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 불가마보다 더 오래도록 뜨거운 것은

누군가로부터 받는 작은 배려와 호의들.

by 이유미

2026년 새해가 밝았다. 아들이 한 달 전부터 졸랐던 찜질방, 그 간절한 염원을 새해 첫 날에 실행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나섰다. 모두가 우리와 같은 마음인지 그날 따라 찜질방은 발디딜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특히나 여자사우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엄마가 많은 탓인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자리가 한 군데도 보이지 않았다. 갓 6살이 된 딸을 데리고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한 여성분과 눈이 마주친다. 나의 간절함이 그녀의 눈에 닿았던지 바로 옆에 앉아 씻는 자신의 딸에게 "우리가 양보할까?"라고 말하며 딸 자리를 우리 몫으로 내어주셨다. 새해 첫날부터 받은 예상치 못한 호의에 나는 가슴이 시큰해졌고 연신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간만의 목욕탕 나들이에 신이 난 딸은 내 무릎 위에 앉아 조잘조잘 떠들더니 얼른 씻고 탕으로 가자고 보채었다. 딸의 손을 꼭 잡고 뜨끈한 열기가 올라오는 탕으로 향했다. 아침에 차가운 바람을 쐬어 한기가 가득 스민 몸이 어서 뜨거운 탕에 들어가라고 성화였다. 내 몸을 먼저 탕에 들여놓고 딸을 향해 어서 들어오라며 손짓했다. 아이가 들어가기에 크게 뜨겁지 않을 온도라 크게 무리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하지만 아이는 뜨거운 열기가 무서웠던지 눈망울에 두려움이 가득 서린 채뒤로 성큼 물러나있었다.

그 순간 딸아이보다 두살 정도 많아 보이는 한 여자아이가 눈에 띄었다. 그 여자아이는 바깥에서 머뭇거리는 딸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서는 아이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자세히 보니 젤리였다. 젤리를 받아든 딸아이의 얼굴에 두려움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미소가 피어올랐다. 젤리를 건네 주던 고사리같던 그 여자아이의 손이 내 머릿속에 따뜻한 잔상으로 콕 박혀들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귀한 새해선물을 주어 너무 고맙다며 얼굴만큼 마음이 참 예쁘다고 나직이 말해주었다. 그 여자아이는 자신을 기다리는 엄마에게로 총총 뛰어갔는데 뒷모습에 보이지 않는 날개를 숨겨둔 것이 아닐까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두 가지가 새해 첫 날 내게 있었던 감사함이다. 25년이 너무 가혹해서 26년은 따스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바램이 이루어진 것 같아 가슴 벅찬 하루였다. 목욕탕에 흐르는 따스한 온기가 그녀들의 마음을 가득 채운 탓일까? 목욕탕에서 연거푸 두 개의 따스한 호의를 받으니 불가마방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몸과 마음이 열기로 가득 채워진 느낌을 받았다.


연일 추워지는 날씨로 몸과 마음도 얼음장같이 차가워지는 요즘, 그 얼음장같은 몸과 마음을 따스히 녹여내는 데 사우나와 찜질방만큼 효과가 직방인 것은 없지만 오늘의 경험을 통해 하나 느낀다. 누군가로부터 받는 작은 배려와 호의는 어떠한 한파에도 끄덕없는, 마음 속을 언제까지나 뜨겁게 끓어오르게 만드는 불가마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그날 불가마에서 30분을 머무르며 온몸에 곳곳에 흐르던 열기는 방을 나오자 금새 식어없어졌지만, 사우나에서 받은 두 호의는 지금까지도 내 마음 속에서 열기를 가득 내뿜고 있으니 이보다 더 강력한 불가마가 또 있을까?



수,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