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는 또 다른 시작이야
면접을 보고 쓴 고배를 마신 고1의 여름방학은 실망스럽고 좌절된 힘든 시간이었다.
자퇴한다는 딸의 이야기에 물러서지 않는 엄마의 굳은 의지와 딱히 자퇴를 해도 목표의식이 없던 딸은 무기력한 시간이 보내게 되었다.
학교를 옮길 수 있다는 희망에서 절망으로 바뀌고 자퇴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딸은 다른 상황으로 시선을 돌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자퇴는 타당한 명분으로 브레이크를 걸었지만 알바를 해보겠다는 딸을 말릴 수는 없었다. 학교 하교 후에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알바를 하겠다고 했다.
싫은 소리 해가면서 말리는 게 소용없었다. 어차피 엄마가 하지 말란다고 안 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처음에 아르바이트하던 곳은 동네에 있는 고깃집에서 시작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면 몰려오는 손님들과 또 때로는 이상한 손님들을 보는 그 현장이 딸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었을 것이다. 사실 딸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궁금도 했다. 친한 후배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며 핑계 삼아 딸이 아르바이트하는 고깃집에 가보았다. 물론 아는 척은 하지 않고 말이다. 흠칫 놀라기는 했지만 어쩌랴 손님으로 왔으니 손님으로 대접을 해 줄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고깃집이니 알바를 하고 오면 늘 고기냄새가 온몸에 베여서 왔고 생전 처음으로 서빙해 보는 무거운 것들도 들어야 하니 저녁에 알바가 끝날 때쯤 데리러 갈 때는 힘듦과 피곤함이 얼굴에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참 고생도 사서도 한다’싶은 말이 튀어나올 거 같아 이 때도 나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간다.
집으로 가는 10분의 시간 동안에는 가끔씩 쏟아내는 이야기들이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딸의 목소리 이기도 했다.
고깃집에서 만난 주방이모님들 그리고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양각색의 삶을 느끼고 보는 거 같았다. 오래는 못할 거 같다고 하더니 다른 곳에 알바를 구했다.
고양 스타필드 안에 스무디킹에서 두 번째 알바를 이어갔다.
그곳은 고깃집과 다른 환경과 매장을 오는 대상도 분위기도 다르다고 했다.
“엄마, 알바를 해보니깐, 왜 환경이 중요한지를 알 거 같아”
“뭐가 다른 거 같니?”
“고깃집과 스무디킹의 환경이 다르고 매장 고객도 달라”
“그렇구나, 네가 먼저 고깃집을 했기 때문에 알게 된 것일 거야, 당연히 환경적으로 보면 스타필드 안에 스무디킹이 더 좋겠지, 매장 찾는 손님들도 젊은 사람이 더 많고”
“맞아 그런 거 같아요, 앞으로 일을 해도 어떤 곳에서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된 계기가 된 거 같아”
고3이 되어 굳이 대학을 간다고 해서 수시원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게 되었다.
대충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이 년 전에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면접의 질문지를 프린트하고 연습했다. 과외 중이었던 수업은 수시 기간에는 선생님이 면접관이 되었고 딸은 수험생으로 철저하게 연습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러 대학에 가서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보고 느끼는 부분도 딸에게는 컸던 거 같다.
면접관이 질문을 하는데도 제대로 말도 못 하는 아이, 질문에 대답을 한다 해도 정확하게 전달을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기 스스로가 얼마나 열심히 준비를 하고 왔는지에 대해 뿌듯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있는 시간으로 채워가고 있었다.
잘 준비하고 성실하게 임했던 과정은 좋은 결과로 보답처럼 다가와서 행복한 고민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수능을 보기 전에 합격의 소식이 여기저기서 올라와서 골라서 갈 수 있게 되었다.
기쁘게 환한 표정으로 그제야 마음의 짐을 조금 내려놓은 모양이다.
피아노 쳐본지도 오래라면서 기쁜 마음을 피아노를 치면서 행복한 시간을 누리고 있는 딸의 모습은 여태껏 그런 만족하고 좋아라 했던 적이 처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수고했다. 이 년 전에 면접 보고 불합격의 쓴맛의 경험을 거울삼아 수능 준비는 잘할 수 있었던 거 같다. 세상에 나쁜 경험은 없는 것 같다. 그렇지”
아마도 딸은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했던 면접의 쓰라린 경험을 통해 성장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는 것은 그 뒤로 딸은 알바를 하기 전 면접을 갈 때도 옷을 정성스럽게 잘 차려입고 미팅시간보다 먼저 가 있는 좋은 행동을 하는 모습이 생겼다.
-어떤 것이 당신의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토마스 에디슨의 글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