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나방
덜컹거리는 느낌과 감긴 눈으로 느껴지는 어둡고 습함.
눈을 떠보지 않아도 밤이라는 걸 느꼈다. 어떤 공간인지 오직 그것만 궁금했다. 뜨기 싫었던 눈을 살며시 떠 보았다. 익숙한 버스 풍경이었다.
맨 뒷좌석에 혼자 앉아 있었고, 앞으로 두 명의 여자들이 각각 다른 자리에 몸을 싣고 있었다. 한 여자는 이상하리 만치 가냘파 보였다. 삐쩍 마른 건 아니지만 왜소하고 약해 보이는 몸체. 각진 얼굴이라 광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또 다른 여자는 차가웠다. 동그란 얼굴에 큰 키를 가져서 뭇사람들이 좋게 바라볼 인상이었지만 무표정에서 나오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 듯했다.
밖은 어두웠고, 난 영문도 모른 채 버스를 타고 있고 내 앞으로 두 명의 여인들만이 존재한다. 내가 사람임을 이 공간이 버스 안임을 그리고 어두운 밖은 밤임을 인지하면서도 내가 누구인지 또 왜 이곳에 있는지 연유를 몰랐다.
살면서 가끔 나의 존재 이유를 떠올리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답도 없는 늪에 빠진 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내 삶이 딱히 불행한 것도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닌. 그저 온 우주에 먼지만큼 작은 존재라는 걸 처음 인지한 것처럼.
*
대학교 정류장 앞에서 둥근 여자가 내릴 준비를 한다. 무거워 보이는 백팩을 메고 힘차 보이는 운동화를 신은 모습에서 마치 전쟁터를 나가는 굳은 결심 혹은 다짐이 보였다. 같이 따라 내려야만 될 것 같은 충동을 느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내가 뒤따르고 있음을 모르는 것 같았다. 그저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그랬다. 조금씩 푸르스름해지는 하늘을 보며 그녀는 학교 도서관 안으로 들어섰다. 정돈된 개인 책상에 앉아 방대한 양의 서적을 꺼낸다. 그렇게 4시간, 점심을 먹고 5시간 저녁을 먹고 또 4시간을 공부하며 다시 가방을 챙겨 나간다.
진동을 느낌과 동시에 핸드폰을 내려보던 그녀는 통화 버튼을 누른다.
- 어, 엄마 집 가는 중. 안 그래도 전화하려 했는데.
- 오늘도 밥은 혼자 먹었어?
- 응. 사람들이랑 같이 다니면서 먹는 게 오히려 스트레스받고 불편해. 공부에 신경 쓰는 것도 힘든데 감정까지 낭비하고 싶지 않아.
- 안 심심해? 그래도 말도 좀 나누고 해야 덜 외롭고 힘들 텐데.
- 엄마. 나는 그냥 진짜 얼른 시험 합격하고 싶어. 돈 벌어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불안정적인 삶이 이제 너무 힘들어. 내가 여기서 여유를 가지고 사람과 만나는 시간을 더 좋아하게 되면 결국은 또다시 불안정해져. 난 얼른 언니도 도와주고 싶고. 정인이도 잘 보내주고 싶어.
- 그래도 정인이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나서 천천히 자기 삶을 되돌아보고 즐겼잖아. 그런 여유 없이 너무 공부에만 매달리면 네가 숨 막혀할까 봐. 그러면 또 우울해질 거잖아. 조금씩 어울리고 쉬어가며 하라는 거지.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처음 봤던 냉소적인 표정이었다. 왜인지 너무 익숙한 얼굴이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듯. 말을 꺼낸 들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을 거라는 걸 확신하듯 그렇게 통화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굳은 의지가 보였던 발걸음이 조금은 무거워져 보였고, 보이지 않는 짐이 그녀에게 쌓여있는 듯 보였다.
*
또다시 나는 눈을 감고 있었고 따스했다. 덜컹거렸고 버스 안임을 인지했다.
기억을 하고 있었다. 이 장소가 또다시 버스임을 알았고, 전과 다르게 해가 하늘에서 뜨거운 열기를 내뿜고 있었다. 둥근 여자가 기억이 났다.
눈을 떠보니 내 앞으로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왜소한 여인. 오늘은 저 사람을 따라가는 것이 나의 두 번째 기억이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검정 슬랙스를 입고 위에는 얇은 하늘색 반팔 블라우스를 입었다. 하얀 에코백을 어깨에 걸쳤다. 옷 밖으로 느껴지는 왜소함이 왜인지 지켜주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버스에서 내려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단단했다. 외형으로 보았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 지점이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능숙하게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 여기 애들이 먹을만한 메뉴는 없나요? 시럽이나 색소 카페인 안 들어간 걸로요.
- 네 손님. 그런 메뉴는 없으세요.
- 네?
- 시럽이 없으면 색소가 들어가고 색소가 없으면 시럽이 들어가요. 시럽, 색소 없는 음료는 카페인이 들어갑니다.
- 그럼 애들은 무슨 음료를 먹어요?
- 물 드릴까요?
생각보다 더 단단한 여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3시가 되고 유니폼을 다시 갈아입으며 주차장으로 가던 그녀는 하얀 승용차 조수석에 앉는다. 운전석의 여인은 짧은 곱슬머리를 뒤로 묶어 웃으며 그녀를 반긴다.
- 오늘은 어땠어?
- 아니 아침부터 애기랑 엄마가 같이 왔는데 애가 먹을만한 음료를 물어봐. 근데 시럽 색소 카페인 다 없는 걸 찾잖아. 하물며 초코우유도 카페인 들어가는데 2-3살도 아니고 뭐 그렇게 유난을 떠는 건지. 엄마도 그랬어? 진짜 그런 손님 올 때마다 너무 재수 없어. 그렇게 따질 거면 집에서 착즙 주스나 만들어 먹지 밖에서 왜 음료를 마시냐고.
- 너 또 너무 극단적으로 간다. 그 사람도 처음이겠지. 부모가. 아이도 첫 아이면 더 그럴 거고.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너 낳았을 때 제일 이것저것 따졌어. 나중에야 좀 누그러진 거지.
- 아 아무튼. 난 이래서 애들도 싫고. 결혼도 하기 싫어. 혼자가 좋아.
- 살아가면서 책임감을 가지고 경험하는 건 많이 중요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
내일은 눈을 감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분한 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가진 기억이 고작 어제와 오늘이라서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내 삶의 목적이랄까. 이유조차 알 수 없어서. 그냥 익숙한 듯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옮긴 걸음 끝에는 오래되어 보이는 5층 아파트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없고, 주차장도 협소해 보이지만 그래도 관리를 하는지 화단이 갖추어져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쉬웠다. 4층으로 올라가 대문을 열기까지가. 문 앞에서 왜인지 너무 들어가기가 싫었다. 내가 들어가야만 했던 건 아님에도 방법이 이것뿐이라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거부감이 들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실 티비 옆 액자에는 아까 봤던 운전석 여자의 젊은 모습과 누군지 모를 남성이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집에는 어려 보이는 여자 한 명, 남자 한 명이 한 방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에너지가 넘쳐날 시기에 아이들이 얼른 할 일을 끝내고 놀기 위해 들떠있는 모습은 아니었다. 힘도 없고 의지도 없어 보였다. 눈동자에 초점이 없는 모습이 현관문을 열기 전 느꼈던 마음을 일깨웠다.
- 너희 씻었어?
- 응, 청소기도 밀어놨어.
단단한 여자는 카페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손님을 대했을 때 보다 더 단단한 얼굴과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질문했다. 이 모습이 한 집에서 몸을 부대끼며 사는 사람들의 얼굴인가.
거실을 지나 주방 바로 옆에 딸려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가던 여자는 싱크대 위에 놓여있는 우유갑을 보고 조소를 띄우며 집어 들었다. 우유갑은 빨대가 끼워져 있었고 여자가 드는 모양새를 보니 굉장히 가벼워 보였다. 다 먹은 우유갑이었다. 여자는 단단한 걸음으로 아이들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바닥을 향해 힘껏 던졌다. 아이들은 순간 놀라 움찔거리며 눈이 터질 듯 여자를 쳐다봤고, 여자는 자세를 바로 고쳤다.
- 한 두 번 말하니? 병신이야? 씨발 진짜 니들이 할 거 아니면 뒷정리나 잘하라고. 나랑 고모가 너희 뒤치다꺼리해주는 사람이야?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어. 우유 다 마시면 정리하고 우유갑 펼쳐서 종이 버리는데 놓으라고 했어 안 했어?
아이들은 아무런 반응 없이 여자를 쳐다본다. 여전히 눈동자에 초점은 없다.
*
빨갛게 넘실거리는 불꽃이 모든 걸 집어삼킬 것만 같다. 저 불꽃이 무엇을 삼키려나. 무엇을 삼키고 있나 한참 쳐다봤다. 바람처럼 흘러나오는 연기가 자유로워 보였다. 어두운 밤, 사방에 불이 꺼진 이곳에서 연기의 색은 보이지 않은 채 빨간 불만 번져간다.
작은 불씨가 점점 거세지는 걸 왜 아무도 몰랐을까. 결국 모든 마음의 불씨가 나를 집어삼킬 거라는 걸. 차갑고 냉소적인 모습에서 우리는 주변의 온기를 다 없애버릴 정도의 차가움만을 본다. 그 안에 불타고 있는 뜨거운 무언가가 있음을 깨닫지 못한 걸까. 죽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비로소 하나가 된 것이다. 안은 너무 뜨거워서 누가 제발 식혀주기를 바라지만 아무도. 그 어느 누구도 식혀주지 않았다. 말로 눈물로 그 뜨거움을 한 움큼씩 걷어내 보려 노력하지만 내 앞에 넘실거리는 불꽃처럼 그 속도를 따라잡기에 너무 버겁다.
*
2011년 4월 1일
날짜가 정확히 기억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경우이리라. 너무 불행했거나, 너무 행복했거나.
14살의 첫 생일을 5층 아파트에서 보내게 되었음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작은 투룸에서 다섯 가족이 같이 모여 살던 그 시절 나는 가난이라는 이름으로 꽤나 불행한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성악설이라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살았다. 그저 행복하기만 했던 내게 가난이라는 단어를 일깨워 준 것은 학교에 들어가서였다. 아주 작은 어린아이들은 아주 작기만 하지 않았다. 똑같은 옷을 입고 있음에도 가난을 찾아냈다. 따돌렸다. 창피한 것이라는 걸 배웠다. 점점 덧대어졌다. 내 집과 옷, 사소한 물건들 까지 다르다는 색안경이. 그랬던 나에게 방이 3개나 되는 큰 거실이 있는 집은 행복을 넘어선 무언가였다. 하지만 행복의 조건이 모두가 같지 않다는 건 미처 몰랐다. 엄마는 그 집에서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늘 방에 들어 누워 숨죽여 울기만 했다. 그 뒷모습이 마치 시체처럼 느껴져서 다가가지도 못했다. 저 어둠을 만지면 나도 같이 추락할 것만 같았으니까. 14살에 내가 46살의 엄마를 이해하기에는 나도 나의 인생이 먼저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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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랑 동현이랑 당분간 같이 지내는 거 어때? 삼촌이 이혼하게 돼서 애들이 당장 지낼 곳이 없다는데...
그 질문에 대답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수백 수천 번을 후회했다. 나의 대답이 그 결과를 초래했으리라 생각하니 몹시 끔찍했다. 난 결국 살인자 거나 방관자밖에 되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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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어 보았을 때 아이들이 어떻게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았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길어야 6개월 정도 함께 지낼 사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길면 1년이라고. 동아는 7살 동현이는 3살이었다. 아주 작은 생명체였고, 버림받은 존재들이었다. 현재와는 조금 다른 과거에는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 미덕이었던 만큼 나에게는 자연스럽게 많은 사촌동생들이 있었다. 첫째였던 우리 엄마 덕분에 우리 세 자매는 언니 혹은 누나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버거울 정도로 잘했던 터라 간혹 분노가 터져 나올 때도 있었지만...
그래서 동아와 동현이를 돌보는 일이 나에게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왜인지 모르지만 가녀린 존재를 안아주는 것도 나의 본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늘 하던 것처럼 밥을 해주고, 씻겨주고 재워주며 아이를 돌봤다. 동현이보다 성장한 채로 왔던 동아는 밤만 되면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었다. 기억이라는 것을 간직한 채로 오는 슬픔은 그 무게가 더 크다는 것을 배웠다. 슬프게도 그 기억이 절절한 따뜻함 뿐은 아니었다. 잔잔한 고요 속에서 동아가 말을 꺼내기 시작할 때면 숨죽여 듣기만 했다. 그 기억이 7살 더 많은 내가 듣기에도 역겨웠다. 선잠에서 깬 동아가 방을 나와 안방을 보았을 때, 엄마는 이 늦은 시간에 목욕을 하러 목욕탕에 혼자 간다며 아빠와 다투고 있었다고 했다. 또 어떤 때에는 김밥 몇 줄 사서 동아에게 쥐어준 채로 동아와 동현이만 있던 그 큰 집을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동아는 김밥을 싫어했고, 동현이를 싫어했다. 그때는 안쓰러웠다. 그 작은 것들이 감당할 아픔이 몸집보다 거대해서 방패가 되어주리라 생각했다.
*
복선이라는 말은 점괘를 보는 것처럼 신뢰도는 떨어지지만, 가끔 운명이라는 의미를 우리들에게 부여해주기도 한다. 동생 하나 없이 막내로만 살아온 나에게 동아와 동현이는 어떤 의미였을까. 그 사건이 모든 것을 붕괴시킨 시작이었다는 걸 지금 와서 깨닫는다. 열다섯열여섯이었을까. 문구점에서 생각 없이 처음으로 사 본 형광펜이 너무 부드러웠다. 많은 형광펜을 써봤지만, 그렇게 부드럽게 그어지는 형광펜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아껴 쓰리라 생각하고 책상에 있는 볼펜 통에 넣어두었다. 처음 느낀 부드러움은 금세 잊어버리고 지냈으리라. 작은 언니가 타지에서 고등학교를 재학하며 언니의 책상을 동아가 사용 중이었다. 동아가 잠시 사용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는 내 언니의 책상에서 난 가끔 추억을 상기시키고는 했다. 언니의 책상 동아의 연필꽂이에서 그 형광펜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어보니 펜촉이 알록달록 더럽혀져 있었다. 당시에는 형광펜이 내 책상에서 언니의 책상으로 옮겨간 이유라든지 의문을 품지 못했다. 그냥 더럽혀졌고 버려야겠다 생각했을 뿐이었다. 휴지통에 바로 던져버렸다. 언니의 책장에는 수많은 책들 말고도 우리의 추억이 동시에 공존하는 앨범이나 스케치북이 바래서 올려져 있었다. 며칠 뒤 정말 우연처럼 그 책장에서 나의 형광펜을 발견하게 됐다. 그때 내가 버린 그 형광펜을. 지나쳤던 이유와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버려진 걸 누군가 발견했고 책장 맨 꼭대기 종이들 사이 깊숙이 넣어둔 건 의도를 가진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제야 동아의 행동이라는 걸 눈치챘다.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처음 사용과 더럽힌 것까지는 잘못이라고 하더라고 그 뒤로 쓰레기통에서 가져와 숨긴 건 스스로 잘못됨을 인지했고, 미안함과 고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욕심’이 더 컸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분노를 형성했다. 생전 겪어보지 못한 분노였다.
- 이 형광펜 네가 쓴 거야?
- 아니?
- 저번에 우연히 네 연필꽂이에서 발견했었어. 열어보니까 끝이 더러워졌더라고 그때는 의심 없이 버렸는데 왜 쓰레기통에 있어야 할 형광펜이 책장에 숨겨져 있느냐 말이야. 네가 발견하고 다시 숨긴 거 아니야?
- 아니야... 나 진짜 안 훔쳤어..
동아의 눈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눈물은 마음을 흔드는 아주 좋은 도구지. 그래 어쩌면 긴 사연이 있을지 모르지. 그렇지만 너의 욕심을 생각하니 치가 떨려서 난 웃어넘길 수 없어. 그런 마음뿐이었다. 고작 초등학교 저학년이 정말 약았다고 생각했다. 결국 1시간이 넘는 말씨름에서도 자백은 얻을 수 없었고, 큰 언니가 집에 오고 나서 1시간이 더 흘렀다. 언니의 개입에도 울기만 할 뿐 진실은 알 수 없었고. 거짓말은 나쁜 거고 정말 미안해야 하며 뒤늦게라도 사과하라는 큰 언니의 말로 일단락되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고작 5분 10분이 지나서야 가스레인지 앞에서 계란이나 굽던 내 옆으로 와 한마디를 했다는 것뿐.
“미안해.. 정인 언니..”
*
엄마는 말하고는 했다. 이모들이랑 엄마는 힘들어도 버티며 살아가는 할머니를 보며 커서 참을 줄 안다고. 하지만 삼촌들은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할아버지를 보고 자라 아빠로서의 역할을 잘 모르고 컸다고. 그래서였을까. 삼촌들이 모두 이혼을 하게 된 것은. 나 역시도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다 보니 성장이라는 것을 했다. 생각과 시각이 성숙해져 갔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성장이 성숙도와 비례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제법 비례했으니. 그래서 고등학생이 됐을 무렵에는 삼촌들이 얼마나 미성숙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내가 들은 말은 엄마라는 매개가 중간에 있었기 때문에 100%의 신빙성을 갖지는 못하지만
그러했다는 행동들의 유무를 판별하라면 그런 행동을 옮겼다는 것만으로 악이라고 느꼈다. 대게는 그 삼촌들과 결혼한 여자들의 미개함을 한탄했다. 그 중심은 늘 ‘돈’이었다. 목적은 자신의 화려함. 같은 여자인 나로서도 치가 떨렸다. 그렇게 그 여자라는 인간들의 무지함에 화가 나다가도 그거 하나 구분 못한 바보들이라고 삼촌들을 생각했다. 그저 이쁘면 그만인 외모와 치장만 화려했던 기억이 나에게도 선명하다. 그런 남녀가 만났으니 당연한 처사였을까. 나의 성숙도에 기여한 것은 1번 연인은 외모를 보고 만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2번 결혼이라는 제도를 성숙하게 하자. 3번 아이를 함부로 낳지 말자. 그에 합당한 책임감을 느끼며 행동으로 옮기자. 4번 낳았다면 그 행동에 끝까지 책임을 다하자.라는 목록이 아주 강력하게 각인되었다. 근데 왜 그 자식들을 우리 엄마가 떠맡는 것일까. 첫째라는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서? 그저 아들 아들 하는 할머니도 싫었고, 돈으로 해결하려 하는 삼촌의 책임감 없는 모습도 화가 났다.
*
주 양육자가 양육을 포기하면 대부분 이모 고모 이모부 고모부가 키운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들의 입장을 안타까워하고 안쓰러워한다. ‘아이’와 ‘어른’은 다르고 작고 연약한 존재는 보호해야 하니까 ‘얼마나 눈치를 보며 컸을까.’ 하며 위로를 건넨다. 크고 작은 상처의 말과 행동을 보인 어른들에게는 냉소적이고 적대적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위선 따위 패악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사실을 남의 인생에서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 하찮은 위로라고 생각했다. 보호를 받아야 했던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부모가 이혼을 했고, 버려졌다는 사실을 두고두고 명분으로 가지고 사는 게 참 역겨웠다. 자신들이 안쓰럽고 싶을 때는 안쓰러운 도구로 사용하고, 자신을 안쓰럽게 보는 눈빛과 말이 지겨워 분노가 생길 때 분노의 도구로 사용하며, 남들과 다른 속도로 세상을 살아갈 때면 남들과 다른 가정환경을 가졌다는 이유의 도구로 사용하는 모순 덩어리였다. 다들 저 아이들이 상처받고 컸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 가족을 욕하겠지. 난 그 사실 하나가 너무 싫었다.
시체처럼 누워있는 엄마가 병약해서 그러는 건 아닌가 늘 불안으로 유년기를 보낸 나에게 당연할 수 없던 부모의 애정 어린 보살핌을 동아와 동현이가 받는 것을 보았을 때 나의 삶이 통째로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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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거리는 느낌과 감긴 눈으로 느껴지는 어둡고 습함.
눈을 떠보지 않아도 밤이라는 걸 느꼈다. 어떤 공간인지 오직 그것만 궁금했다. 뜨기 싫었던 눈을 살며시 떠 보았다. 익숙한 버스 풍경이었다.
맨 뒷좌석에 혼자 앉아있었고, 앞으로 두 명의 여인들이 각각 다른 자리에 몸을 싣고 있었다. 한 여자는 이상하리 만치 가냘파 보였다. 삐쩍 마른 건 아니지만 왜소하고 약해 보이는 몸체. 각진 얼굴이라 광대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또 다른 여자는 차가웠다. 동그란 얼굴에 큰 키를 가져서 뭇사람들이 좋게 바라볼 인상이었지만 무표정에서 나오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다가가기 어렵게 만들 듯했다.
나는 정인이다. 나의 언니들이다. 왜소한 큰 언니와 둥근 우리 작은 언니.
미안해.
*
뜨거운 열기가 느껴진다. 타는 냄새도 난다. 코가 찌르듯이 아프고 숨이 막혀 들숨과 날숨이 원활하게 나오고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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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나방은 불을 좋아해서 불 속을 거침없이 뛰어드는 것일까. 아니면 불이 뜨겁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뛰어드는 것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다. 이 시작이 나를 망가뜨리겠구나. 엄마의 몰락. 가족의 헤어짐. 사람들의 시선과 돌아다니는 소문들. 그 안에서 나는 나를 잃어버렸을지 몰라.
*
- 사실 엄마가 힘들어서 덜컥 그러라고 했어.
맞아 엄마 사실 나도 이 상처가 동아 동현이 그리고 삼촌 때문이 아니라 엄마 때문에 더 커. 내 상처는 슬프게도 타인에게서 온 것이 아니었다. 가장 가까운, 나를 열 달을 품고 있던 과거 양육자에게 받았다. 2013년 봄, 나의 초등학교 시절 상처를 가득 안겨준 ‘거지’라는 단어를 조금은 떼어내고 넓고 자유로운 집에서 한참 행복을 만끽하던 그 시절에 엄마는 우물 안이었다고 했다. 가장 우울했던 시기였고 아빠와 다투고 나면 방으로 들어가라는 그 말이 너무 슬펐다고 했다. 그래서 방에 모로 누워 혼자 많은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그렇게 살다가는 죽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의 활기가 있고, 자신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그 아이들 때문이라도 움직인다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한 일이라고 했다. 그 말들이 나에게는 감정의 하자를 만들었다. 충격이 컸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내가 조금은 어른에 가까워진 후 그 말들을 들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 더 어린 나이에 들었다면 하자 정도가 아니라 결핍이 생겨 부족한 사람이 되었겠지. 엄마의 무수한 핑계들을 들으며 비겁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자식들은 언젠가 품을 떠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를 스스로 지킬 의무가 모두에게는 존재한다. 남편도 자식도 품 안에서 떠나 혼자가 된 외로움에 사무쳐 우울감이 왔더라도 대체제를 찾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건 회복이 아니라 회피니까.
- 엄마... 그게 할 말이야..? 너무 비겁해. 엄마가 힘들어서 도망쳤다는 말 밖에는 안되잖아.
-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엄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고 후회는 없어.
*
웬일인지 언니들이 오늘은 같은 곳에서 하차 준비를 하고 있다. 무거운 발걸음 속에서 장소가 즐거운 곳은 아니라는 걸 느꼈다.
둘이 함께 걷다 멈춰 선 회색 빛 건물에는 ‘납골당’이라고 적혀있었다. 이제야 보이는 큰 언니의 손에는 제비꽃 한 송이가 들려있었다.
- 오랜만에 정인이 만나러 간다. 그렇지?
- 응. 그러네.
큰 언니의 질문과 작은 언니의 대답은 짧고 굵었다. 더 이상의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대화 주제가 없다기보다 동생을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게 된 이유를 떠올리기도 입에 담기도 싫다는 의지가 무겁게 느껴졌다.
두 발이 나란히 멈춰 선 자리에 한 사람을 온전히 담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 보이는 작은 유리문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웃는 미소가 담긴 사진과 유골함이 함께 놓여 있었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제비꽃을 놓았다.
- 정인아, 그동안 오지 못해서 미안했어. 일부러 안 오려던 건 아니야. 언니로서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았어. 우리의 책임이 없다고 생각할 수 없었어. 엄마가 너무 미웠고, 삼촌이 너무 미웠고. 그리고..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용서가 되지 않았어.
- 정인이가 제비꽃을 가장 좋아했는데, 그 뜻이 ‘순진무구한 사랑’이라서 그렇다고 했어. 정말 막내답지? 늘 막무가내 막내라고 놀렸는데, 맹목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너라서, 그래서 아픔까지도 맹목적으로 끌어안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괴로울 뿐이야. 엄마는 많이 나아졌어. 이렇게 해야만 끝날 일들이었다니. 덧없다. 참...
*
- 엄마
- 왜
- 동아랑 동현이 언제까지 우리 집에 사는 거야?
동아와 동현이가 들어온 지 2년이 넘어가는 해였다.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작은 언니는 시외에 있는 명문고 입학으로 집을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아빠 역시 운영하던 사업을 접고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로 홀로 들어갔다. 사실 이 흩어짐이 갑작스럽지 않았다. 동아와 동현이가 들어오고 1년이 지날 무렵부터 가족 간의 불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했다. 아직 혼자 집에서 생활하기에는 너무 어려서 가족 외출이 생기더라도 아이들의 시간에 맞춰 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점점 우리 가족과의 생활에 적응하던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족에 대한 욕심이 생겨날 무렵이었다. 쉽게는 호칭부터였다. 엄마라거나 아빠라는. 나의 엄마가 너의 엄마가 될 수 없다는. 상처를 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나와 내 가족이 상처를 입는 건 죽어도 싫은 그런 상황들.
- 몰라. 애들 예기 꺼낼 거면 집으로 가.
한숨이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랐다.
- 아니. 물어보는 거잖아. 원래 1년만 사는 거였는데 왜 자꾸 늘어나냐고. 정확한 이유를 가족들한테 설명을 하던가.
어느 순간부터 엄마는 아이들이 돌아가는 일에 관해서라면 열을 내고는 했다. 우리 집에서 엄마에게 직접적으로 아무 생각 회로를 거치지 않고 물어볼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렇게 1년을 고집스럽게 물고 늘어진 덕분에 엄마가 양육비를 삼촌으로부터 지원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의 양육비이자 엄마의 수고비 정도였다. 결국 또다시 돈이 문제였다. 쉽게 생겨버린 자금줄을 놓지 못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자립할 정도로 목돈이 생기면 데려갈 거라던 삼촌도 점점 안일하게 생각했고, 더 이상 이 문제는 ‘이쯤 하고 끝내자’ 타협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의 결핍을 해결하고 용기를 갖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문제였다.
- 너희들이나 빨리 나가라고. 애들이 나가도 똑같을 거라니까? 애들이 나간다고 다 해결될 거라는 생각하지 마. 난 너희랑 사는 것도 힘들어.
그때부터 엄마의 주장은 이랬다. 우리 가족 구성원만 사는 것이 특별하지 않다. 별 다를 것 없다. 애들이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애들이 나가도 똑같다. 똑같이 갈등이 생기고 힘들 거다.
-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문을 박차고 집을 나왔다.
- 씨발. 진짜 뭔 개 같은 소리야.
*
얼굴이 둥근 여자가 버스에서 내려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가벼워 보이는 가방을 메고 향한 곳은 내가 기억이 없을 때 자연스럽게 몸이 향하던 그 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의 집. 아주 좁은 아파트 골목에 빼곡히 사람들이 모여있다. 승용차들은 들어가려고 깜빡이를 켜다 상황을 보고 직진하기 바빴다. 아주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귀를 때리는 사이렌 소리가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하늘은 점점 어둡게 변해갔다. 가벼웠던 발걸음이 어느 순간 무겁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 불이 났나 봐요.
- 지금 몇 명 나왔지?
- 어린애들은 벌써 구급차가 실어갔고 더 남아있으려나..?
- 워낙 작은 아파트고 노인네들이 많아서 초기에 다 나온 것 같기는 한데,,
- 어쩌면 좋아..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말소리가 섞여 들어왔다.
그래 여기는 작은 아파트고 사람도 많이 안 사니까.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아파트인데 벌써 다 뛰쳐나왔지.
부들거리는 손은 핸드폰의 번호를 자꾸 틀리게만 했다.
벨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익숙한 벨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엄마가 서 있었다. 초점 잃은 눈은 우리 집 창문을 향하고 있었다.
- 어.. 어... 으어.
이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사람 소리 같지 않은 동물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엄마가 지체 없이 사람들을 밀쳐냈다.
뒤에서 엄마를 꼭 끌어안았다.
- 엄마!!! 어차피 못 들어가! 통제하고 있다고. 사람들이 다 나왔을 거래.
- 엄마. 엄마.. 아.. 엄마....
그때였을까. 어두운 하늘이 어둑한 매연 때문인지 아니면 밤이 가까워오는 건지 모를 그 하늘이 뿌연 먼지들로 뒤덮이며 건물이 붕괴됐다.
*
살면서 가끔 나의 존재 이유를 떠올리고,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 답도 없는 늪에 빠진 그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내 삶이 딱히 불행한 것도 그렇다고 행복한 것도 아닌. 그저 온 우주에 먼지만큼 작은 존재라는 걸 처음 인지한 것처럼.
*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동아와 동현이를 데리고 나오려 실랑이를 하면서도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눈물이 났다. 가족들의 눈길과 모순 속에서 분노를 키우며 방화를 한 동아는 꿋꿋하게 내 손을 뿌리치며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 누나, 나 너무 무서워..
동현이가 울기 시작했다.
- 너 먼저 나가!!! 얼른!!!!
- 무서워... 같이 갈래.. 같이!!
- 누나가 동아 누나 데리고 갈 테니까! 너는 먼저 나가서 고모한테 연락해! 누나 말 들려?!
동아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나오지 않고 있었다. 죽음을 다짐한 자의 모습은 무겁구나. 내가 과연 들어 올릴 수 있을까. 무섭고 억울했다.
손잡이가 점점 뜨거워졌다.
*
불나방은 불을 좋아해서 불 속을 거침없이 뛰어드는 것일까. 아니면 불이 뜨겁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뛰어드는 것일까. 그도 아니면 그렇게 태어난 운명에 따르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