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안전불감증
본디 정화란 발생한 오염보다 수 배가 드는 일이다.
사람의 이미지든 물건이든 시스템이든 말이다.
그 이유는 발생한 손상만큼의 불이익이 내게만 일어나지 않고 타인에게도 손상을 주기 때문이다.
무안 공함 참사로 179명이 죽었다.
179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 아닌 사망이 179번 일어난 비극이자 그와 관련된 수천 명의 유가족 및 이해관계자들이 비극을 공유한다.
대한민국 소방의 최악의 사건 홍제동 방화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 시절 동료의 허무한 순직 같은 아픔을 가슴에 아직 품은 채 살아가는 소방관분들이 계신다.
아마 지금도 어딘가에서 동료의 순직으로 힘들다 말하지 못한 채 애써 자신의 감정을 속여서라도 지내는
소방관은 있을 것이다.
안전사고란 바로 이런 것이다.
부주의와 무책임한 사람이 아닌 애먼 사람과 그 가족이나 관계인들이 비극 속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
안전 부주의란 죄악이자 불법이다.
실수와 타협은 없다.
떠나고 남겨진 이들의 동물 같은 울음과 신혼부부의
빈집을 보면 실로 안전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사고는 갑자기 일어난 거처럼 보인다.
그 피해가 워낙 크고 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적인 형태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위험의 조짐은 늘 우리 곁에서 자명종처럼 알렸다.
건물 외벽의 크랙이나 물건의 잔고장 횟수, 작업자의 부상 횟수 등등 수많은 곳에서 제발 좀 알아달라고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우린 철저히 외면을 한다.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렇기에 살 수 있고 막을 수 있는 위험을 우린 막지 못하고 그렇게 죽어간다.
그들이 흘린 피의 도로 위에서 건물 위에서 시스템 속에서 우린 살아가고 있다.
우린 그런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다...