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뛰어넘는 완벽주의
지독한 완벽주의를 앓고 있다. 학부시절 과제를 할 때에도 완벽하게 완성하지 못할 것 같으면 안 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주어진 기간동안 노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과제를 받고나면 자료조사를 잔뜩 해 놓는다. 잔뜩 쌓인 자료가 머리 속을 부유할 때쯤 악마의 속삭임이 시작된다.
‘A자료는 B자료에 의해 반박이 되잖아? C자료를 찾는 건 어떨까?’ 속삭임에 이끌려 C자료를 찾고 나면 그 자료를 반박할 수 있는 또 다른 D자료가 등장한다. 조금만 더 찾으면 이 모든 반박 자료를 뛰어 넘는 자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휘둘리다 보면 완성도가 떨어지는 결과물이 빚어진다.
결국 제출하지 못하거나 제출하더라도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 했다. 덕분에 학점 관리가 쉽지는 않았다. 피로는 피로대로 쌓이고 결과는 결과대로 못 챙기면 이보다 억울할 수가 없다. 이 것을 알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이 완벽주의였다.
이렇게 지독한 완벽주의에서 최근 드디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경험을 했다. ‘진(zine)’이라는 것을 만들면서다. 진은 8등분으로 접은 종이의 가운데를 일자로 잘라낸 뒤 접어서 만드는 책자다.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스티커나 사진을 오려 붙여 내용을 채울 수 있다. 쉽게 말해 수제로 만드는 커스텀 책자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먹은 술들을 소개하는 진을 만들기로 하고 맨 앞장 표지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굿즈로 내놓았던 취객선비를 그려넣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마음 가는대로 슥슥 그리다보니 생각보다 잘 그린 것 아닌가? 그동안 그림은 커녕 가위질도 잘 못해 손재주 없다는 소리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던 내가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신기했다.
돌아보면 학창시절 미술시간에 평가를 위해 그리는 그림보다 장난처럼 그려 넣던 낙서들이 더 좋은 그림이었다. 같은 원을 그리더라도 잘 그리고 싶은 그림은 틀리면 안된다는 마음이 손을 거쳐 획까지 전해진 반면, 낙서처럼 그릴 때는 획에 거침이 없었다.
완벽주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여러 마음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겠지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마음인 것 같다. 스스로가 실수 투성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 나에게서 나오는 결과물에 대한 의심이 무의식적으로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런 내게 진에 그려 넣은 그림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가르쳐 줬다. 그렇다. 완벽하지 않기에 인간이다. 완벽주의의 늪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란 쉽지 않겠지만 조금씩 만족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감을 정하고 쓰는 뉴스레터는 꽤나 도움이 된다. 매회 실수 투성이고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매주 시간 내에 발행하기로 약속했으니 어떻게든 완성시키고 있다. 이렇게 써내려가는 글들이 쌓여 성장의 시작이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위 글은 제가 발행하는 음악 에세이 뉴스레터의 글 한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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