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입시판을 빠져나오며..

성찰을 통한 성장이란

by 경민

2024년 11월 14일 목요일 오전 열 시

샤프를 놓으며 느꼈던 감정을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다면 신이 아니겠는가

일 년 전 굳건히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보기 위해 손을 움직인다. 서두를 그날의 경험을 환기하며 시작하려 한다.


동이 트기 전에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눈을 뜨자마자 ‘시험은 기세다’ 몇 번이고 세뇌를 하며 나섰다, 도움이 됐었는지는 지금 생각해 봐도 모르겠다.

자리에 착석하고 누구나 꿈꾸듯 순조로운 출발과 마침을 고대하며 손에서 흐른 땀에 적셔진 시험지를 애써 부여잡고 1교시를 시작한다. 시작 전부터 거슬리던 뒷자리 친구의 기침소리는 점점 심해져 간다. 마음을 달래며 귀마개를 착용한다. 신기하다. 기침소리를 제외한 모든 소리가 차단된다. 뒷자리 팔을 뻗고 자려던 친구의 팔이 내 옆구리를 스친다. 머리가 멈춘다. 사고의 흐름은 점점 산으로 흐른다. 1분 1분 더 빠르게 흐른다. 이러면 안 된다는 일말의 사고는 희미해지다 결국 사라진다. 종이 친다. 샤프를 놓는다. 몸이 축축하다. 눈도 축축하다.


이렇게 12년의 여정이 끝났다. 수능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 인생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말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때의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의 로고스는 무너졌다.


나의 준비가 부족한 건 아니었을까, 뒷자리 친구의 방해가 없었으면 나는 안녕했을까, 세간에 나의 이야기를 하면 비루한 변명으로만 들리지 않을까,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까.. 끊임없는 자기 연민과 혐오 속에서 새해를 맞았다. 나의 가치관과는 맞지 않지만 거지 같은 사회에 한번 굴복해 준단 심정으로 재도전을 결심했다.

(한국 입시체제에 병폐가 있고 수험생의 목을 조르는 ‘악’인 것은 분명하지만 ‘필요악’인 것 또한 분명하다. '변별력 확보'라는 지상과제를 해결했으면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정책을 펴주길..)


일 년이 흘러 재수를 끝냈다. 일 년 내내 패닉에 대한 두려움, 극복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나를 괴롭혔다. 결국 두 번째 수능 때는 패닉을 겪지 않고 잘 마무리했다. 나의 정성스러운 준비로 인해 겪지 않은 것인지, 나는 부족했지만 방해하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겪지 않은 것인지 또 번뇌한다.

결국 결론은 전자로 치부하였다. 생각의 끈이 너무 길뿐더러 나를 더 사랑해 줘야겠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일 년은 너무나 소중하다. 어찌 보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인 글을 쓰게 되다니..

밀도 높은 시간의 벽을 통과하면서 누군가를 이해해 보려 하고 실존적 고민도 하게 되었다.

정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고 나의 주관이 확립되어 갔다.

행간은 10대의 마지막, 혹은 나의 또래들이 시험준비가 아니더라도 혼자서 생각, 고민해 보는 시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정제된 사고를 적립해 갔으면 좋겠다.

'인생은 무엇인가'와 같은 심오한 고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거창한 예시론 지난 경험들을 반추해 보고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사람이 될까'와 같은 고민 말이다.

어느 순간 깊이 있는 사고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희열감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사고의 깊이는 상대적이다. 나의 생각도 누군가에겐 피상적이고 비루한 어린애의 논변에 불과하지만 계속되는 성찰이 성숙한 사고를 만든다. 이로써 채워진 기성세대에서 극단적인 이념의 대립을 해소하고 서로 공감하며, 사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다.


보잘것없는 언변이 누군가의 레퍼런스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