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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케이트 Apr 20. 2024

02. 사람이 어딘가로 방향을 품으면

인생을 많이 살아본 건 아니지만(하지만 적지도 않게 살았다),     

그래서 이게 일반적인 경우가 아닐 수도 있지만,     

사람이 어딘가로 방향을 품고 있으면,     

결국 그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내 경우는 그랬다.          


사실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     

단순히 여행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전혀 다른 문화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보고 싶다는 열망은,      

처음에는 ‘막연한 희망’ 같은 거였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은.... “      

정도의 열정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자주, 그리고 오래 그런 희망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일까? 결국 실현되더라.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그쪽으로 내 삶의 방향을 옮기고 있었나 보다.          


대학을 졸업하고,     

막막한 시간들이 있었다.     

영화를 좋아한 탓에 그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 전공과도 다른 길이었고,     

지방에서 살아오신 부모님에게는 내 바람이 무슨 뜬구름처럼     

들렸을 수도 있다.     

부모님은 다행히(?)도 나와 동생에 대해 그렇게 큰 기대가 없으셨다.     

그냥 안정된 직장(공무원 같은, 아니 큰 기대인가?)에 들어가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만을 바라셨을 뿐이다.     

그러니,     

대학 등록금 대느라 허리가 휘신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결국, 원하지도 않은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첫 사회생활은      

늘 암울했다. 당연하게도.     

직장을 다니면서도,     

다음 일을 꿈꿨다.     

‘이건 임시야’라는 생각을 품고.     

하지만 알다시피 일을 하면서, 다음을 위해 뭔가를 준비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니, 독한 마음을 품어야 가능한 일이다.     

녹초가 되어 집에 오면 TV나 보다 자기 일쑤였고,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열대야로 잠 못 이루던 어느 여름날,     

내 인생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휩싸였다.     

이성이 죽고, 감성이라는 녀석이 펄펄 뛰는 그런 시간에.     

환한 낮이라면 내가 처한 현실을 더 생각했겠지만,     

밤이니까, 난 잊고 있었던, 아니 억지로 잠재워 뒀던 꿈 또는 희망이라는 녀석을 꺼냈다.     

“한 번쯤은” “만약에”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이국에서의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된 거다.     

그때가 휴가 때라서 가능했는지도 모르겠다.     

퇴근 후 밤이었다면 열대야든 뭐든 난 곯아떨어졌겠지.     

하지만 휴가 중이었고,      

밤낮이 바뀐 생활 패턴이 주범이라면 주범이었다.          


“까짓것 한번 해보자”라는 쪽으로 마음이 굳어지니,     

그다음부터는 일사천리더라.     

20대 때만 해도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번 결정한 것은 뒤도 안 돌아보고 추진하는 사람     

(지금은 돌다리를 두드리고 두드리다 못해 새로 공사를 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난 쫄보다).     

다음날부터 컴퓨터를 뒤지기 시작했다.     

사실 처음엔 미국을 생각했다.      

10년 동안 공부를 했음에도 ‘아임 파인 땡큐(I’m fine, thank you)’밖에 할 줄 몰랐지만,     

그래도 한글 다음으로 가장 익숙한 언어가 영어니까.     

하지만 학비가 나를 가로막았다.     

누군가가 산출한 1년 학비 및 생활비가 1억이 넘었다.     

맙소사!      

그렇군, 미국 유학은 재벌들이나 가는 거였군.     

결국 난 유럽, 그 유명한(모든 예술가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파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럽은 당시 국립대학 학비가 몇십만 원이었다. 심지어 외국인도 등록금이 똑같았다!)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이런저런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난 덕에 큰 탈 없이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파리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해 공항에서 엄마, 베스트 프렌드와 작별 인사를 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냥 얼어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나중에 친구가      

“뒤도 안 돌아보고 너무 무심하게 게이트로 들어가 버렸다”라고 알려줘서,     

그날 내가 '어마무시'하게 긴장하고 있었구나, 한참 뒤에 깨달았다.     

긴장하면 로봇처럼 굳어지는 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photo by 이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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