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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월 Aug 10. 2023

사랑함으로써 빛난다. 빛남으로써 아름답다.

[책동네]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외모'를 소재로 자본주의의 내면과 사랑의 의미를 성찰한 작품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세 주인공 그, 그녀, 요한은 각자의 아픔과 컴플렉스를 지닌 채 세상의 '아웃사이더'를 자처하지만 사실은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깨끗한 청춘들이다.


이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인 백화점은 자본주의 소비문화의 상징이다. 일년 내내 이름만 바꿔 단 '세일'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사람들은 소비에 대한 탐닉으로 자신의 부와 사회적 지위를 과시한다. 부끄러움과 부러움이 공존하는 곳. 그들보다 못생겼다는 부끄러움, 그들이 가진 명품 구두와 가방을 가지지 못한 부끄러움은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다'는 부러움의 욕망에 불을 지피고 기꺼이 지갑을 열게 만든다.


박민규는 '자본주의의 바퀴는 부끄러움이고, 자본주의의 동력은 부러움이다'(p308)라고 썼다. 자신을 망각한 채 한 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는 사이 '세상의 평균'은 자꾸만 올라간다. 일류대학에 집착할수록 사교육비는 올라가고, 아파트에 목을 매면 집값은 뛰는 법이다. 작가의 말처럼 '다들 이렇게 살잖아' 하는 순간 모두가 그렇게 살아야 할 세상이 펼쳐진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대견한 것은 '더 많이 부끄러워하고 더 많이 부러워하라'는 명령이 지배하는 세상에 쉽게 편입되는 대신,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감싸안으며 아파하고 성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입에서 새나오던 한 마디 말을 잊지 못한다. 전... 하고 그녀는 흐느끼며 말했다. 너무 못생겼어요...(중략)...알아요, 하고 나는 말했다. 하지만...그래서 좋아요. 앞으로는 계속 더 아름다운 모습만 볼 수 있을 테니까. 봄이나... 가을의 고궁처럼 말이에요." (p179)



백화점에서 그가 만난 그녀는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이지만, 세상은 그녀를 그냥 '못생긴 여자'로 취급할 뿐이다. 이 사회에서 '못생긴 여자'가 당하는 불이익과 차별, 단절과 고립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그녀는 세상과 벽을 쌓은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한다. 이런 그녀에게 다가온 그는 이전에 그녀가 한번도 만나지 못하고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선물한다. 바로 '사랑'이다.


박민규는 그가 일하는 백화점 직장 선배 요한의 입을 통해 아름다움과 추함의 의미를 되묻는다. 



"아름다움과 추함의 차이는 그만큼 커, 왠지 알아? 아름다움이 그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그만큼 보잘 것 없기 때문이야. 보잘것없는 인간이므로 보이는 것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보잘것없는 인간일수록 보이기 위해, 보여지기 위해 세상을 사는 거라구." (p219)



바야흐로 외모에 집착하는 시대다. TV를 키면 얼짱, 몸짱들이 넘쳐나고 S라인, V라인 등 각종 라인 만들기 비법들이 인터넷을 도배한다. 성형은 대세가 됐고 다이어트하다 죽음을 맞는 이야기 쯤은 이제 더이상 충격적이지도 않다. '외모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말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고리타분한 이야기다. 이제는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과 아름다워지기 위한 노력 전부를 속물적이라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만을 절대가치로 여기고 온 사회가 그것만을 위해 죽어라 달려가는 광기가 아닐까. 그것은 일종의 투기 행위 같은 것이다. 뉴턴은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대중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세상의 평균이 치솟을수록 평균 이하로 떨어지는 사람들의 절망은 쉽게 무시당한다. 


소설 속 그녀는 난생 처음 경험한 그와의 진심어린 사랑에 대한 단 하나의 기억만으로도 평생을 살 수 있을 힘을 얻는다. 어두운 방구석에서 걸어나온 그녀는 외모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그냥 '동양인 여자'로 불릴 수 있는 독일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두 사람은 독일에서 재회하고 사랑을 재확인한다.


부와 아름다움의 권력에 지배당하지 않을 유일한 무기는 역시 '사랑'이다. 사랑함으로써 빛난다. 빛남으로써 아름답다. 사는대로 살다보면 쉽게 잊어버리곤 하는 진리. 소설 속에 인용된 인디언의 경구처럼 이따금은 말에서 내려 자신이 달려온 쪽을 한참동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아직 쫓아오지 못한 영혼을 위한 배려다. 그래 맞다. 누구에게나 두고 온 한 줌의 영혼이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걸 돌아보게 하는 힘을 지녔다. 



"사랑은 상상력이야. 사랑이 당대의 현실이라고 생각해? 천만의 말씀이지. 누군가를 위하고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고, 누군가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그게 현실이라면 이곳은 천국이야...(중략)...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가는 거야.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신은 완전한 인간을 창조하지 않았어, 대신 완전해질 수 있는 상상력을 인간에게 주었지." (p228)



**책을 읽고 나서 모리스 라벨이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을 들었다. 아름다운 곡에 이내 매료되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kmzR8tfgK4&feature=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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