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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보 샘 Nov 29. 2022


아무튼 모모에게 가봐요!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고



아무튼 모모에게 가봐요!     


  공허한 잿빛 얼굴을 하고, 무기력에 시달리면서도 숨 가쁘게 달려야만 하는 세상. 너무 피곤해서 퇴근 후에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 줄 수도, 가족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는 사람들. 그들은 시간 도둑에게 소중한 시간을 빼앗긴 줄도 모르고, 빠르게 달릴수록 느려지는 우울한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가슴속이 텅 빈 것 같고, 침침한 연기 속에 갇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거북이 카시오페이아가 나타나 불쑥 말을 건넬지도 모른다.     


  모모에게 가 봐요.     


  미하엘 엔데의 ‘모모’를 읽고 있으면 시간 도둑이 활동을 멈추고, 엄청나게 큰 꽃들의 폭풍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시와 음악과 이야기가 어우러져 모두가 친구가 될 수 있는 모모의 원형극장에 초대를 받은 것이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원형극장을 사랑했다. 그들은 무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고, 아름다움에 감동할 줄 알았다. 그 후 수천 년의 세월이 흘렀고 사람들은 원형극장을 잊었다. 하지만 변두리의 가난한 동네에는 원형극장 터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모모가 살고 있었고, 가난하지만 자기 철학이 분명한 사람들이 모모의 친구가 되었다.     


  모모는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자신의 시간을 친구들을 위해 아낌없이 나누었다. 모모와 함께 하면서 어른들은 배려를 배웠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매일 새로운 놀이 속에서 상상력이 자랐고, 생각하는 힘을 키웠다. 하지만 시간을 훔쳐 가는 회색 신사들의 등장에 사람들은 즐거움을 잃게 된다. 삶이 빈곤해졌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졌다. 더 심각한 것은 사람들이 회색 신사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모모는 호라 박사, 거북이 카시오페이아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낸다. 시간 도둑들의 은거지를 찾아내 최후의 시간 도둑이 사라지게 했고, 그들이 훔쳐 간 시간을 전부 풀어주었다. 회색 신사들이 훔쳐 간 시간의 꽃이 다시 사람들의 가슴으로 돌아가자 세상은 온실처럼 따뜻해졌다. 시간이 많아진 사람들은 꽃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 긍지를 느끼게 되었으며, 서두르지 않았다. 모모와 친구들은 원형극장에 모여 파티를 열었다. 모모는 별들의 음성과 꽃을 생각하며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가 우리에게 다가와 이야기가 된 것이다.      




  “나한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그래서 너무 바빠. 내면의 소리를 들어보라고? 그건 나한테 너무 사치야. 지금 나 밥 먹을 시간도 없어. 그래, 나중에 더 얘기하자.  아직 할 일이 산더미야.”


  아이도, 어른도, 입시생도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말한다. 시간이 부족하다고. 도대체 우리의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는 항상 조급하다.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을 감상할 줄 모르며, 지하철 의자에 앉아 책을 읽을 여유도 잃었다. 의사는 환자의 고통을 살필 겨를이 없고, 교사는 자신의 꽃도 보살필 시간이 없어 학생 안의 찬란한 꽃을 보지 못한다.      


 

 다행히 잿빛 도시가 시간의 꽃을 야금야금 빼앗아도 가슴에서 뽑힌 시간의 꽃은 죽지 않는다. 원형극장의 마을 사람들이 모모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을 찾은 것처럼, 우리는 내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시간의 꽃을 돌봐주어야 한다. 휴대전화는 서랍이나 작은 상자에 보관한 후 가족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재미있는 상상을 해보자.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소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면 우리도 잠시 모모 같은 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모는 이 세상 모든 것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고양이귀뚜라미두꺼비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도 귀를 기울였다그러면 그들은 각각 자기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모모에게 이야기를 했다. (p34)     


   개, 고양이, 귀뚜라미, 두꺼비, 심지어는 빗줄기와 나뭇가지 사이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모모의 순수함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하리라는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처럼 작은 아이에 불과한 모모가 세상을 구한다. 하지만 모모가 세상을 혼자 구한 것은 아니다. 친구가 없었다면, 마음을 나누고 시간을 공유하는 이웃이 없었다면, 모모는 회색 신사들에 맞설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가지고 있단다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p250)     


 가끔 내 안에서 공허한 바람이 요동치는 이유를 알았다.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 시간이 모두 사라져 버린 탓에 속이 허해진 것이다. 나를 들여다보고, 자아의 소리를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베포처럼 일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기기처럼 상상력을 잃은 사람이 될 것이다. 시간은 풀벌레 소리처럼 작은 소리를 내지만 고요함 속에서는 분명하게 그 울림을 들을 수 있다. 우선은 놓친 마음부터 잡아 고요하게 해야 한다.


  


 느리게 갈수록 더 빠른 거야.     

  지혜로운 삶은 느리게 갈수록 빠른, 신비한 시간의 모음집이다. 해와 달과 유성과 별이 서로 영향을 미쳐 시간의 꽃 한 송이를 탄생시키고, 소멸시킨다. 느리게 갈수록 빠르게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도 모모처럼 별들의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전하고 싶다. 하지만 내 안에서 그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말이 자라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해와 달과 별의 음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란 한갓 자기 안에 있는 시간에 그치는 존재가 아니거든사람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존재란다. (p369)     


 인간은 성장을 멈추지 않는 한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다. 모모처럼 눈을 감고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면 우리도 잃어버린 나와 만나게 될 것이다.      

  도시의 시간은 독백에 길들여져 사람의 가슴에 공허한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을 지우려 원형극장으로 향하면 우리는 모모를 만날 수 있다. 조용히 앉아 풀잎, 나무, 별, 구름의 속삭임에 장단을 맞추고 마음을 열어 고요한 평화를 받아들인다. 그러면 시간은 대화에 익숙해져 새로운 기록을 시작한다. 


가슴속, 모모를 만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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