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닭은 닭이 아니고
한동안 강에 나가면 쇠오리나 청머리오리보다 시커먼 머리에 새하얀 부리를 가진 새들이 많이 보였다. 이름을 찾아보니, 그렇게 생긴 새를 물닭이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됐다. 오리처럼 물에 떠다니고, 크기도 오리만 하니까 흑머리 오리나 흰 부리 오리 정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았는데, 왜 물닭이 물닭이라고 불리는지 궁금했다. 물닭은 닭과 비슷한 점이 없어 보였다. 커다란 벼슬이 달린 것도 아니고, 꼬끼오 우는 것도 아닌데.
물닭과 오리 무리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헤엄치던 날, 유심히 관찰하다가 둘의 차이점이 몇 가지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헤엄치는 모습이었다. 물닭은 오리와는 다르게, 헤엄칠 때 고개를 앞뒤로 움직인다. 마치 결승선을 향해 노를 젓는 조정선수의 움직임처럼 격렬했는데, 처음엔 물닭 한 마리가 유달리 성질이 급해 먹이를 향해 돌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오리들은 고개를 몸통에 고정한 채로 슬렁슬렁 수영을 하고, 물닭들은 닭이 걸어 다닐 때처럼 고개를 쑥 내밀며 앞으로 헤엄쳐나갔다.
물속의 먹이를 먹는 모습이 달랐다. 오리는 제자리에서 꽁지를 하늘로 든 자세로 머리만 물속에 담그는데, 물닭은 한번 튀어 올라 물속으로 온몸을 던져 먹이를 잡았다. 그리고 발가락. 평소엔 물닭, 오리 모두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어 차이를 알 수 없었다. 수면에 비친 사람 그림자에 놀란 물닭이 날아갈 때, 꼬리 뒤로 쭉 뻗은 발은 물갈퀴 모양 ‘오리발’이 아니었다. 닭발보다 통통하긴 하지만, 발가락이 네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이마까지 뻗어 볏처럼 솟아있는 부리, 네 개로 갈라진 발가락, 닭처럼 고개를 움직이는 습성 때문에 물닭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납득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물닭은 생물 계통 분류적으로 닭과 친척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닭은 닭목에 속해 있는데, 물닭은 두루미목에 있는 뜸부기와 계통적으로 더 가깝다고 한다. 뜸부기는 국산 압축프로그램의 새 폴더 이름 이스터에그로만 알고 있어서, 검색을 해봤다. 내 눈에 뜸부기는 물닭보다 훨씬 물에 사는 ‘닭’처럼 생긴 새였다. 머리에 붉은색 볏이 달려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뜸부기의 영문명은 ‘Watercock’(물닭)이기까지 했다.
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손자를 데리고 강변에 나온 할아버지가 물닭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봐라, 물닭이 진짜 많제?”
“까치!”
“아니, 물닭.”
“까치!”
손자는 물닭의 검은 머리를 보고 까치라고 불렀다. 물닭에게 이름을 붙여 주기 전에 명명자가 물닭의 깃털색이 까치의 깃털색과 비슷하다고 느꼈다면, 물닭은 물닭이 아니라 물까치나 헤엄까치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물닭’은 이름이 이름 붙인 사람의 인식 한계와 편의에 의해 지어진다는 점, 이름은 이름으로 불릴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이름이 대상의 본질을 오해 없이, 완벽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그림 같은 사례가 아닐까.
그러한 의미에서, 물닭들은 본인들이 ‘물닭’으로 불린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조류와 인간이 소통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무시하고. ‘물닭’이란 이름은 더 이상 우리 물닭들을 대변할 수 없다고 궐기하게 될까? 물닭 개명 추진 위원회가 소집될지도 모르겠다.
“우린 뜸부기과에 속하니 강뜸부기가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닭’을 점유하고, 닭들더러 ‘땅닭’하라고 합시다.”
“뜸부기? 닭? 우리는 뜸부기도 아니고 닭도 아닙니다. 우린 그냥 우리일 뿐이고, 닭도 뜸부기도 아닌 새로운 이름이 필요해요.”
“전 영국에서 온 물닭(watercock, 뜸부기)인데요. 여긴 제가 올 자리가 아니었던 것 같군요. 하지만, 이름 때문에 물에 사는 닭으로 오해받고 있다는데 동의합니다.”
“이름? 그딴 건 편협한 인간들이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기 위해 멋대로 붙인 것일 뿐이죠. 이름 따위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죠?”
치열한 논의 끝에 물닭을 대체할 이름이 생물과학 협회나 국립국어원 앞으로 보내질 것이다. 깃털이나 펠릿의 형태로, 울음으로. 새의 언어로 전달된 새로운 물닭의 이름을 한국어로 완전히 표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머리를 싸맬 것이다. 물닭을 물닭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게 될 때쯤, 사람과 조류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될 쯤엔, 모든 이름들이 대상의 본질을 완전하게 담을 수 있게 될까?
물닭 개명 추진 위원회 개최를 기다리는 사람은 안중에도 없이, 물닭들은 쿳쿳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