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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Mar 28. 2022

내가 지켜줄게 15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열다섯 번째 이야기 : 굴러온 돌, 태평이와 동숙이 -


남녀 차별이 분명했던 오래전 시절에는 시집간 딸이 시집으로부터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갈 곳 없는 딸은 다시 친정으로 돌아와 살았는데, 부모 입에서는 불만 섞인 말들이 나왔지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가장 애틋한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문냥이에도 이런 아이들이 있었다.

찡찡이와 노랑이

찡찡이와 노랑이는 입양자가 미국으로 간다며 파양 한 사례이고, 두부는 입양자 건강이 나빠져서 다시 돌아온 사례다. 셋 모두 보호소에 남아 있는데, 찡찡이와 노랑이는 잘 지내고 있지만, 큰 눈을 가진 두부는 여전히 좋지 않다. 복막염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며 4개월 동안 집중 치료를 받고 겨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뭉크는 입양자가 잃어버렸지만 이문냥이가 운좋게 구조해왔고, 바둑이 아빠 흰둥이는 임시보호를 갔다 잃어버렸지만 구조 후 다시 입양을 갔다. 동두천으로 간 미루도 입양자가 잃어버렸지만 이문냥이가 끝까지 추적 구조해서 다시 보호소에 돌아온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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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루가 입양 간 곳은 동두천 소요산 자락이었다. 도망치더라도 멀리 가지 않는 것이 고양이들의 습성이기 때문에 미루 또한  입양자 집이 있는 마을에서 다시 구조되었다.

미루

미루의 재구조는 이문냥이에게 있어서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혼자 나갔다가 혼자 돌아온 다른 아이들과 달리 미루는 혼자 나갔다가 굴러온 돌을 둘이나 달고 돌아온 것이다.


옛말에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낸다고 하는 말이 있다.


박힌 돌 입장에서는 들어온 돌이 주인행세를 하니 기분 나쁜 일이다. 하지만 굴러온 돌 입장에서는 새로운 삶의 터전에 들어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박힌 돌과 굴러 들어온 돌 간의 한 판 승부는 피할 수 없는 운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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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냥이가 입양자로부터 미루가 창을 뚫고 나갔다는 말을 들은 건 미루가 나간 지 보름이나 지난 후였다. 아침일을 하던 이문냥이 사람들과 자원봉사 남학생 둘은 청소를 마친 후 미루 사진을 담은 전단지를 만들어서 곧바로 달려갔다.


소요산 자락 넓은 농지를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막막함이 떠나질 않았다.

일단 입양자 집을 중심으로 전단지를 붙여 나갔다. 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넓은 밭을 주변으로 모든 전봇대에 미루 사진을 붙였다.


입양자와는 모모가 이미 한 바탕 언성을 높인 터라 연락이 되지 않았다. 고양이가 모든 것이라 믿고 있는 모모에게 있어 창틀을 보강하지 않아 미루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첫날은 전단지 붙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일주일 뒤부터 미루처럼 생긴 고양이를 봤다는 제보들이 들어왔다. 고양이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미루는 여전히 입양자 집 주변에 있었다.


두 번째 출동을 했고 미루를 보았다는 캣맘을 만났다. 동네 가운데 깻잎 밭 귀퉁이에 있는 마을 쓰레기 취합장 부근에 자주 나타난다고 했다.


일단 캣맘에게 부탁을 했다. 미루가 이곳에 정기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앞으로 1주일 동안 주기적으로 이곳에서 밥을 줄 사람이 필요했다. 캣맘은 흔쾌히 수락했고 에스펜은 가져온 사료를 전달해 주었다.


시간은 흘렀고, 사람들은 1주일 뒤 다시 동두천으로 향했다. 세 번째 날이었다. 이 날은 저녁이 가까워지는 무렵이었다. 깻잎밭 앞에는 캣맘이 기다리고 있었다. 미루가 밥을 몇 번 먹기는 했지만, 자주 오지는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흩어져서 살펴보기로 했다. 혹시 모르기 때문에 이 날은 통덫 몇 개도 가지고 왔다.


덫을 설치한 후 에스펜은 길을 사이로 밭을 바라보고 있는 빌라 화단에 앉았다. 덫을 놓았으니 저녁이 지나 밤이 될 때까지 기다려 보기로 했다. 같이 간 학생들도 옆에 앉았다.


미루에 대한 이야기, 동두천과 미군부대, 그리고 뒤쪽에 감싸고 있는 소요산에 대한 이야기 등등 시골 밤에 모여든 동네 사람들 대화 같은 모습이 포근하게 이어졌다.


마을 이야기를 하던 순간 이들 앞에 고양이가 나타났다. 노랑이였는데, 덩치도 컸고, 무엇보다 너무 착했다. 마치 사람 손에 키워진 아이처럼, 마치 이들을 기다렸다는 듯이 그렇게 다가왔다.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만지고 배를 만져도 좋아하기만 했다. 손톱을 내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에스펜은 가지고 있던 연어캔을 열어서 잘게 잘라 주었다. 느긋하게 식사를 마친 노랑이는 마치 고마움을 표시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지나가던 할머니 한 분이 동숙이라고 말해준다.

동숙이

1주일 뒤 네 번째로 마을을 찾았다. 미루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는 장소도 확인했다. 마을 쓰레기장이 아니라 마을 입구 빌라 주차장이었다. 통덫을 주차장 주변과 혹시 모를 쓰레기장 한쪽 구석에 설치한 후 지난번 앉았던 빌라 마당으로 이동했다. 사람들은 동숙이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다시 마을 입구 빌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학생 민)'어.. 저기 동숙이가 있어요.'


차도를 따라 동숙이가 사람들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학생들이 다가가자 코인사를 한 뒤 몸을 비벼댄다. 에스펜이 캔을 꺼내 주었다.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며칠 굶은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동숙이는 역시나 가지 않고 사람들 주변에 앉아 있었다.


동숙이에게서 뭔가 다른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이미 어두워지고 있는 무렵이었기에 다들 개의치 않았다.


이날도 미루는 잡히지 않았고 9시가 넘어 사람들이 떠나려 하는 순간까지도 동숙이는 사람들을 따라다녔다. 에스펜이 말한다.


(에스펜)'동숙이가 불쌍하네. 아까 보니까 이 동네에 큰 강아지도 많던데...'

(모모)'착한 아이들은 입양도 잘 되니까, 우리가 구해줍시다, 언니'


그렇게 해서 동숙이는 차를 타고 서울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김꼭빵이 동숙이를 고양이 케리어에 안아 올려놓는 순간 조금 전까지 사람들이 애써 무시했지만 무언가 어쩔 수 없이 찝찝하게 다가왔던 이상한 느낌의 실체가 확인되고 만다.


동숙이는 암놈이었는데, 차에 탄 이 아이의 아랫배 끝에서 만져지는 그것은 숫놈의 상징이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이 아이가 동숙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임을 알게 되었다.

굴러들어 온 돌 태평이

서울로 돌아오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마치 '미안하지만 저 좀 데려가 주세요.' 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이 아이는 이후 태평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동숙이와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비슷한 것을 보면 분명 남매 같다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며칠 후 남학생 둘이 밤을 새보겠다며 동두천에 갔지만, 미루와 동숙이는 찾지 못했고, 이들은 결국 며칠 후 이문냥이 사람들이 출동했을 때 무사히 구조되었다.


보호소 생활을 하게 된 태평이는 들어오자마자 보스로 등극하였고, 지금까지도 아이들이 싸우거나 병원에 가기 싫다고 버티는 경우 어디선가 나타나 싸움을 말리고 설득하는 등 보호소 소장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박힌 돌을 빼내버린 굴러들어 온 돌이었지만, 이제는 이문냥이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고양이, 태평이. 당연히 입양 문의가 많지만 태평이 만큼은 마지막에 보내고 싶다는 사람들의 바람이 있어, 태평이는 오늘도 보호소에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 편, 미루는 아직까지도 보호소에 머물러 있고, 고양이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동숙이는 그 덕분에 좋은 입양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인생은 알 수 없게 밝은 놀라움의 연속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놀라움이 거저 만들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태평이와 동숙이의 서울 상경 운명이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착하게 살면 언젠가는 복을 받는다는...


- (예고) 열여섯 번째 이야기 : 초, 봄, 치, 스, 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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