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행복을 어떻게 정의할까?
나에게 있어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도달하기 너무 높은 산꼭대기 같았다.
'소확행'은 모두가 본인만의 기준을 가지고 정의해 나간다.
누군가에겐 퇴근 후 먹는 치맥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겐 친구와 카페에 앉아 회포를 푸는 일 일수도 있다.
내 생각은 조금 특이하다..
갓 성인이 되었을 때 행복에 대해서 고민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그중 한 생각은 "인간은 본래 행복한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난 인간은 본래 행복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은 존재라고 결론지었다.
인간이 본래 행복하기 때문에 불행을 느낄 수 있다면, 선행절과 후행절이 도치된 명제도 성립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첫 문장의 도화선이 생겨났다.
행복과 불행이 모두 없는 상태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은 나로 하여금 그 중간 어딘가 산술적 평균상태의 감정이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을 만든다.
이후 나는 행복과 불행에 등급을 매긴다. 그리고선 내가 느끼는 감정, 생각에 대해 얼마큼 행복한지를 비교해 본다. (물론 공리주의자들처럼 고차원적이진 않았다..)
얼마나 행복한지를 따져보려 하는 순간 항상 "나는 지금 진정 행복한 것이 맞는가?"에 대한 회의에 빠졌다.
그리고선 현재 행복도에 대한 가중치가 추락했다.
현재의 행복보다 세간에서 정의하는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이고 확실한 행복에 더 근접하는 감정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기인한 결과였다.
또한 지금의 즐거움이 행복이라고까지 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도 있었다.
소확행의 '확실한'이라는 키워드는 산꼭대기의 고도를 높여만 갔다. 그렇게 이 생각은 불문에 부쳐지게 됐다.
여러 계절이 바뀐 후 어느 날 새벽에 밖으로 나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담배를 물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했다. 이번에도 행복이라 표현하기엔 무언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렇게 시작된 사색에서 왜 내가 행복의 확실함을 정의해야 했고 하려 했는지를 고민한다.
객관적이고 확실한 행복에 더 근접하는 감정을 찾기 위해? 그건 누가 정하는 것이고 그 감정을 찾는다 한들 평생을 그것을 좇아야 하는 것인가?
쾌락과 행복은 연결고리가 두텁지만 동의어가 될 순 없다. 나는 행복의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쾌락의 정도를 계산했어야 했던 것이다.
어느 사건들에서 쾌락이 나온다면 그 정도는 상이하다. 하지만 행복을 느낀다는것은 분명한것이었다.
나는 더이상 나의 행복을 의심하지 않기로했다. 또 행복이란 단어에서 나오는 거창한 뉘앙스를 과감히 버렸다. 내가 지정하는것이 행복이다.
나는 지금 소소한 글을 쓰며 행복한가?
그렇다고 자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