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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유정 Oct 30. 2023

나에게 친절해지는 법

   사이버 대학교 조교 업무를 한 지가 벌써 반년이 지났다. 초반에는 학생들 대하기가 옥황상제를 대하는 듯 극진했다. 물어보는 것에 일일이 답해주느라 진땀을 빼며 한 시간 여를 고생했으나 돌아오는 것은 띠- 띠- 하는 전화 끊기는 소리일 적이 많았다. 그래서 그맘때쯤에는 끊을 때 학생에게 '감사하다'는 소리만 들어도 어찌나 기뻤는지 모른다.
한 번은 아주 친절하신 어르신께 나 또한 아주 친절하게 대해드린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학생이 게시판에 내 칭찬을 달았다. 약 5년을 근무하신 선생님께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신기하다고 했다. 크게 감동받은 나는 이때 인스타툰을 그리던 시절이어서 그 주에 그 일을 만화로 그렸다. 그리고는 그 학생이 나를 대했던 태도를 내가 타인을 대할 때 본보기로 여겨야겠다고 생각했다.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난 지금, 나는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초반의 재미도 당연히 사라지고 전화벨만 울리면 화가 난다. 아무리 친절한 말투라도 학교에서 기본적으로 안내했던 사항을 물으면, 그거 하나 알려주는 게 화가 나서 "안내서는 읽고 질문하시는 거냐"며 퉁명스럽게 답한다. 그런 전화가 쌓일수록 화는 더해가고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일에 익숙지 못했을 때는 학생들이라면 더 모를 수도 있겠거니 했는데, 이제 내가 잘 안다고 학생들이 모르면 화가 난다. 내 옆에 앉아 같은 일을 하는 인간은 학생들이 모두 무식하고 멍청이라며 종일 짜증 난다는 말만 반복한다. 내가 보기엔 그쪽이 더 무식한데. 하는 생각도 잠시, 내가 너무나도 혐오하는 그 직장 동료와 내 행동이 닮아졌다는 점에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참 무례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학생을 친절하게 대할 때는, 가끔 나를 '선생님' 혹은 '조교님'이 아닌 야, 아가씨, 언니, 저기요, 그쪽 등의 호칭을 써서 부르지 않는 이상 그다지 불편하지도 않았던 일들이, 이제는 친절한 학생을 만나도 귀찮고 번거로움을 넘어서 화까지 나는 일이 되었다. 계약에 묶여 앞으로도 최소한 지금 다닌 만큼은 계속 다녀야 하는 직장인데, 이렇게 속에서 불태우며 지낼 수 없다는 생각에 내 태도를 다시 처음처럼 바꾸기로 했다.


   마음먹은 것만으로도 한결 나아진 속에 한 번, 실은 내가 그다지 화가 나지 않았음에 두 번 놀랐다. 내 태도가 오히려 내 기분이 되었던 것이다. 마음이 태도에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그 반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 그간 당연하게 행동을 돌아보지 않았다. 친절하자고 마음먹고 실제로 그렇게 하니 학생들에게 화가 나지 않았다. 잘 모르더라도 '그럴 수 있지'하고 생각하면 답답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이렇게 쉬웠던 일을 왜 하지 못했을까! 나를 지탄해도 별 수 없는 일이다. 이제부터 다시 친절함을 되찾을 수밖에.


   내 감정을 매번 세밀하게 조절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람이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으면 순간의 감정에 휩쓸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을 조금 줄일 수는 있다. 좋아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가득하게 만드는 것이다. 내 주변에 뭘 더하라는 것이 아니라, 관용을 베풀어보라는 말이다. 주변에 관용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나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예컨대 당신의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자. 그리고 그 사람이 당신을 화나게 하고 있다. 그 사람이 그렇게 못돼 쳐 먹게 태어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를 다시 그 부모의 생식기관에 집어넣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당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이유 없이 화를 내고 불편하게 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바뀌지도 못할 것 같다면, 그 인생이야말로 참 불쌍한 사람이다. 관용을 베풀지 못하니 주변이 화와 불행으로 가득할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읽은 이라면 어떨까? 관용을 통해 주변인들을 사랑하고 아끼고 있으니 주변이 행복함으로 가득하다. 이런, 그가 졌다. 당신이 이겨버렸다. 이미 이긴 게임, 더 힘쓸 필요가 있을까?


    남에게 친절하면 결국 내게 친절한 것이 된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니 말이다. 억지로 당장 급변하려고 하기보다는 천천히 연습해 보자.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까지가 힘들다면, 싫은 것을 싫지 않은 것 정도로만 바꾸면 된다. 정말 싫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어차피 내가 바꾸지 못할 것에 용쓰지 말자고 마음먹어보자. 그렇게 나를 아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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