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업일치에 대한 고찰 (1)

덕업일치를 도전하기까지

by 한 자 이상
작가 등록을 마치고 한 주 동안 무엇을 쓸지 고민하다 쓰는 첫 글이다. 어쨌든 처음으로 쓰는 글이니 나에 대한 소개를 해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 혹은 강박(?) 같은 것이 있었다. 나를 소개할 수 있는 단어가 한 단어로 뭘까 고민하다가 결국 ‘덕업일치’로 정했다. 어려서부터 덕업일치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기도, 서른의 나이에 희망을 품고 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첫 글로 ‘덕업일치’를 주제로 정했다.


5646.jpg 덕업일치 = 덕질을 업으로 삼다


나의 덕질은 축구다. 중학생 시절 막연하게 꾸던 꿈 역시 내가 좋아하는 축구로 일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캐스터와 해설위원들이 축구를 보며 90분 내내 말로 티키타카하는 것이 멋있어 보인 것이 시작이었다. 인생에서 처음 마주했던 한 분야의 스페셜리스트였다. 나도 그러한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다. 물론 TV만 틀면 혹은 주위를 둘러보면 스페셜리스트 널렸겠지만 그 나이에 내가 경제나 시사 전문 프로가 취미일리도 없었고,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주변에서 ‘사’ 자 직업에 대한 동경이나 강요도 크지 않았다.(물론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을 수 있다. 태어나길 눈치 없이 태어난 덕(?)일 지도…) 아무튼 내 인생의 첫 스페셜리스트들에 대해 조사해 보니 다들 ‘덕질’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다행히 나 역시도 축구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 재밌었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걸음마다 전술적 이유가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이해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다.


그로부터 10여 년 정도 정말 열심히 축구를 본 것 같다. 그동안 메시와 호날두의 등장부터 군림, 2010 남아공 월드컵 첫 원정 16강, 바르셀로나의 6관왕과 스페인의 메이저 대회 3연패, 첼램덩크, 퍼거슨의 퇴장 등처럼 축구계에서 굵직한 사건들을 지켜봤다. 그동안 블로그, 팟캐스트, 유튜브 안 가리고 도전해 봤다. 도전 끝에 어느 한 스포츠 분석 회사에 들어가게 됐다. 그러나 막상 회사에 들어가니 스포츠 분석가가 아니라 토토나 프로토하는 사람들이 볼 A4 한 장 분량의 1000원 혹은 1500원짜리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래. 작지만 천천히 내 이름을 알려보자!’와 같은 다짐은 물론 어림도 없었다. 한 주에 100개의 경기를 보며 써야 했다. 당연히 경기는 유튜브에서 하이라이트로 봐야 했다. 회사 안에 풀타임 경기를 볼 수 있는 수단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 주에 100개의 경기를 보고 글을 쓰기 위해 90분 경기는 물리 법칙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게 쓰는 글에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었을까? 당연히 없었다. 그렇게 3주가 지났을 때쯤 내 인생 첫 번째 퇴사를 하게 된다. 혹시나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토토나 프로토에서 파는 분석 글을 사려거든 그 돈으로 복권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인 소비라고 추천한다.(K리그와 유럽 4대리그를 제외한 경우는 더더욱)


이 일을 계기로 꿈에 대한 회의감과 배신감이 들었다. 특정 종교의 광신도가 내가 모시던 ‘신’은 사실 ‘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과 같달까? 꿈을 기반으로 한 구직활동에 처절하게 실패했다는 점과 더불어 집에서도 28살의 나이에 이제는 돈을 벌었으면 하는 바람을 은연중에 느꼈다는 점 등이 맞물리면서 다음 직업을 허겁지겁 선택했다. 쉽게 선택한 직업이 나에게 잘 맞을 리 없었다. 나에 대해서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했고, 직업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두 곳의 회사를 더 다녔고 나는 늘 불행했다. 그렇게 사회에서 부적응할수록 저 멀리 치워 뒀던 이루지 못한 꿈이 벌처럼 주위를 맴돌며 웽웽거렸다.


“너 왜 나 안 잡았어?”

“너가 그러고 있는 이유를 정말 몰라?”

“나 안 고르더니 꼴좋다~”


이루지 못한 꿈이란 벌은 나를 후회의 늪으로 몰았다.


‘난 꿈을 왜 그렇게 쉽게 놓았을까?’

‘정말 내가 열심히 했을까?’

‘지금 다시 꿈을 좇는다면 행복할까?’


아쉬움 속을 침잠하던 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왜 정신이 들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몸을 말려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꿈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나는 다시 사직서를 내고 퇴사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퇴사와는 달리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이 있었다. 다시 축구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축구로 일하기 위한 준비를 처음부터 차근차근하고 있다. 덕질과의 멜로에서 해피앤딩을 짓기 위해 참 먼 길을 돌아왔다. 물론 대부분의 현실 멜로가 꽃 길만 걷는 것은 아니듯이 녹록지 않다. 무엇보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가지는 사회적 입지를 생각하면 지금의 현실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그 점 빼고는 내가 무엇을 보고 달려야 할지 너무나 명확하기에 마음이 편하다. 마흔, 쉰에 다시 서른을 돌아보았을 때 더 이상 후회를 남기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