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onspiracy of Paper
종이의 음모 1권 & 2권
A Conspiracy of Paper
데이비드 리스 (David Liss) 지음 / 사현정 옮김 / 대교베텔스만 2006년
작품의 무대
1720년경 영국에서 실제로 발생한 남해회사 (South Sea Co.)의 거품과 관련된 부패한 정치인과 주식 중개인의 추악한 협잡이 배경이다. 흔히 South Sea Bubble 으로 불리워지는 주식에 거품을 일으켜서 일부만 수십배의 차액을 얻어 배를 불리고 거품이 꺼지자 대다수 많은 사람들이 휴지 조각으로 변한 가짜 주식을 가지고 광란에 빠진 사건이다. 잉글랜드의 남해 거품 사건은 튤립 버블, 미시시피 계획(프랑스)과 함께 근대 유럽의 삼대 버블로 꼽힌다.
남해 회사(The South Sea Company)는 1711년 토리당 로버트 할리에 의해 설립되었다. 영국의 재정 위기를 구하기 위해, 부채의 일부를 남해 회사에 넘겨 무역을 통해 이윤 그것을 충당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스페인과 아시엔토 조약으로 스페인령 서인도 제도와 노예무역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지만, 밀무역을 통해 스페인과의 관계 악화, 해난 사고 등으로 본업은 지지부진해졌으며, 국채를 탕진하여 남해 회사의 경영 자체가 위태로워지고 있었다.
궁지에 몰린 남해 회사는 1718년 발행한 복권이 큰 성공을 거두자 금융 기관으로 변신을 꾀하게 된다. 1719년 거액의 채권 인수 대가로 액면가에 해당하는 남해 회사 주식을 발행하는 권한을 은행과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얻어냈다. 이것이 남해 계획이다.
그러나 남해 계획은 처음부터 파탄이 예정되어 있었다. 은행과의 경쟁 속에서 쌓아 올렸던 750만 파운드의 상납금이라는 무거운 부담은 남해 회사에 고위험의 단판 승부 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해 회사는 다음의 계획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려고 했다.
1. 주식과 국채 교환은 시가로 실시한다. 즉, 남해 회사의 주가가 액면가 100 파운드 당 시장 가격 200 파운드의 경우, 200 파운드의 부채 1개와 남해 회사 주식 100 파운드 분을 등가 교환한다.
2. 그러나 발행 허용 수량은 교환 금액에 따라 한다 (200 파운드로 교환) 때문에 액면 200 파운드 분의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즉 교체해도 수중에 100 파운드 분, 시가 200 파운드 분은 남게 된다.
3. 이것을 매물로 내놓으면, 매출 200 파운드는 그대로 남해 회사의 이익이 된다.
4. 위의 방법으로 남해 회사의 이익이 올라가면 당연히 주가가 상승한다.
5. 1로 돌아가기.
이러한 단계를 반복하면 주가는 무한 상승하고, 남해 회사는 이익을 올리고 주식 보유자는 순식간에 부자가 되는 것이 남해 계획이었다.
당시 영국 중산층이 투자처를 찾고 있는 상태에서 시장에 자금이 출렁인 적도 있어, 남해 회사의 주가는 빠르게 성장을 했다. 본업인 무역 활동은 지지부진했지만, 남해 회사는 부채 인수 회사로 성장하여 몇 개월 동안 주가가 10배나 상승했다. 귀족, 부르주아, 서민 계층을 불문하고 주식에 대한 충분한 지식도 없는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투기열풍에 휩쓸려 전무후무한 투기 열풍이 일어났다.
이것에 편승하여 당시 허가제였던 주식회사 설립도 무허가로 만들어졌다. 이른바 암거래 회사의 주가도 단번에 튀었다. 그 대부분은 진지하게 사업을 일으키려고 하는 기업가들이며, 그 사업 내용도 런던에 석탄 공급 사업이나 비누 제조 기술의 개량 사업 등, 전 산업혁명기 영국 산업의 발전의 정도를 엿볼 수 있었던 회사들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러한 성실한 사업을 위한 투자모금 뿐만이 아니었던 것도 확실하다.
1주당 가격은 1720년 1월 100 파운드였던 것이 5 월에는 700파운드가 되었고, 6월 24일에는 최고치인 1,050 파운드로 치솟았다. 이런 상승기조에 편승하여 은행과 영국 동인도 회사 등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하기 시작했다. 정부의 허가 없이 이런 회사를 만드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무단으로 설립한 회사가 난립하는 상황에 이르자 정부도 규제에 나섰다. 6월 24일에 〈거품 회사 규제법〉, 8월 24일에 고지 영장을 발급하면서 시장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사태는 진정에 그치지 않고 모든 주가가 폭락하는 위기에 빠졌다. 주가 폭락도 전례없는 속도였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주가는 제자리로 돌아왔고, 많은 사람이 파산으로 인해 자살을 했다.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남해 회사 주식으로 7000 파운드 벌었지만, 이후의 폭락으로 20,000 파운드의 손해를 봤다.[2] 한편, 작곡가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은 남해 주식 매매로 얻은 이익을 바탕으로 왕립 음악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자신의 음악 활동의 거점으로 삼았다.
버블에 놀아난 투자자에게도 책임이 있지만, 투자자들의 분노는 남해 주식회사의 이사와 남해 주식회사의 주식을 뇌물로 받았던 정치가에게 집중되었다. 또한 당시의 스탄호프 정권은 붕괴되었고, 스탄호프 본인은 급사한다. 경제 위기뿐만 아니라 정치도 파국을 맞았다.
이 사태를 수습한 사람이 로버트 월폴이고 그는 당시 국왕 조지1세의 신임을 얻어 오래도록 정권을 잡아서 영국 의원내각제의 기초를 쌓아 올렸다. 존 브란트와 남해 이사의 책임 추궁을 위한 위원회가 의회에 설치되어 조사가 진행되었다. 여기서 찰리 스넬은 남해 회사의 회계 기록을 자세히 알고 있는 간부 중 한 명이었던 야곱 E. 브리지가 경영하는 브리지 상회의 장부를 조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브리지 상회의 장부에 대한 소견〉이라는 보고서로 정리하여 보고서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데, 이것이 세계 최초의 회계 감사 보고서가 되었다. 따라서 동인도 회사의 성립에서 시작하여 주식회사 제도의 발달은 "남해 버블"이라는 위기로 표면화되었고, 일반 대중에게 자금 조달을 하는 사업 형태는 정당한 제3자에 의한 회계 기록의 평가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공인회계사 제도와 회계감사 제도를 탄생시킨다.
--- 젊은 시절의 꿈은 실패로 돌아가고 나이만 먹었고 …. 꿈 많던 미래는 고된 현실로 나타나고 있구나.-----
--- 금화 1파운드는 1파운드의 가치가 있으나 종이 한 장을 1 파운드라고 하는 것은 가짜, 속임수 -----
--- 돈은 같은 민족사이에서 돌아야 한다 ---- 유대인 숙부의 말씀
반전과 반전이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재미있는 추리 소설이다.
읽고 나서
오래 동안 유지 되던 금본위제도는 불과 지금 (2012년)으로부터 40여년전에 사라지고 힘있는 자가 멋대로 돈을 찍어 내는 시대가 되었다. 미국의 100달러 지폐의 1970년대 가치는 오늘 날에는 17달러 정도의 가치만 남았다. 반면 당시 금 100달러 가치는 지금에 880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지폐/어음/채권/주식 등 모두 종이(Paper)이다. 종이 한 장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그 종이를 얻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우고 헐뜯고 속이는 세상이다. 아이고…..
2012년 3월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