 쏟아붓는다는 것은 거품 붕괴 시 주가 폭락과 자본 증발로 직접 타격을 입음을 뜻하고, 이는 곧 투자자와 연관 산업 전반에 손실을 안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써부터 경제 왜곡의 조짐도 보입니다. 2023년 상반기 미국에서는 GDP 성장의 절반 가량이 AI 관련 설비투자 증가분으로 설명된다는 분석까지 나왔습니다[17]. 한두 기업이 아닌 경제 전체가 AI 붐에 기대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인데, 거품이 꺼지면 그 역풍 또한 거셀 것이라는 우려가 나옵니다. 투자 열기에 가려진 채 쌓여가는 이 설비과잉은, 수익 창출로 선순환되지 못하면 결국 수조 달러 규모의 자본 낭비와 기업 실적 악화로 돌아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곧 투자 심리 위축과 연쇄적인 사업 축소로 이어져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AI 인프라 붐은 디지털 세계의 이야기 같지만, 이를 떠받치는 기반은 지극히 물리적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력과 에너지 자원 문제입니다. AI 시대의 데이터센터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력량을 소비합니다. 2023년 현재 미국 데이터센터들은 전체 전력 소비의 약 4.5%를 차지하는데, 불과 4년 내 10%까지 두 배로 증가할 전망입니다[18]. 특히 AI 전용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50~100배에 달하는 전력을 사용할 정도로 에너지 집약적입니다[19].
예를 들어 아래 그림은 소셜미디어 기업 메타(Meta)가 미국 루이지애나에 계획 중인 ‘하이페리온(Hyperion)’ AI 데이터센터 부지 규모를 뉴욕 맨해튼 지도로 겹쳐 보여준 것입니다[20]. 하늘색으로 표시된 거대한 영역이 모두 하나의 데이터센터 캠퍼스이며, 이 시설을 가동하는 데 무려 2GW(기가와트)의 전력이 필요합니다[20]. 오픈AI도 이와 유사한 5GW급 슈퍼컴퓨터 데이터센터를 여러 곳 짓겠다는 구상을 밝혔는데, 5GW 규모 데이터센터 한 곳이 1년 내내 90% 가동될 경우 약 365만 가구가 쓸 전력을 혼자 소비하게 되는 셈입니다[21]. 즉 단일 AI 시설이 도시 수백만 가구의 전력 수요를 흡수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22].
이처럼 폭증하는 전력 수요는 기존 전력망(grid)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주의 일명 “데이터센터 앨리(Data Center Alley)”로 불리는 러우던(Loudoun) 카운티의 사례를 보면, 이 지역에만 200여 개에 달하는 데이터센터가 밀집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가동 용량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급팽창했습니다[23]. 하지만 이러한 설비 밀집은 막대한 상시 부하를 전력망에 가하며, 피크 시간대 정전(블랙아웃) 위험을 높이고 있습니다[24]. 실제로 일부 지역에선 새 데이터센터에 전력 공급을 연결해주는 데 몇 년의 대기 시간이 걸릴 만큼 전력 인프라 증설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사례도 보고됩니다[25][26]. 급기야 전력회사가 노후 석탄 발전소를 폐쇄하지 못하고 연장 가동하거나, 신규 가스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등 에너지 정책까지 후퇴시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27]. 이는 지역 탄소배출 증가와 전기요금 상승을 야기하여, AI 인프라 붐이 환경적 지속가능성과 충돌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전력만 문제가 아닙니다. AI 인프라 핵심 부품인 고성능 반도체(GPU/AI 칩)의 공급망도 취약합니다. 현재 최첨단 AI 칩 생산은 대만 TSMC 등 소수 업체에 집중되어 있고, 미·중 기술 갈등으로 공급 제약까지 겹친 상황입니다[28][29]. 2025년 미 정부는 중국을 겨냥해 AI용 특수칩 수출까지 사실상 전면 봉쇄하며, 중국은 자체 칩 개발과 데이터센터 국산화에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30][29]. 그 결과 글로벌 AI 생태계는 두 개의 평행선으로 갈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31]. 첨단 장비 수입이 막히면 데이터센터도 무용지물이기에[30], 지정학적 갈등은 곧 AI 인프라 투자 자산의 가치에 직접적인 리스크가 됩니다. 또한 AI 데이터센터는 고급 냉각장치와 막대한 물 사용이 필수인데, 물 부족 지역에 센터를 지으려다 지역사회의 반발을 사는 사례도 있습니다. 일례로 일론 머스크의 xAI 슈퍼컴퓨터 시설은 멤피스의 한 지역에 대형 가스발전기를 설치해 운영되면서 오염물질 배출 문제로 지역 주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습니다[32][33]. 이처럼 물리적 자원 제약과 환경 문제는 AI 인프라 확장의 보이지 않는 속도 제한이며, 투자 붐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입니다.
AI 인프라 버블 논의에서 놓쳐선 안 될 부분이 금융 구조의 문제입니다. 겉보기에는 빅테크들이 사내 유보금과 주식 발행 등 자기자본으로 투자하고 있어 안전해 보일 수 있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복잡하게 얽힌 자금 순환이 존재합니다.
우선, 대형 기술기업들끼리의 상호 투자가 급증했습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오라클, 오픈AI 같은 업체들은 서로의 지분을 사들이고 돈을 대주며 밀접하게 얽힌 생태계를 형성했습니다[34]. 예컨대 엔비디아는 자사 GPU를 대량 구매하는 고객사(OpenAI 등)에 거꾸로 수십억 달러를 투자하고, OpenAI는 다시 클라우드 업체와 칩 업체에 전략적 지분 참여를 하는 식입니다[35][34]. 겉으로는 AI 수요가 폭발하여 거래가 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판매자가 구매자를 보조금 주며 키우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죠[36].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자기주도적 거래에 두 가지 큰 우려를 표합니다. 첫째, 이 같은 상호 투자는 실제보다 부풀려진 허수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37]. 마치 한 쪽 주머니에서 돈 꺼내 다른 쪽 주머니로 넣으며 매출이 나는 듯한 착시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둘째, 소수 기업들의 운명이 서로 깊숙이 엮이면서 한 곳의 충격이 전체로 번질 위험이 커집니다[37].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AI 관련 주식이 현재 S&P500 지수 상승을 주도하고 있는데[38], 이들이 서로 투자까지 겸하면 “올라갈 때 함께 오르고, 떨어질 때 함께 추락”하는 운명공동체가 됩니다[39][40]. 실제로 한 금융 전문가는 “AI 인프라 공급업자들이 번 돈을 다시 고객사에 쏟아붓고, 그 고객은 다시 그 돈으로 동일 공급업자의 제품을 사는 구조”라며, 이러한 순환이 시스템의 탄력성과 건전성을 약화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41][42].
또 다른 문제는 회계상의 위험 은폐입니다. 최근 일부 거대 기술기업들은 AI 인프라에 막대한 지출을 하고도 이를 재무제표에 정직하게 반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영업이익을 예쁘게 보이기 위해 감가상각 기간을 임의로 늘려 비용을 분산시키거나, 아예 특수목적법인(SPV)을 세워 데이터센터 투자를 외부 자회사로 떼어내는 수법도 동원합니다[43].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전 월가 은행들이 부채담보부증권(CDO)과 off-balance 차량으로 부실자산을 숨긴 것을 연상시킵니다[43]. AI 인프라 비용이 겉으로 덜 드러나니 투자자들은 해당 기업들의 수익성이 양호한 것으로 오인할 수 있고, 그 결과 주가 거품은 더 커집니다. 그러나 숨겨둔 비용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언젠가 손실이나 감가상각 형태로 한꺼번에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금융시장 측면에서도 취약한 집중 현상이 보입니다. 앞서 언급했듯 현재 미국 증시는 소수의 AI 서플라이체인 기업(엔비디아, AMD, TSMC 등 반도체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클라우드)이 견인하고 있습니다[38].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AI 관련주에 몰려들어, 해당 종목들의 밸류에이션은 전통 지표로 설명하기 힘든 수준까지 치솟았습니다[12]. 밸류에이션 부담, 한쪽에 쏠린 포트폴리오, 고금리 환경에서의 미래 현금흐름 할인율 상승 등 금융 변수들이 잠재적 위험 요인으로 쌓이고 있습니다[44][45]. 특히 엔비디아 한 기업의 시가총액이 1조 달러에 육박하며 시장의 시스템적 중요 기업처럼 되어버린 현실은, 만약 이 기업이 예상 실적 미달이나 기술 경쟁에서의 삐끗으로 흔들릴 경우 전체 금융시장이 충격을 받는 상황을 초래합니다[46]. 한 경제 전문가는 현재의 상황을 두고 “금융 시스템 전체가 엔비디아 같은 몇몇 칩 기업 위에 아슬아슬하게 균형 잡고 있다”고 비유했습니다[46].
정리하면, AI 인프라 투자 붐의 금융 구조는 겉보기와 달리 상호투자에 따른 수요 착시, 회계를 통한 리스크 은폐, 소수 종목에의 쏠림 현상 등 다층적 취약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 실현적 버블(circular bubble) 구조에서는 어느 한 고리가 끊어질 때 눈덩이처럼 문제들이 드러나며 일시에 붕괴할 위험이 있습니다. 엔론 사태나 서브프라임 당시에도 평소 가려져 있던 부실이 한순간에 수면 위로 떠오르며 연쇄 파산을 부른 전례가 있죠. AI 버블 역시 “무한한 수요가 있다면서 정작 파는 쪽이 사는 쪽을 계속 보조금으로 떠받치는” 현재 구조가 지속되는 한, 언젠가 시장 신뢰가 흔들릴 때 치명적 악순환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36].
마지막으로, 지정학적 긴장과 정책 변화도 AI 인프라 붐에 잠복한 중요한 리스크입니다. AI 기술은 이제 국가 전략의 핵심으로 부상했고, 이에 따른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미·중 기술패권 경쟁은 가장 큰 변수입니다. 미국은 AI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반도체 수출 통제 등 강경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습니다[29]. 2022년 고성능 GPU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한 데 이어, 2025년에는 그 허점을 파고들어 나온 특수 AI 칩까지 금지하며 중국의 첨단 AI 접근을 사실상 차단했습니다[29][47]. 이에 중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와 클라우드 인프라 확충에 막대한 국가 자원을 투입하며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글로벌 AI 산업은 미·중 양강을 중심으로 표준과 생태계가 양분되는 “디지털 냉전”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31]. 이런 상황에서 다국적 기업들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딜레마에 빠집니다. 한쪽 편을 들면 다른 거대 시장을 잃을 수 있고, 양쪽을 모두 상대하려면 이중 투자를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한 AI 칩 설계 기업이 미국용과 중국용 두 가지 버전을 개발·생산하는 비효율을 감수해야 한다면, 이는 곧 추가 비용과 시장 축소로 이어집니다. 지정학 리스크는 이렇게 투자 전제 조건을 바꿔놓음으로써 기존 사업 계획을 무력화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정책 리스크는 각국의 규제와 지원 정책 변화입니다. 유럽연합(EU)은 AI법(AI Act) 제정을 추진하면서 고위험 AI 시스템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중국 역시 자국 내 데이터센터에 대한 검열 및 통제를 엄격히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규제 환경은 AI 서비스의 사업모델뿐 아니라 인프라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줍니다. 가령 데이터 주권을 이유로 국가들이 데이터센터를 자국 내 두도록 요구하면,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은 각 지역마다 중복 인프라 투자를 해야 하는 부담이 생깁니다[48]. 반대로 어떤 국가는 세제 혜택까지 제공하며 데이터센터를 유치하려 해 지역 간 과당경쟁이 벌어지기도 합니다[48]. 현재 여러 신흥국이 “디지털 주권”을 명분으로 자국 데이터센터 산업을 키우겠다며 앞다투어 뛰어드는 상황인데, 이는 공급 과잉이나 품질 미달의 데이터센터 난립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습니다. 일종의 “데이터센터 골드러시”가 정책에 의해 촉발되고 있는 것이죠[49].
금리, 통화정책 등의 거시환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AI 붐은 앞서 언급한 대로 거대 기술기업들의 현금과 투자로 굴러가고 있지만, 이들이 조달하는 자본 비용은 정책 금리의 영향을 받습니다. 2022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금리가 상승하며 유동성이 축소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수익 창출이 불확실한 장기 프로젝트에 점점 인색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연준(Fed)은 인플레이션이 완강할 경우 금리를 더 올릴 수도 있다고 시사하는데, 앞서 IMF는 AI 붐이 생산성 개선 없이 수요와 인플레이션만 자극하고 있어 물가 안정에 변수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50]. 만약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높이는 상황이 오면, AI 인프라같이 당장 현금흐름이 나지 않는 투자들은 한층 큰 부담을 지게 됩니다. 이는 투자 축소→관련 기업 주가 하락→다시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 사이클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정책 리스크의 또 한 측면은 사회적 수용성입니다. AI 인프라 구축이 지역사회 반발에 부딪혀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앞서 본 멤피스 사례처럼 환경 문제로 제동이 걸리거나, 전력사용 과다로 지방정부가 신규 데이터센터 허가를 중단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AI 기술 자체에 대한 윤리적 규제나 안전장치 마련 요구가 커지면, 정부들이 고성능 AI 연산에 제한을 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정책 및 사회 환경의 변화는 현재 낙관적인 투자 전제들을 뒤흔들 불확실성의 지뢰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네 가지 구조적 리스크—과잉 설비투자, 자원 인프라의 제약, 금융 구조의 취약성, 지정학·정책적 불안—는 각각 하나하나도 중요하지만, 실제 버블 붕괴 시나리오에서는 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AI 인프라 붐이 어떻게 하면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사한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할 수 있을지, 그 전개를 가늠해보겠습니다.
우선 버블 붕괴의 방아쇠는 내재된 위험 요소 중 어느 쪽에서든 당길 수 있습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기술적 성과나 수익 부진으로 투자자들의 환상이 깨질 수 있고, 또는 지정학적 충격(예: 대만 해협 위기, 수출 규제 강화)으로 공급망 혼란이 촉발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금융 환경 급변(급격한 금리인상이나 유동성 경색)으로 투자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을 수도 있죠. 어떤 형태로든 AI에 대한 낙관론에 금이 가는 순간, 먼저 나타나는 조짐은 거품의 중심에 있었던 주가 급락일 것입니다. 실제로 2000년 닷컴 버블도, 2008년 서브프라임도 초기에는 금융시장에서 관련 자산 가격 폭락으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AI 인프라 버블의 경우, 주가 하락이 특히 위험한 이유는 앞서 설명한 금융 순환 구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OpenAI에 거액을 투자한 엔비디아의 주가가 급락하면, OpenAI의 기업가치와 투자여력에도 타격을 줍니다. OpenAI가 위축되면 다시 마이크로소프트의 클라우드 매출 전망이 악화되고, 이는 MS의 주가에 영향을 줍니다. 이렇게 서로 지분 관계와 사업 관계로 엮인 플레이어들이 동시다발적 충격을 받으며 연쇄적인 주가 폭락을 겪을 수 있습니다[37][40]. 문제는 이러한 자산 가격 하락이 실물 영역으로 곧바로 파급된다는 점입니다. 데이터센터 개발을 위해 투입된 민간 자본은 주로 부동산 투자신탁(REIT)이나 인프라 펀드 등을 통해 조달되는데, 자본시장이 얼어붙으면 신규 프로젝트는 취소되고 기존 진행 중인 공사는 중단될 것입니다. AI 스타트업들 역시 IPO나 후속 투자 유치가 막히면서 대규모 해고와 정리 수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건설업, 반도체 제조업, 클라우드 운용 인력 등 관련 분야에서 고용 충격이 발생하고, 실물경제 수요도 냉각되겠지요.
다음 단계로, 버블 붕괴가 금융 시스템적 위기로 번질지 여부가 관건입니다. 앞서 IMF는 낙관적으로 보았지만[16], 상황에 따라서는 광범위한 파급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AI 인프라 버블로 호황을 누리던 비은행 금융기관(NBFI)들—벤처캐피탈, 사모펀드, 헤지펀드, 연기금 등—이 일제히 큰 손실을 보면 신용경색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51]. 특히 일부 연기금이나 국부펀드의 경우 AI 섹터에 집중 투자해온 곳도 있는데, 이들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다른 자산을 급매도하면 2차 충격이 발생합니다. 금융시장 전체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자산 가격 하락→마진콜→투매의 소용돌이에 빠지면, 비록 은행이 직접 연루되지 않았더라도 광범위한 유동성 위기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서브프라임 사태도 초기엔 “주택시장에 국한된 문제”로 보였지만, 연관 금융상품을 보유한 기관 투자자들의 연쇄 손실과 신뢰 위축으로 전 세계 금융위기로 번졌습니다. AI 버블 역시 직접 대출 연계는 적을지 몰라도, 숨은 부채(예: 기업들이 세워둔 SPV의 차입금)나 파생상품을 통해 예상 밖의 경로로 터질 위험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43].
또한 실물경제 의존도 측면에서도 리스크가 존재합니다. 만약 AI 인프라 투자가 한창일 때는 GDP와 고용에 긍정적 기여를 하다가, 버블 붕괴 후 그 공백이 생긴다면 경제 전반이 급랭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IMF는 2023년 미국 경기의 견조함이 AI 붐의 투자 효과 덕분인 면이 있다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52]. 그러니 거꾸로 거품 붕괴 시에는 그만큼 경기 하강 압력이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AI 붐으로 제조업 등 다른 부문에의 투자 자금이 빨려 들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데[53][54], 만약 AI 분야가 무너진다면 그 공백을 메울 다른 산업들도 이미 약화된 상태여서 경제 전반에 활력이 상실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물 침체와 금융 불안이 맞물리면 서브프라임 때와 유사하게 실물-금융 복합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낙관론자들의 말대로, AI 인프라 버블이 꺼지더라도 2000년대 닷컴 붕괴처럼 경기 침체는 일시적이고 금융시스템 붕괴로 이어지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55][16]. 남는 것은 값진 인프라와 기술 혁신의 토대이고, 사회는 그 혜택을 볼지 모릅니다[7][56]. 그러나 혁신의 열매를 얻기까지 버블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결국 경제 주체들의 몫입니다. 특히 이번 AI 인프라 붐은 규모 면에서 과거 어떤 기술투자 거품보다 방대하며[57], 민간과 공공 자본, 글로벌 공급망과 지정학 환경이 총체적으로 뒤얽혀 있다는 점에서 그 불확실성과 파급력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혁신인가, 위기의 전주곡인가”라는 물음에 확실한 답은 없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기술 인프라 구축 노력이 진행 중이고, 그 이면의 균열 역시 서서히 확대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기술 혁신과 투기적 거품은 때때로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 역설(paradox)을 직시하고 대비하는 자세일 것입니다. 지금의 AI 인프라 붐이 진정한 새로운 시대의 개막으로 이어지려면, 당장의 열기에 가려진 리스크들을 인지하고 지혜롭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 눈부신 기술 혁신의 서곡은 자칫 시스템 리스크의 전주곡으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