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내기 배움터에서
16년 만에 새터에 갔다. 계단식 강의실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신입생 마흔 명이 책상에 앉아있었다. 과의 슬로건이 적힌 검은 점퍼를 입은 학회장이 단상에 서서 학과 교수들의 환영사가 있겠다고 했다. 교수들이 한 명씩 신입생들 앞에 나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AI가 인간의 육체와 지성까지 넘보는 시대에, 독창성을 추구하는 우리 과에 온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라고 격려하기도 하고,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는 당신들이 원하는 바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겁을 주는 교수가 있었다. '신익샌 요로분 화뇽하니다.' 가족여행때문에 비디오 메시지로 인사하는 외국인 교원과 자신 밑에서 수학하던 학생이 좋은 곳으로 갔다며 자신의 세부전공을 홍보하는 교수도 있었다.
교수진들의 인사가 끝나고, 학회장은 준비한 학과소개 프레젠테이션을 빠르게 넘겼다. 파워포인트가 아닌, 탬플릿 기반 디자인 앱으로 만들어진 소개 자료에 세대 차이를 느꼈다.
"이제,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을 가져야겠죠?"
학회장은 신입생의 이름 하나하나를 스크린에 띄우며, 호명된 학생을 단상으로 불러 마이크를 주었다.
"출신지, 이름만 말하지 말고 취미라든가 관심 세부 전공도 말해보기로 해요."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은 강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 수만큼 제각각이었다. 마이크를 든 손을 부들부들 떨며 얼른 단상에서 내려가고 싶어 하는 심약자.
“제가 설탕공장 광고부터 여러 영상을 찍어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길이 제 길인 것 같습니다!”
먼 길을 돌아서 드디어 제 자리를 찾은 것만 같다는 신입생의 선언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고등학교 때 온갖 공모전을 휩쓸고, 교내 동아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책을 맡고 있었다는 자신만만한 영재.
“노래를 부르려고 하는데, MR 준비되나요?”
삼수생은 반주 없이 노래 부르는 건 계산에 없었다면서도 준비한 곡을 완창 했다.
“저는 사실, 교수님 팬입니다.”
학업과 덕업을 동시에 이룬 성공한 덕후의 고백도 있었다.
개성 넘치는 신입생들의 자기소개에 이어, 내게도 마이크가 돌아왔다. 이름과 출신지에 덧붙여 내 취미를 말하려는 짧은 순간, 이제껏 취미라고 말해왔던 것을 더 이상 취미라고 부를 수 없게 됐다는 걸 깨달았다. 이 강의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아니,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내게 그런 취미가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나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지 않게 되어버린 것이다. 여긴 쿤스의 팬이었다가 쿤스가 되기로, 쿤스트 하기를 각오한 사람들의 집이었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가수는 레이디 가가요. 잘 부탁드립니다.”
시시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내 자리로 돌아갔다. 그 뒤로도 기기묘묘한 취미를 가진 신입생들의 PR이 이어졌다. 런치 패드를 다룰 줄 안다는 DJ, K-pop을 즐긴다는 댄서와 대국을 기다리는 체스 마스터, 메탈헤드…
‘열심히 하는 것 만으로는 오리지널리티를 갖출 수 없을 겁니다.’
졸지에 취미를 잃고, 내내 교수의 경고를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