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지 9개월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 나는 내가 우울장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의 모든 무기력함과 무감동증, 체중과 수면의 변화 등의 증상들은 학생때 배웠던 정신간호학 책에 나오는 주요우울장애의 증상 그대로 발현했다. 간호사 면허가 있다는 자만심 넘치는 이유로 나는 내가 주요우울장애라고 판단했다.
아니, 셀프 진단해버렸다.
자, 진단을 내렸으니 다음은 처방이다. 퇴사하겠습니다.
그당시 나는 중환자실의 숱한 환자들의 생사를 오가는 과정을 본 것 때문에 내가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책을 찾아보니 우울함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고 기술되어 있었다. 다시 한번 찬찬히 전공책을 읽어보던 중 나는 “우울증의 요인 중 스트레스와 환경이론”이라는 설명이 내 상황을 설명하기에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실은 우울장애를 유발시킬수 있는 스트레스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적혀 있었다. 나는 환자를 지속적으로 상실하는 환경적 이유에서 우울이 내게 찾아온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 스스로 근무하는 환경을 변화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대학병원, 그중에서도 중환자실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환자들이 삶과 죽음을 오가는 곳이었다.
여기까지 말하면, 굳이 퇴사를 하면서 까지 우울증을 치료해야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실 수도 있을 것 같다. 퇴사하는 쪽을 택하지 말고, 차라리 병원이나 심리상담을 받는 것은 어떠냐고.
하지만 그 시절 나는 정신과에 방문하는 것보다 퇴사를 하는 것이 더 쉽게 느껴질 만큼 정신과약 투약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내가 정신과에 방문한다면 직장에 다 소문이 날 것 같고, 아픈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버릴까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사직서를 제출하러 수선생님께 면담을 하러 간날도 , 송별회에서 동료 간호사 선생님들이 퇴사이유를 물어보던 때에도, 부모님이 왜 좋은 직장을 그만두려하냐고 질책하시던 때에도 그저 고향이 그립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누구에게도 내 우울을 말할 수 없었다. (지금도 친한 친구들 몇명 빼고는 내가 우울장애로 인해 약까지 먹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이 없으니, 그때는 정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전개되다 보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나는 아무에게도, 심지어 부모님께도 말하지 못한 채 셀프로 내린 처방에 몸을 맡기기로 했다.
퇴사 후 부모님이 계시는 , 내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